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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조선을 그리다 ㅣ 푸른도서관 31
박지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6월
평점 :
2003년 제1회 푸른문학상 수상작으로 만났던 '김홍도, 무동을 그리다'를 첫 이야기로, 2007년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작품집 '지구를 떠나며'에 실린 '아버지와 함께 가는 길'까지 다섯 편의 중,단편을 모은 김홍도 연작소설집이다. 첫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를 이미 다른 책에서 읽었기에 썩 호감이 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다른 책에 실렸던 작품을 다시 모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선 새로운 이야기를 원했는데, 이미 읽은 작품이 실린 책을 사서 본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은 선물받은 책이지만...
이런 이유로 6월에 받은 책읽기를 미루었는데, 읽고나선 미뤄두었던 걸 후회했다. 박지숙 작가의 김홍도 사랑이 읽히고,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 긴장과 이완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김홍도의 그림을 매개로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하고 끄덕이게 했다.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에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김홍도, 무동을 그리다>에서 스승 강세황의 추천으로 유부자의 그림을 그려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나, 스스럼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라고 비아냥 댄 어린광대 들뫼(무동)를 만나 자신의 그림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김홍도를 그려냈다. 자신의 천재성에 우쭐하는 열한 살 김홍도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면서도, 들뫼를 만난 20년 후에야 비로소 들뫼의 슬픔이 깃든 웃음 <무동>을 그렸다는 결말에 동감이 된다.
<천지개벽 서당에서>는 중인신분의 김홍도가 양반과 천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당시는 신분제도를 거부하거나 뛰어넘을 수 없었다. 종에서 면천된 김서방 아들 차돌이를 받아준 서당의 맹훈장을,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며 몰아세우는 양반들과 범호는 긴장감을 더한다. 꿋꿋하게 버티는 훈장님의 현장교육과 서당 친구들 덕분에 <대장간>과 <서당>이 그려졌을거란 상상은 즐겁다.
<도깨비놀음>은 김홍도가 도화서 화원이 되어 스물한 살에 수작의궤를 맡게 된 이야기다. 실력이 부족한 화원은 기용하지 않겠다는 오만불손함이 하늘을 찌를 때, 손녀의 병이 낫기를 갈구하는 거지 할머니를 만난다. 밤마다 도깨비들과 노는 연홍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도깨비 마음까지 달래가며,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용하고 존재하지 않는 만물까지 끌어안는 넉넉한 마음을 되찾아, 화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경헌당 수작도>를 완성한다.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정조의 사랑을 받은 김홍도가 중인 신분으로 연풍 현감이 되었던 이야기다. 고을 현감으로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돌보기 위해 애쓴 김홍도는 마음처럼 성과를 얻지 못한다. 정적의 장계로 죄인이 되지만 변명하지 않는다. 평생 자신이 가야할 길은 화가의 길이었음을 깨닫고 정조의 부름으로 화성행차 의궤를 맡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 길>연풍 현감으로 있을 때 느즈막히 얻은 아들 연록이 화가의 길로 들어서 아버지를 따른다. 늙고 병들고 가난한 아버지는 아들의 월사금을 위해 그림을 헐값으로 내놓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은 돈 몇 푼에 사고 팔 그림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보고 즐겨야 할 그림'이라며 거두어 들인다. 아버지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 함께 가는 김홍도 부자의 산행은 찡한 감동을 준다.
박지숙 작가는 김홍도를 사랑하고 질투했다고 말한다. 김홍도의 힘은 무엇이고, 재능은 어디서 왔을까? 탐구하며 어떤 분야에도 모자람 없는 김홍도를 흠집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만 지극한 정성을 쏟은 결과였기에 그를 건드릴 수 없었노라고... 하지만 천재인 그도 평범한 우리네와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 고뇌를 작품으로 승화시켰기에 위대하다는 고백으로 마친다. 작가가 김홍도에 천착한 결과물인 연작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