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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07년 5월
평점 :
여름방학 특강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기록유산을 교재로 삼았는데,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관련도서를 보게 되었다. 나무조직학자인 박상진 교수가 팔만대장경판의 나무조각을 분석하여 그 비밀을 밝혀낸 책으로 사진과 표로 보여주는 자료가 많아서 좋다. 일반인을 위해 쓴 책이라 어렵지 않고 우리의 자랑거리인 팔만대장경에 관한 모든 걸 알아가는 게 즐거웠다. 정말 이 책을 안 읽었다면 '팔만대장경도 모르는 빨래판'이 될 뻔했다.^^ 빨래판이 되고 싶지 않은 분들은 필히 일독하시기를...
고려때 몽고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팔만대장경은 대역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화에서 만들어 해인사로 옮겼다는 것과,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오류를 밝혀냈다. 표본조사라 절대적이진 않지만 해인사 주변에서 자라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70% 이상이고 거제수나무와 층층나무, 고로쇠나무, 후박나무, 사시나무, 소나무와 잣나무로 만들어졌다. 세포조직상 산벚나무는 경판을 새기기에 꼭 맞는 나무라고 한다. 나무질이 일정하고 세포 크기가 균일하며 너무 단단하거나 무른 나무도 좋지 않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 높은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문헌에 등장하는 화(樺)는 자작나무 뿐 아니라 벚나무를 지칭하기도 했는데, 학자들이 그걸 간과하고 자작나무로만 번역해서 경판재질이 자작나무로 알려졌다고 한다. (사진은 클릭하며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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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기는 팔만대장경에서는, 왜 팔만대장경을 새겼으며 얼마만한 나무가 사용되었는지 그 제작과정을 추적했다. 고려사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자료를 근거로 밝혀냈다. 1231년 몽고군에 짓밟힌 고려는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우가 저항다운 저항도 하진 않고, 조정을 강화도로 옮겨 도망했다. 백성들은 버려진채 갖은 고초를 겪으며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조정은 백성들의 마음을 한 곳에 모을 이벤트가 필요했고, 최우는 1011년 거란침입시 초조대장경을 새기자 거란이 물러갔던 사실을 들어 팔만대장경을 새기게 했다. 고려사에 1251년(고종38년) 팔만대장경을 완성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기념식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정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최우와 최항 부자와 사위 정안이 재정적 지원을 하여 16년에 걸쳐 경판을 완성했다. 경판을 새긴 기간과 앞뒤 준비와 정리까지 1232년부터 1251년까지 20년이 걸렸다. 왕실이 실권이 없는 무인정권이라 최우는 강화도에서 계획과 경비조달을 주도한 실질 책임자였고, 충남 논산 개태사 주지 수지대사는 현장 책임자라는 기록이 보한집에 있다. 흥왕사의 천기와 30여명의 학승과 전문가 교정을 거쳐 경판작업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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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의 탄생지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과연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면 언제 해인사로 옮겼을까? 대장경판에 남아있는 제작 장소의 증거는 무엇인지 알아냈는데, 결론은 경판 나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뿐 아니라,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는 후박나무와 해인사 인근의 질좋은 거제수나무가 포함됐다는 것이 해인사 제작을 뒷받침한다. 또한 몽고군의 영향을 덜 받는 남해안이라야 가능하고, 이동시 마모의 흔적이 없다는 것도 해인사 자체 및 인근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진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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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이 완성된 1251년부터 750년 동안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팔만대장경을 보존한 조상들의 지혜에도 경탄을 금치 못한다. 대장경판전의 뛰어난 건축기술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공기의 흐름까지 고려한 앞뒤면과 위아래의 살창 크기를 다르게 한 것, 흙바닥 그대로 경판을 보존하므로 습도를 조절했다는 과학적 근거를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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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끊임없이 경판을 요구한 일본의 행태에 세종때는 경판을 주려고 했다는 기록에 놀랐고, 6.25때 해인사 일대의 폭격명령을 거부한 김영환대령의 용기로 지금까지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게 되었으니, 자신의 목숨보다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 김영환 대령께 감사한다.
환경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재 가치도 모른채 4대강 삽질만 하는 정부는 '팔만대장경도 모르는 빨래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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