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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전 유럽을 뒤흔든 페미니스트 전사 알리스 슈바르처의 대표작으로, 여성문제를 파헤친 킨제이보고서 같은 책이다. 독일에서 이미 3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라는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미없는 이론만 늘어놓은 책이 아니고, 실제로 여성들과 인터뷰한 내용이기에 공감이 갔다. 독일 여성 뿐 아니라 지구촌 어느 구석에 살든 수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며 끄덕일 이야기다. 시원스레 자신의 얘기를 밝힌 그녀들이 고마웠고, 화통하게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낸 저자에게 관심이 끌렸다.
철부지 소녀의 청순함과 이십대의 싱그러움, 삼십대의 분주함과 사십대의 원숙함 그리고 오십대의 노련함이 잘 녹아든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여자이다. 한 여름의 시원한 숲 혹은 이끼가 잔뜩 낀 우물 속 같은 청명함과 부드러움이 넉넉한 여자.(331쪽)
옮긴이는 슈바르처를 이렇게 묘사하며, 25년 전 그 절제되고 둔탁한 독일사회를 벌집 쑤셔놓듯 들쑤셔 놓은 책이 도대체 오늘날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제시했다.
이 책은 여자와 남자를 묶어주는 그 아름다운 유혹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과 성!' 이 아름다운 이름은 여성들이 곤욕을 치러야 하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한다.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녀들의 사례가 리얼하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움츠러든 여인들, 특히 성적인 억압으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불감증이 된 여성들, 동성애자에게 느끼는 감정의 문제들, 가사와 직장일에 시달리는 주부들, 남편의 도움이나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 등, 좀 읽기에 민망한 부분도 있었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물론 이 책이 출판됐던 30여년 전보다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경제활동으로 사회는 좀 더 진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여성을 억압하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그녀들의 사례 하나하나는 특수하지만 '보편적'이다. 중산층 여성, 빈곤층 여성, 전문직 여성, 비정규직 여성, 학생까지 등장하는 여성들의 위치는 다양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성적 억압에 처해 있다. 남성들은 여성과 신체적 구조가 다를 뿐인데, 엄청난 성적 우월감을 갖고 여성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특히 남녀간의 성적 문제들은 사소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성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작은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엄청난 차별을 감수했던 여성들이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이야기로, 여성들이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다운 미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던 그 여성다움을 결연히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