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중학교 2학년, 우리막내가 4월에 읽고 남긴 독후감을 이제야 올린다. 엄마는 청소년에게 추천하기 망설였는데, 정작 십대 우리 딸은 감동 됐는지 장문의 독후감까지 남겼다. 이 책은 어른들이 '지나치다'고 염려하는 것과는 다르게 십대에겐 충분히 공감되는 모양이다. 지나치게 친절한(^^) 줄거리가 줄줄 나오지만 아이가 남긴 글 그대로 올린다.  

 

미래를 바꾸는 건, 현재의 선택이다 - 중학교 2학년 선민경  

처음에는 그냥 마법사 빵집이라는 제목에 혹해서, 판타지가 섞인 청소년문학이란 흔치 않으니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정말 오랜만에 독후감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이상한 빵집,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는 단골손님 남학생, 파랑새를 닮은 점원 소녀, 그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마법사인 점장.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재료들이 모여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달콤하지만, 약간 씁쓰름한 빵을 만들어 냈다. 마법사인 점장이 만드는 각각 다른 효과의 과자들, 밤에는 다시 파랑새로 돌아가는 파랑새 소녀, 오븐에 이어져 있는 방, 이러한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었으면서도 청소년문학의 끈을 적절히 쥐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살하고, 현재 주인공 소년은 아버지, 새어머니, 새어머니의 딸 무희와 살고 있다. 처음부터 시작이 엇갈렸다. 새어머니는 소년에게 어머니로서의 권력을 무기로 휘두르려 했고, 소년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일정한 선을 긋고 있었다. 거기에 평범한 아버지처럼 보이나 속으론 가장 비열한 아버지가 보이는 가정에 대한 무관심 등. 사소한 것들이 엉키고 설켜 점점 소년은 아침 저녁 모두 빵을 먹고,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인 방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여동생 무희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그 즈음이다. 처음에는 무희 학원의 영어 강사를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분노한 새어머니에게 폭행당하던 무희가 범인으로 가리킨 건 바로 소년. 그 후의 일은 끔찍했다. 말을 더듬는 소년에게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새어머니의 폭행, 말리지 않는 아버지. 겉 표면으로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가족의 틀이 드디어 깨어진 셈이다. 무희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 곁에 있는 ‘아무나’였던 자신을 지목한 거라는 소년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도망친 소년은 그저 단골손님일 뿐이었던 위저드 베이커리에 한동안 안주하게 된다. 평범해 보이는 오븐 너머로 이어져있는 마법사의 방. 난 그 곳이 가장 신비했다. 소설에서처럼 부글부글 끓는 병들, 벽난로에 걸어져 있는 둥그런 냄비,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 오븐을 기점으로 마법의 세계와 바깥 빵집, 현실의 세계가 나눠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모른 채 그저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 어쩌면 바로 가까이에,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 두근두근 했다.

점장이 파는 마법의 과자를 온라인으로 산 손님들은 가끔 베이커리에도 찾아온다. 거의가 물건에 문제가 있는 경우인데,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결국 또 다른 물건을 찾을 뿐인 인간의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마법의 사용은 반드시 구매자에게도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불교식으로 치면 하나의 업인 것이다. 감정만 앞세워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 한 채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구매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에 씁쓸해 하면서도 점장은 물건을 판다. 그는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란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 존재. 누군가가 정해져 있던 일을 바꿔버리면,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우주에 변화가 온다. 정작 자신은 한 달에 한번 자는 잠에서도 몽마에게 시달리면서도, 그는 누군가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 겉으로 보기엔 냉정하고 강해보이나, 사실은 가장 다정하고 지친 사람이 그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선택하고 금방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한 교복소녀는 성적이 좋은 친구에게 질투해서 악마의 쿠키를 주었는데, 그 소녀는 시험을 망치고 친구들 앞에서 큰 실수를 해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 물건을 산 아이는 이럴 줄 몰랐다며 점장에게 펄펄 뛰다가, 결국 이 일을 해결할 또 다른 물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저게 우리의 모습인가? 너무나 추했다.

결국 교복소녀의 일로 문제가 되어 경찰이 가게에 찾아오자, 점장은 소년에게 선물을 주며 집으로 가라고 한다. 선물이란 바로 시간을 되돌리는 과자. 과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소년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짜며 조금쯤 희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소년에게 보인 건 침대에 앉아 있는 무희를 더듬는 아버지 뿐이다. 그 상황에서도 침착한 아버지의 모습은 비열한 인간으로 질이 나빴다. 그래서 그는, 소년이 오해를 사고 쫓겨날 때도 말리지 않았던 거였다. 집으로 들어서다 그 장면을 본 새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달려들다가 곧 소년도 아버지와 같이 범한 줄 알고 소년에게 달려든다.  

 

떨어뜨린 시간 과자를 주우며 어딘지도 모를 때로 돌아가라고 간절히 염원하는 소년. 그 뒤에, Y와 N의 경우가 있다. 과자를 먹고 시간을 되돌려 재혼을 하지 않게 된 경우와, 과자를 먹지 못한 경우. 그러나 어느 경우든 아버지는 결국 성추행범으로 잡힌다. 삶이란 억지로 풀어내려 하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천천히 시간이 지나고, 지나간 일에 대한 이해와 되돌아봄이 있어야 풀리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 또한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에 소년이 시간을 되돌리는 과자를 먹는 경우와 먹지 않는 경우로 인해 이야기의 끝이 나눠지는 것처럼, 미래를 바꾸는 것도 지금의 작은 선택 하나다.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9-09-2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 읽는 걸 보고서 고3 학생이 자기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더라구요. 우려하는 것과 달리 청소년들도 공감하면서 인상 깊게 읽나봐요.^^

순오기 2009-09-27 01: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십대들에겐 성추행이 크게 부각되지 않나 봅니다.

희망찬샘 2009-09-2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읽지 말라고 하니 더 관심을 가지더라구요. 울 아가들은 이거 안 빌려 준다니 사서 읽었어요. 그래서 그냥 책꽂이에 꽂아 주었어요.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척 훌륭하니까... 하고 넘어가기로 했어요.

순오기 2009-09-27 01:29   좋아요 0 | URL
못보게 하면 더 보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지요.^^

같은하늘 2009-09-2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의 후기가 떨떠름해서 안보려고 했는데...
저도 한번 시간날때 봐야겠네요.^^

순오기 2009-09-29 08: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나도 차일피일 하다가~ 결국 보게 됐지요.
그 분위기와 느낌을 알려면 결국 보게 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