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이 우리들의 작문교실 2
이미륵 지음, 정규화 옮김,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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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미륵은 우리말이 아닌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3.1 운동 이후 쫒기듯 독일로 망명했고, 급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 독일에서 사망했다.
그는 독일어로 한국의 정서와 풍습을 아름답게 그려내 독일문학의 아름다움을 빛낸 작가로 인정받았다. 한국어로 쓴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1940년대 동양의 조그만 나라 한국을 독일에 알린 작가이기도 하다.  

 

무던하게 살라고 이름을 '무던이'라 지었을까? 하지만 부모의 바램과는 다르게 결코 무던하게 살지 못한 무던이의 삶이 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이미륵 자전적 이야기로 작품 속에서 무던이가 좋아했던 '우물이'는 바로 이미륵 자신이다. 무던이는 열두 살에 처음 만난 지주의 아들인 세 살 어린 우물이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엄연히 신분이 다름에도 우물이와 혼인하면 좋겠다는 꿈을 꾸는 철부지 딸이 안스러웠을 어머니 수압댁의 마음도 읽힌다. 어른을 위한 동화지만 초등 3~4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동화다. 

어쩌라고 무던이는 첫눈에 우물이에게 반했을까?
당시엔 여자들이 친척이 아닌 남자를 쳐다보거나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내외'하던 시대였는데... 어리지만 친절한 우물이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 무던이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에 보는 내내 긴장했다. 

우물이 작은어머니의 사정으로 하룻밤 무던이 집에서 자게 된 우물이, 무던이는 우물이와 같이 밥도 먹고 곁에서 잠을 잘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그러나 신분이 달라 결코 우물이와 혼인할 수도 없으며, 아직 어린 우물이와 같이 놀러다니거나 말을 나누면 안된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에 마음을 거두어 버린 무던이가 짠하다. 무던이의 첫사랑은 그렇게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게 되었다. 

 그러나 둘이 함께 했던 짧은 시간과 대화는 언제나 무던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너 늘 나하고 같이 자지 않을래? 이렇게 같이 누워 있으니깐 참 좋아."
"그래, 참 좋아."
"너는 내가 동이 트는 걸 볼 수 있게 아침마다 일찍 나를 깨워 주어야만 해. 그리고 등잔불도 켜 놓고, 또 다른 사람들이 아침밥 지으러 나가더라고 너만은 내 옆에 있어 줘."



우물이가 멀리 공부하러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무던이는, 어머니 생신에 쓸 고기를 사오는 것도 잊고 돌아왔다. 다시는 우물이를 볼 수 없을 거라며 슬프게 울었다. 무던이는 어머니의 생신에 입을 새치마도 마다하고, 죽은듯이 침묵 속에 잠겼다. 어머니도 속상해서 당신의 생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고 말씀하셨고... 무던이는 그날 밤, 어머니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랑스런 소녀였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내일 아침 일찌감치 가서 고기 사 올게요!"(41쪽)

무던이는 주막집 주모의 중매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바로 윗마을 젊잖은 신씨댁 아들에게로. 그댁에선 얌전한 무던이가 마음에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고 사람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무던이가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부잣집으로 시집보내게 되어 흡족했다. 무던이는 좋은지 어쩐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환하게 비추는 달빛에도 숨어 버리고 싶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당시의 혼인 풍습을 알 수 있는 묘사와 삽화가 아름답다. 혼인을 앞두고 오고가는 사주와 봉치함,(혼례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청색 홍색의 비단과 혼서를 넣은 함)을 받고, 많은 이들의 축하와 인생선배들의 시집살이 교훈을 들으면서도 무덤덤하다. 어머니도 딸이 시집에 가서 나서지 말고 조심하라며 당부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착한 게 제일이라는 말씀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남편 일봉은 무던이를 아주 좋아했다. 어른들 앞에선 좋아하는 표시를 할 수 없어 밤에 몰래 친정마을에도 데려가고 함께 팔을 끼고 걷기도 했다.



그러나 무던이를 좋아하던 일봉은 한 순간 마음을 닫아 버린다. 어쩌자고 무던이는 신랑에게 우물이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정말 순수한 무던이 마음을 몰라준 일봉이도 야속하고, 그렇다고 집을 떠나버린 일봉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도 야속하다. 아~ 이제 남편이 좋아진 무던이 마음도 몰라주다니.......



일봉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무던이는 어머니의 아들을 다시 찾으라며 조용히 집을 나왔다. 비가 쏟아지던 그 날 밤 비를 맞으며 오래도록 수압댁의 집 댓돌 위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의 모습은 그 후 다시 볼 수 없었고, 혼자 늙어가는 과부 수압댁의 삶에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100년 전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보이는 애잔한 이야기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영혼의 무던이가 견디기엔 힘든 세상이었을 게 분명한 세월. 야무지고 똑똑한 무던이의 삶이 말 한 마디에 끝나버린 어이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일봉이는 좀 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졌으면 무던이의 마음을 온전하게 받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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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3-2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어른들이 지어주신 이름이 요즘 이름보다 더 속 깊은거 같아요. 무던이.. 좋은 이름이네요. 개똥이의 뜻도 참 좋던데. 우물이는 무슨 뜻이 있는 이름일까요?

순오기 2010-03-29 17:39   좋아요 0 | URL
우물이는 글자 그대로 '우물'을 뜻하는 이름일지도...
미륵은 미륵보살께 빌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아명을 미륵이라 했거든요.

섬사이 2010-03-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수나무 출판사에서 이미륵님의 작품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것 같군요.
계수나무의 그 우직함이 마음에 들어요. ^^

순오기 2010-03-29 17:40   좋아요 0 | URL
계수나무에서 이미륵의 작품이 무던이와 압록강은 흐른다 상.하가 나왔지요.
지금은 보물창고에서 나온 압록강은 흐른다도 있고요.^^

후애(厚愛) 2010-03-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던이> 담아갑니다~ ^^

순오기 2010-03-30 10:56   좋아요 0 | URL
아~ 안타까운 무던이, 마음이 아파요.

희망찬샘 2010-04-0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던이는 좀 별로였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순오기 2010-04-04 12:26   좋아요 0 | URL
무던이의 사랑이 너무 짠하잖아요, 고런 순수함을 질투해서 남편이 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