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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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금이 작가와 황선미 작가를 동화계의 쌍두마차라 생각한다. 동화를 즐겨 읽는 엄마라면 이 두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낼 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9년째 하면서 두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토론했는데,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초등독서회에서 두 번, 중학교독서회까지 세 번이나 토론한 작품이다. 그만큼 인기 있고 작품성도 뛰어나 나눌 이야기도 많다. 엄마들은 잎싹의 모성애와 자아실현에 초점을 두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내며 감동을 나누었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토론하던 장면이 지금도 떠오른다.

이 책은 2000년에 나왔지만 2002년에 알게 되어 구입했고, 막내가 일곱 살부터 눈물 흘리며 읽고 또 읽은 책이라 더 애정이 간다. 중학교 2학년인 막내는 지금도 간혹 책장에서 꺼내 읽는다. 눈높이가 다른 만큼 읽을때마다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고 말한다. 막내를 비롯한 삼남매가 두세 번은 읽었고, 나도 양장본으로 세 번 페이퍼백으로 두 번을 읽었더니 잎싹의 마음이나 장면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모성애와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를 잘 드러낸 황선미 작가 최고의 작품이다. 독서력이 좋은 초등 저학년도 충분히 읽을 수 있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는 책이다.

 

양장본과 페이퍼백은 내용이나 그림이 다르지 않다. 저학년을 위한 페이퍼백은 양장본보다 책이 크니까 글자와 그림이 조금 커서 읽기에 편하다. 차이라면 양장본은 작가후기가 수록되었고, 페이퍼백은 어린이에게 주는 작가의 말이 앞에 있고 뒤에는 아동문학 평론가 김서정선생님이 어린이에게 주는 글이 실렸다. 뒷표지도 페이퍼백은 김서정 선생님이 양장본은 김용석교수의 글이라는 게 다르다. 

 

암탉은 어느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알낳는 닭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잎싹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잎싹'이란 이름을 붙이고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과, 알을 품어 새끼를 까고 싶은 꿈을 가졌기에 여늬 닭과는 달랐다.

잎싹은 물렁거리는 알을 낳으며, 점차 알을 낳고 싶은 마음도 없고 입맛도 잃어 폐계닭으로 내쳐진다. 병든 닭들과 구덩이에 버려졌지만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족제비에게 벗어나 마당으로 온다. 수탉부부와 오리를 비롯한 마당식구들은 잎싹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잎싹은 알을 낳아 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꿈꾸며 버틴다. 

어느 날, 잎싹은 찔레덤불에 홀로 있는 앞을 품게 되고 청둥오리 나그네는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먹이를 가져다 준다. 잎싹은 가슴 털을 뽑아 따뜻한 맨살로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족제비로부터 잎싹과 알을 지키기 위해 밤마다 처절하게 춤을 추던 청둥오리는, 아기가 깨어나면 마당으로 가지 말고 저수지로 가라는 당부를 남기고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잎싹은 왜 청둥오리가 저수지로 가라고 했는지 알 수 없어, 새끼를 위해 마당으로 찾아 든다. 마당식구들의 냉대는 여전했고 잎싹은 비로소 자기가 부화시킨 새끼가 병아리가 아닌 오리라는 걸 알게 된다. 그제서야 청둥오리 나그네가 했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슬픔으로 고통을 느낀다.  

청둥오리 새끼인 초록머리를 잘 키우려는 잎싹은 마당을 나와 물가에서 떠돌며 사냥꾼 족제비를 피한다. 나그네처럼 겁내지 않고 맞서는 용기만 있으면 절대로 족제비가 건드리지 못할 거라며, 날마다 잠자리를 바꾸어 초록머리를 지켜낸다.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한 초록머리는 부쩍 자랐지만 우울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었다. 족제비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넋을 놓은 초록머리를 지키기 위해 잎싹은 족제비에게 덤벼 들었다.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지만 내동댕이처진 잎싹은 눈을 감았고, 초록머리는 마침내 날아 올랐다. 

만세~ 기적이다! 잎싹은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 살았던 일과 알을 품은 것도 기적이었는데, 초록머리의 비상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족제비를 겁내지 않아도 되고, 넓은 저수지를 금세 다녀올 수 있고, 갈대숲 위에서 둘러보고 좋은 잠자리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잎싹의 눈물겨운 모성애로도 초록머리의 쓸쓸함을 알지 못했고,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인시킨다. 하지만 초록머리는 마당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마당에 가도 외로울거라는 걸 아는 잎싹은 말리고 싶었지만 멀찍이서 뒤따라 갈 뿐이다. 

마당에서 살아도 여전히 따돌림당하고 외톨이인 초록머리는 주인여자에게 붙잡혀 다리에 끈을 매고 기둥에 묶인다. 잎싹은 기회를 엿보다 주인여자가 기둥에서 풀었을 때, 달려들어 초록머리가 도망치도록 돕는다. 자식을 지키는 엄마는 어떤 일에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건, 보편적인 모성애의 특징이다. 물론 청둥오리 나그네의 부성애도 뒤지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초록머리는 다리에 끈을 매단채 날아 올라 저수지로 돌아온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52쪽)  
   

초록머리는 사춘기가 되었을까? 저수지로 돌아온 후로는 잎싹에게 다가오지 않고 잠자리도 따로 정했다. 잎싹은 먼 발치에서 초록머리가 잘 먹고, 잘 자는지 지켜보는 것 뿐이라 슬프고 외로웠다. 서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초록머리를 이해하고 발에 묶인 끈이라도 없애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저수지의 갈대밭에 족제비떼가 몰려 들었고, 초록머리는 뭔가 굉장한 새로운 것이 몰려온다는 걸 느낀다. 놀랍게도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든 새들은 청둥오리 무리였다.  

