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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 상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홍길동전을 읽고 허균에 필이 꽂혀 그의 최후를 다룬 김탁환의 소설이 궁금했다. 대체 그는 어떤 죄목으로 처형되었고, 마지막 나날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소설은 최후의 19일부터 역순으로 진행된다. 1613년 광해군이 집권하던 시기다. 광해는 허균과 동궁전에서 밤을 지새우며 새로운 정치를 펴나가자고 마음을 합쳤던 관계다. 광해는 허균을 사랑했으나 실권을 장악한 판의금부사 이이첨은 교산을 죽이라고 한다. 교산은 서자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나 모반을 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신과 배신으로 그의 죄는 불어났고 왕은 친국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이첨은 교산과 자신 중 하나를 택하라는 압력으로 왕이 친국을 거두고 교산을 능지처참하기로 결정됐다. 교산은 임금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섯 마리의 황소가 끌어서 온몸을 나누는 형벌은 참으로 잔인하다.
허균과 무륜당의 계획은 이재영의 고변으로 들통난다. 여인 이재영은 관송 이이첨의 사탕발림, 허균을 살려준다는 말과 자신은 시인으로 크게 이름을 날릴거라는 약속에 순진하게 고변했다. 기준격은 스승 허균을 모함하는 말도 서슴치 않았지만, 교산은 오히려 자신의 말이 올무가 될거라며 안타까이 여긴다. 교산을 따르던 동지의금 김개, 박치의, 돌한, 봉학, 명허 모두 관군에게 당한다. 노회한 이이첨은 교산을 죽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삼창이라 불리는 평창부원군 이이첨, 문창부원군 유희분, 밀창부원군 박승종과 동지경연 박자홍까지 교산과 뜻을 같이 했던 그들이, 교산을 죽이기 위한 음모라는 걸 알기에 광해군은 교산을 살리려 하나 임금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관송 이이첨은 광해군이 교산을 친국하면 자기들도 같이 엮일 것을 알기에 친국을 막는다. 관송의 속내를 아는 교산은 달관한 듯하다. 교산은 아버지처럼 자신을 챙겼던 큰형님 허성과 시문을 높은 경지로 이끌어 준 작은 형 허봉을 추억한다. 천재이자 기인인 허균을 조선시대 지식인으로 오늘날 진중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는 자신이 꿈꾼 이상적인 세상을 위해 행동한 사람으로 오히려 체 게바라 쪽이 아닐까...
이 책은 허균의 최후 19일을 역순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맨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으면 이해가 쉬울 거 같다. 하루치를 읽고 그 다음날 것을 읽고 ’아~ 이렇게 된 거구나’하고 이해되는 게 썩 유쾌하진 않다. 작가는 드라마틱한 허균의 생애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소설을 역순으로 썼겠지만, 독자들에게 친절한 진술방식은 아니다. 하여간 허균이 이이첨의 정권 독점 야욕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편치는 않다. 정치권의 먹고 먹히는 권모술수는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으니까. 허균을 사랑한 광해군은 이이첨을 감시하라는 특별 지시와 그 딸 해경을 세자빈의 후궁인 소훈으로 삼겠다는 비밀교지를 내린다. 허균은 광해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결국 무륜당의 우두머리로 역모의 괴수가 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광해군도 어쩔 수없을 만큼 이이첨의 권력이 강했고, 교산이냐 관송이냐 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이이첨의 협박에 누구도 비켜가지 못했다. 역모를 꾀한 중죄인의 가족은 삼대를 멸한다는 걸, 아들 굉이 깨닫고 지혜롭게 처신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적는 편지에 마음이 짠했다. 광해군을 쥐락펴락 했던 김상궁, 김개시도 이이첨의 조종을 받는다. 허균을 따르는 자들은 교산이 결코 권력에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지만, 그가 꿈꾸는 이상향을 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