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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의 우연한 현실 ㅣ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평점 :
사계절 출판사의 1318문고 쉰네번째 책으로, 경향신문 전면광고에 내가 쓴 리뷰가 인용되어 받은 선물이다.^^ '짜장면 불어요, 우리들의 스캔들'로 만났던 이현 작가의 단편 여섯 편이 실린 신선한 청소년 소설이다. 에픽 하이, 리쌍, MC스나이퍼, 드렁큰 타이거, 빅뱅의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썼다는데, 작가가 거론한 힙합을 나는 들어본 적도 없어 이제라도 들어봐야 겠다.
<어떤 실연>은 세상엔 이론가와 실천가가 따로 있듯이 연애에도 적용된다. 연애 실천가인 유라는 좋아하는 감정만 생기면 저돌적이지만 이론가인 송미는 가슴 속 짝사랑으로 고백도 못하고 끝내버린다. 옛날과 비하면 연애의 풍속도는 많이 다르지만, 연애에 관한 이론가와 실천가가 존재하는 건 변치 않은 것 같다. 청소년들의 연애 심리와 현실을 담아낸 발랄한 소설이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표제작으로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다룬 소설이다. 가상공간이 아닌 또 하나의 우주공간에 나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건 충격이다. 다중우주를 넘나들수 있는 터미널이 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유혹은, 입시에 올인하는 십대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환타지라 생각됐다. 또 다른 나와 잠시 자리를 바꿔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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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는 인생이, 한마디로 '씨팔'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더 꼽으라면 '하필이면' 정도를 댈 수 있었다. 인생의 즐거움이라야 고작, 누군가를 후려갈길 때의 짜릿한 전율 정도였다. 그렇다고 달리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8월 7일 오전 11시 15분 까지는, 그랬다. (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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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은 십대들의 잘못된 성의식으로 자행된 강간을 얘기한다, 남자들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왜 여자들이 거부하는 'NO'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싫다'는 절규를 곡해하는 그들의 성의식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참 난감하다. 성추행이나 강간 등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성폭력을 없애려면, 자녀들 특히 아들 가진 부모들이 바른 의식을 갖고 잘 키워야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로스웰주의보>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에서 실제 있었던 비행물체 사건 이후를 상상한 이야기로 섬뜩하게 다가왔다. 당시에 남겨진 외계인 W와 G의 시신을 찾으러 온 Q를 만난 가람이는 그들을 찾는 일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알려준다. 인적이 드문 건물이나 옥상에 중심 촉수를 박아 놓고, 투명하고 가는 촉수를 뻗어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채 빨판을 이용해 에너지를 빨아들인다는 '푸라푸라'. 사람들은 빼앗긴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미친듯 뛰어다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해 점점 미쳐간다는 설정은 정말 오싹한다. 이런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Q를 따라 나서며 쌍둥이 언니에게, 푸라푸라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천천히'걷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거라고 알려준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들이 새겨들어야 할 듯...^^
<그가 남긴 것>17평 복도식 아파트 좁은 거실 이부자리에 몸을 누인지 5년째인 무기력한 아버지, 잘 나가던 회사 건설현장 사고 책임을 뒤집어쓰고 빈손으로 쫒겨난 아버지, 그 화풀이를 소주로 달래느라 당뇨병에 걸린 아버지.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딸 정아는 정보고등학교로 전학하고 엄마는 마트 판매원으로 종사하는 빡빡한 현실이 안타깝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들에게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을 뿐 아니라 정아와 정후의 꿈과 희망마저도 앗아가버렸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 남매를 사람들은 탓한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리 양보해주는 그런 사이로 다시 태어나면 아빠를 미워하지 않을거라며 흐느끼는 정아가 짠하다. 소설보다 더한 현실이 벌어지기에 아버지나 아들딸도 탓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오류 하나~ 입관하기 전에는 상주들이 상복을 입지 않고, 입관이 끝나야 비로소 상복을 입는데~ 여기선 장례식장에 가서 바로 상복을 입고 그 후에 입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오답 승리의 희망> 모범답안만을 요구하는 세상(학교)에 자기 마음에 따른 정답을 내놓겠다는 당찬 이오구와 곽정, 이들 때문에 웃었다. 여러가지 규정에 묶였지만 거부할 수없는 고등학교 현실을 풍자하며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놓은 마무리였다. 전북지역 청소년 인권 모임 '나르샤'가 발간하는 청소년 신문이라는 '오답 승리의 희망'을 줄여서 '오승희'라고 한단다. 실제 있는 청소년 인권 신문을 소재로 그들이 되찾아야 할 인권을 생각케하는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