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하다
허균, 최후의 19일 - 하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허균 최후의 19일이 역순으로 진행돼 드라마틱한 허균의 생애를 조명하기엔 좋을지 몰라도, 독자에겐 친절하지 않은 진술이다. 다 읽고 나서야 사건의 발단과 전모를 파악하게 되니까, 차라리 하편 맨 끝장의 1일부터 거꾸로 읽어가는게 좋을 거 같다. 아마 작가도 1일부터 차례로 집필하고 편집은 19일부터 역순으로 하지 않았을까...  이번주 금요일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인데 회원들은 어떤 감상을 풀어낼지 기대된다.

노회한 정치인 관송 이이첨과 교산 허균은 정치적 동반자로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다, 서로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 위해 배신의 칼날을 준비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결국 역모의 괴수가 된 교산의 능지처참으로 막을 내린다.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합종연횡이나 3당 야합, 혹은 토사구팽 등 목적을 위한 온갖 수단을 보아 온 터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산은 칠서의 변으로 궁지에 몰렸으나 광해군의 신임으로 살아났고, 관송의 수하로 들어가 그의 개를 자처하고 막강한 권력을 얻는다. 영창대군을 죽이고 서궁(대비)을 삭출할 때에 끝까지 반대한 영의정 기자헌을 유배시켰다. 교산의 제자였던 기준격은 아버지를 유배시킨 교산을 미워했고, 작은아버지 기윤헌이 교산의 아들 허굉을 끝까지 제자로 돌보는 걸 비난했다. 숭례문 흉격 사건이 터지자 기준격은 아버지를 위해 교산을 비방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교산을 아끼는 광해는 추국을 미루었다. 관송은 교산을 옭아넣기 위해 여인 이재영에게 접근한다. 교산의 아들 허굉은 칠서의 사건으로 아버지를 따르던 서양갑, 이경준, 박치인, 김경손, 심우영이 죽고, 아버지는 정권의 실세인 이이첨, 박승종, 유희분과 어울리는 걸 보고 등을 돌렸다. 광해의 속마음을 아는 교산은 언제나 임금의 마음이 편하도록 솔직하게 말했고, 자기의 뜻과 다르더라도 임금의 뜻을 따르겠다고 한다. 광해는 그런 교산을 아낄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대명과 노추(청)의 전쟁에 대명숭배의 명분을 앞세운 신하들은 마땅히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임금의 뜻은 달랐다. 실리를 취하려는 광해의 뜻을 아는 교산은 강홍립을 설득했고, 강홍립은 광해의 비밀교지를 받고 온갖 핑계를 대며 천천히 행보한다.


이이첨과 교산은 선조 22년 같이 생원시에 급제했다. 관송은 교산의 시문에 기죽었고, 교산은 관송의 정치력과 승승장구를 부러워한 듯하다. 교산은 정치권에 입문해서도 온갖 기행으로 삭탈관직과 탄핵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변방의 서출들과 연을 맺었고, 무륜당을 비롯해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광해는 세자 시절의 인연으로 교산을 아끼고 절대적인 신임을 가졌다. 교산의 딸 해경을 세자의 소훈으로 맞이한다는 밀지와 권력을 독점한 관송을 감시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교산을 죽인 사건의 발단이 된 숭례문 격서도 백성의 여론이 궁금한 임금을 위해 서로 묵인하에 한 행동이었지만, 관송은 교산을 침몰시키기 위해 옭아매었다. 교산은 임금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게 아니고 정치권의 실세에 의해 임금도 좌지우지 되는 현실을 통째로 바꿔,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김탁환이 그려낸 허균이고, 소설이 아닌 허균을 제대로 알려면 이이화 선생이 쓴 '허균의 생각'이나 허경진이 쓴 '허균평전'을 보면 더 좋을 거 같다. 어쨋든 김탁환 작가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전체에 관한 통찰과 통찰의 현실화 방안으로,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이단아인 교산을 재창조했다고 적고 있다.

 

엊그제 고딩 아들이 이 책을 보더니, 문학선생님이 허균을 서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허균이 서출들과 교류했지만 그의 스승 이달이 서출이었을 뿐, 그는 서자가 아니라 아버지 허엽이 상처하고 후처로 맞이한 김씨 사이의 소생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큰형 허성은 전처 소생이고, 허봉과 난설헌, 허균은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났다. 아들녀석은 어떻게 문학선생님이 그런 걸 틀릴 수 있냐며, 내일 학교가면 선생님께 말하겠다며 씩씩거렸다.^^ 이렇게 허균을 서자로 아는 이들이 종종 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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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도 어제 이책 찾아봤는데요...
궁금한게 있어서요.
제가 역사 이야기를 지나치게 소설화한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은 사실에 근거한건지, 작가의 허구를 많이 첨부했는지 알고 싶어요.

좋은 리뷰입니다~

순오기 2010-10-07 01:29   좋아요 0 | URL
나도 허균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니까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동안 내가 읽은 책에 등장했던 허균을 조합해봐도 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이해했어요.
그래서 이이화 선생의 허균생각이 더 읽고 싶은데 품절이더라고요.ㅜㅜ

감은빛 2010-10-0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상 하권 따로 리뷰를 올리셨군요.
일단 하권 리뷰만 읽고, 상권은 나중에....
근데 역순 진행이라면 좀 불편할 것 같네요.
말씀처럼 거꾸로 읽는것이 더 이해하기 좋겠네요.

이이화 선생의 <허균의 생각>, 허경진의 <허균평전>
이런 책들도 있었군요. 왠지 이 책보다 더 끌리는데요. ^^

순오기 2010-10-07 01:31   좋아요 0 | URL
일단 역순 진술이라 상황 파악 하는게 불편했어요.
다음에 볼 기회가 있다면 하권 맨 뒤부터 볼거에요.^^

허균의 생각과 허균 평전은 금욜에 도서관에서 찾아봐서 있으면 빌려오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