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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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남한산성' 후편 같은 소설 '소현'은 문장조차도 김훈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남한산성엔 말(言)이 가득했고, 소현엔 침묵과 울음이 가득했다.  

역사에 '만약 '이란 가정은 성립되지 않지만, 소현을 읽는내내 '만약 소현이 죽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은 강력한 나라가 되었을까?'생각지 않을 수 없었고, 조선 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이었을 인조의 적자였던 소현을 위해 목울음을 울어야 했다. 

작가 김인숙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소현을 불러내어 독자앞에 데려다 놓았다. 내면을 파고 드는 심리묘사로 한없이 고독했던 소현을, 볼모의 치욕을 견디며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소현을 재현해 냈다. 

반드시 돌아가리라. 저들과 함께.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리라. 저들과 함께..... 모든 것을 갚아주리라.
– 209쪽  


작가는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 않았던 청의 실권자 섭정왕 도르곤을 주인공처럼 그리며, 그 곁에 볼모의 소현을 세우는 것으로 힘없는 조선을 보여준다. 도르곤은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인조를 믿지 못했지만 소현과는 전장을 누빈 동지로 우정을 나누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같이했던 사람들입니다. 장수는 모든 것을 다 잊어도 전장의 동지만은 잊지 못합니다. 세자 역시 내게 그러한 사람입니다. 나는 적이 될 수 있는 자만을 벗으로 여깁니다. 위대하지 않은 자는 적도 벗도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벗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합니다. 언젠가는 적이 될 것이나, 그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 또한 운명인 것입니다. 나와 세자가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 312~313쪽  


인조와 소현도 왕과 세자가 아니었다면, 그 여늬 아버지와 아들처럼 가슴 따뜻한 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명배금의 사대에 사로잡힌 왕과 조정은 소현을 용납하지 못했다. 소현은 부국강병을 실현하기도 전에 볼모지에서 돌아와 두 달만에 죽어야 했고, 세손을 비롯한 그 아들은 완벽하게 제거되었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수 없음을, 죽음까지도 농락한다는 정치의 무서움이 섬뜩하게 체감되었다.   

어떤 일이 닥치거나, 세자는 임금을 생각했다. 임금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자식이 어찌하기를 원하실 것인가. 임금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 25쪽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도 내가 몸이 아팠다. 베어내지 못하는 살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아팠다. 내가 너를 생각하면 몸이 더욱 아팠다. 불로 지진 침을 맞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 176쪽

어느 임금에게 적이 아닌 자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 224쪽 

세자가 세상을 뜨고 한 해 후에는 세자빈 강빈이 임금을 저주했다는 혐의를 입어 사약을 받았다. 이때에 세자의 세 아들도 모두 유배형에 처해졌다. 한때는 원손이었고, 아비가 살아 있기만 했다면 세손이 되었을 것이며 임금의 자리에도 올랐을 석철은 그의 동생 석견과 함께 제주에서 굶어 죽었다. 그때 석철의 나이 겨우 열두 살이었다. – 332쪽  


소현과 함께 치욕을 견디며 목숨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도 가슴 아프다.  과단성 있는 봉림은 세자와 다름으로 인해 때때로 위로가 되었다. 남한산성 수어사였던 심기원의 아들 석경에겐 세자가 전부였지만, 회은군의 딸이었던 흔과는 어른들끼리 사돈을 맺자는 말이 오갔던 사이로 위험한 사랑을 이어간다. 강화도에서 사로잡힌 흔은 성종의 다섯 째 아들 경창군의 후손인 회은군 이덕인의 딸이다. 흔은 대학사의 첩으로, 심양 관소의 세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볼모지의 어려움을 돕는 여인이다. 미천한 신분의 만상과 막금이나 볼모의 땅에 끌려온 백성은 비참한 조선의 목숨이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은 조선의 이름 없는 백성들만이 아니었다. 그중에는 반상의 딸은 물론이거니와 종친의 여식도 있었다. 신분이 낮은 여인들은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 내려졌고 신분이 높은 여인들은 신분이 높은 자들에게 바쳐졌다. 그중에서도 더 높고 더 아름다운 여인은 황제에게 바쳐졌으며. 황제는 다시 그 여인들을 신하들에게 내려 주었다. -29쪽  

그 어떤 것보다 내 가슴을 울렸던 건, 볼모인 아비가 환국할 때마다  대신 볼모가 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던 세손이었다. 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모진 세월이었으니, 소현의 그 어떤 외로움보다 더욱 감정이입이 되어 뜨겁게 울었다. 

4년 만에 아이가 너무 많이 자라 세자가 그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이가 공손하게 절을 하고, 법도에 맞춰 아비의 안부를 물었다. 아들이 아비를 두려워하고 서먹해했다.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울컥하여 곧 울음이 터져 나올 듯 했으나, 어쩌자고 입이 닫혀 다정한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아비와 아들이 그렇게 눈을 피한 채 앉아 있었다. 아비와 아들 대신 늙은 대신들이 울었다. -181~182쪽  

그곳이 세자의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내가 저들의 세자니라. 그리고 네가 저들의 원손이다.'
어린 원손이 고된 하루에 지쳐 말 등 위에서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졸고 있으니 세자의 마음속 말도 알아듣지 못할 터였다.
'보거라, 네가 비루하나 갸륵한 저들의 임금이다.'
세자가 졸고 있는 원손을 자신의 말에 옮겨 태우게 했다. 깜짝 놀라 깨어난 원손이 황급히 괜찮다 하는 것을 세자가 기어코 자신의 말에 같이 태우고 그 어린 품을 끌어 안았다. 아비에게 그런 식으로 안겨본 적이 없이 원손이 큰 잘못을 한 듯 몸을 떨었다. -208 ~209쪽 

소현 세자가 꿈꾸었던 건 조선의 비루함이 아니었으나, 그 꿈을 실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소현과 조선의 운명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음에 목놓아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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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2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현을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초반부를 읽고 있는 데 상당히 거칠게 쓰여진 소설이라는 인상이 드는 이유가 뭔지를 모르겠네요.
시대적 배경이 그래서 그런가 라고 다잡아봐도 김인숙작가님의 글패턴이 그런것 같다는 인상이 듭니다. ㅎㅎ
옆지기도 남한산성을 읽은 후 보면 더 좋다고 했는 데 집에 있던 그 책이 어디로 사라졌는 지 찾지 못하는 지라 걍 읽고 이쎄요. ㅋㅋ

순오기 2010-06-24 08:45   좋아요 0 | URL
아~ 지금 소현을 읽고 있군요. 나는 한 달 전에 읽었는데 리뷰를 이제 썼어요.ㅜㅜ
남한산성, 소현, 최숙빈까지 읽으면 한 줄에 꿰어지는데, 최숙빈은 소설이 아니랍니다.^^

비로그인 2010-06-2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소현세자에게 푹 빠져서 5마넌이 넘는 심양장계까정 구입했다는 뭐 가슴절절한 야그가 있죠.
왜 절절하냐구여?
반도 안되는 값에 팔아야 했으니까...
심양장계...그것이 나에게 소현세자에게로 데려다 줄 줄 알았어요.
바뜨 그러나, 네버....

오다노부나가와 소현세자...도 읽을 만 합니다^^

순오기 2010-06-25 07:21   좋아요 0 | URL
작가가 심양장계를 참고했다네요.
소현세자도 가슴 절절하잖아요.ㅜㅜ

오다노부나가의 소현세자도 있군요. 기회가 되면...

하늘바람 2010-06-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팠던 책이에요

순오기 2010-06-25 07:21   좋아요 0 | URL
읽고픈 책은 많고도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