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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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선 마음이 심란해지는 글이다. 2010년 3월 10일,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고려대 경영학교 3학년 김예슬의 대자보가 붙었을 때, 삼남매 블로그에 옮겨 놓은 큰딸 덕분에 내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좀 더 깊이있게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나 역시 3학년이 되는 큰딸이 회의와 갈등으로 휴학하고 싶다는 걸 들어주지 않은 엄마지만, 젊은이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아 의무감에 구입했다.   

김예슬, 참 똑똑한 학생이고 크게 될 인물이다. 세상을 보는 통찰력과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지혜도 있다. 결코 잘난체하지 않는 겸손함이 묻어난다. 우리 속담의 '될성 부른 나무'로 봐도 좋을 거 같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고대생 김예슬은 우수한 경주마로 트랙을 함께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리며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는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말한다.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고.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고,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고...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자유는 두려움에 팔고 정의는 이익에 팔아버린 채,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대학으로 전락한 현실을 거부하는 용기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내 자식이 이렇게 한다면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만류했을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예슬이도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졸업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부모님 때문에 몇 번이고 포기하곤 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눈물 짓고 계실 부모님 생각만 하면 흔들린다고...  

"명박산성보다 더 무서운 부모산성 넘기" 

예슬은 부모님 세대를, 자신들의 삶을 바쳐 일하고 싸우고 눈물로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화, 세계가 부러워 할 풍요와 자유를 제공했지만, IMF를 겪으면서 벼랑 끝에서 '무조건 돈이 있어야겠구나' 절감했을 거라고 이해한다. 잔인한 세계화와 사회 양극화는 각자 살아남기에 힘을 쏟아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밥벌이를 못하고, 꿈도 없고 도전 정신도 없다고 질타하지만,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는지 찾아보게 놔 두기나 했느냐고 묻는다. 부끄럽게도 우리 교육현실이나 부모들 뜻대로 설정한 목표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슬이는 세상의 모든 좋은 부모님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부탁한다.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유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당신이 하고 싶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중략). 집단적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의 두려운 사랑으로 두려움에 가득 찬 아이로 만들어 내지 마십시오. '사랑의 이름'으로 길들이며 자율성의 자기 날개를 꺾어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아이의 미래를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 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한 예슬이의 행동이, 진정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잘못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모두 휩쓸려가는 세상, 그 대열에서 탈주하고 저항하는 몸짓이 성숙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예슬이가 꿈꾸는 삶의 대학을 세워가기를.... 

우리 대학은 입학시헙이 없다.
우리는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당연히 교수도 캠펴스도 없다.  

입학시험응 없지만
진정한 자신을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필요하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없지만
일생을 함께할 자신감과 좋은 벗들이 주어진다.
교수는 없지만
숨은 현자와 장인의 세계의 토박이 지성들이 우리의 교수다. 
캠퍼스는 없지만
온 국토와 지구망를과 삶의 현장은 우리의 캠퍼스다.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발목이 시리도록 대지를 걷고
계절의 길을 거닐며 야생자연을 탐헌한다.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우리고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

지금 여기, 단단하고 건강한 토종씨앗처럼
빛과 사랑의 아이들이 스스로 키워온
희망의 씨앗이 퍼져 나간다.
이런 빛나는 삶의 대학 하나 세워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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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7-1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대로 '부모산성'을 뛰어넘긴 참 힘들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대를 갔다오면,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을 하면, 아니, 결혼을 하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네요. 부모와 나, 각자 바라는 상(像)이 달라 그런것도 있겠지만, 때로는 아직까지도 저당잡히고 살아가는 것 같은 느김이 들어요. 좋지 않은 생각이지만.

김예슬 씨는 힘든 이 길을 잘 헤쳐나가길 빕니다!

순오기 2010-07-14 02:09   좋아요 0 | URL
부모산성~ 저를 포함해 대단한 위력이죠.ㅜㅜ
김예슬은 잘 해낼거라 믿어요.

2010-07-1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4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7-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김예슬 양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대 타이틀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을 저력이 있기에 저런 결단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도 문제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파악할 생각없이 기성 세대만 탓하는 학생도 문제가 있겠죠. 대화가 우선인거 같습니다.

순오기 2010-07-14 02:13   좋아요 0 | URL
자신이 원하는 거, 잘하는 게 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지요. 김예슬은 잘 해낼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