잎싹의 모성애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초록머리를 청둥오리 무리로 떠나 보낸 뒤 잎싹은 커다란 슬픔과 외로움을 느낀다. '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결국 떠나는구나!' 땅이라도 치며 통곡하고 싶지 않을까?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시키며 느끼는 배신감(?)은 수습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잎싹의 심정을 가늠하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 자식이 장성하면 떠나 보내는 게 정한 이치라는 걸 알지만, 청둥오리 무리에게도 이방인으로 겉도는 초록머리를 지켜보는 잎싹은 안타깝다. 다리에 묶인 끈 때문에 야생이 아닌 집오리였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리에 끼이지 못하고 힘들고 외로워서 엄마를 찾아 온 초록머리는 지쳐 잠이 들었고, 잎싹은 초록머리 다리에 묶인 끈을 밤새 부리에 피가 나도록 쪼았다. 비록 발목의 끈은 무리 속에서도 알아보기 좋은 내 아기라는 정표로 남았지만, 자식의 장래를 위해선 피흘림도 불사하는 모성애를 가진 엄마라 절절하게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잎싹은 초록머리가 무리와 같이 떠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절정! 아직 눈도 못 뜨는 족제비 새끼들을 발견한 잎싹은, 초록머리를 노리는 족제비를 유인하기 위해 그 새끼들을 이용한다. 어린 것들을 움켜 쥐고 족제비와 맞짱뜨는 잎싹, 비참한 표정으로 제 새끼들의 안전을 애원하는 족제비는 보편적 모성애의 진수를 보여준다. 잎싹과 족제비를 내세워 우주적 생명 질서를 설파하는 이 장면은,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생명의 목숨을 이어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제다.

   
 

"제발, 조심해. 아직 눈도 못 떴어."
족제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러나 잎싹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우리를 놔 줘야 할 때가 많았어. 하지만 안 그랬잖아. 뽀얀 오리도, 나그네도, 나와 내 아기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쩔 수 없었어. 배고팠을 때 하필 눈에 띄었을 뿐이야. 굶지 않으려고 그랬어. 우리는 지금도 배가 고파."
"하필이면 눈에 띄었을 뿐이라고? 아니, 넌 항상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어. 그러니까 너도 너의 소중한 새끼들을 해치겠어! 그래야 공평하지."
아아, 그러지마. 그건 공평한 게 아냐. 너는 배가 고픈 게 아니잖아. 나는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해. 먹을 만한 것이라면 뭐라도."
"나는 평생을 너한테 쫒기면서 살아온 기분이야. 지치고 슬픈 적이 많았어."
"믿을 수 없어,. 너처럼 운 좋은 암탉이 또 있을까? 나는 번번이 너를 놓쳤고. 너는 그 동안 많은 일을 했잖아. 나야말로 지쳤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따라다녔으니 오죽하겠어."
"어쨌든......." (181~182쪽)

 
   

잎싹과 족제비는 각기 제 자식의 안전을 위해 타협한다. 청둥오리 나그네가 갈 수 없었던 그 곳을 초록머리는 파수꾼이 되어 훨훨 날아갔다. 잎싹에게 찾아와 머리 위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작별을 고하고... 잎싹은 언젠가 말하려고 간직했던 말들을 미처 들려주지 못하고 떠나 보낸 후, 세상이 너무 조용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했다. 잎싹은 '날고 싶은 또 다른 소망을, 자신보다 몸이 간절하게 원하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잎싹은 고달프게 살았지만 행복했음을 기억하며, 족제비 새끼들의 먹이가 되어 주는 것으로 우주를 품어 안은 모성애를 마감한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비록 적일지라도 그 새끼를 불쌍히 여겨 목숨을 내어준 잎싹은, 진정한 모성애의 완성이고 실현이었다. 잎싹이 결코 평범한 암탉이 아니었기에 가슴이 마구 떨렸다. 흰눈이 아카시아 꽃처럼 내리던 날, 잎싹은 아주 가볍게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았다. 비쩍 말라서 축 늘어진 암탉을 물고 가는 족제비를 보며 자유를 느꼈으리라!
잎싹, 이제 모든 짐 내려놓고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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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11-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
감동깊게 읽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순오기 2009-11-24 10:3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랜만이네요.
간간이 들러서 글은 읽었는데 댓글을 못 남겼거든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보고 또 봐도 감동이지요.

같은하늘 2009-11-2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이 책 보았는데...
밀린 서평단 리뷰도 못 쓰고 있으니... ㅜㅜ

순오기 2009-11-25 02:44   좋아요 0 | URL
이번에 리뷰 쓰느라고 다시 읽었어요.^^

희망찬샘 2009-11-2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서평 엄청 많이 쓰셨네요. 정말 부지런도 하시어라. 이러다가 다필상 타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맘은 많이 쓰고 싶은데 힘이 딸려 쓰지를 못 하겠어요. 엉엉~

순오기 2009-11-29 19:19   좋아요 0 | URL
다독다필상을 목표로 했는데 못 쓴 날이 많아서 자신은 없지만 마감일인 내일까지 올인해봐야죠.^^

잎싹 2009-11-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잎싹이라 이 책은 꼭 추천하고 마는 성격이랍니다.
저에게 잎싹이란 닉네임을 갖게 해준 책이죠.
강추.... 엄마들도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순오기 2009-11-29 20:33   좋아요 0 | URL
인팍에서 어떤 분이 댓글에 '잎싹님 닉이 여기 나온 잎싹'이냐고 묻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