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바람돌이님이 추천하기에 중학교 구입도서 목록에 넣었고, 도서실에 책이 들어와 읽게 되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내겐 결말이 허무했지만, 내밀한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라 읽는 재미는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열아홉 살의 작가가 두번째 쓴 작품으로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란다. 아쿠타가와상이 어떤 위치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굉장했다고 한다. 작가가 고등학교를 막 빠져나온 생생한 느낌과 체험을 잘 살려낸, 부담없이 읽기 좋고 소통을 얘기하는 주제도 좋았다. 

과학시간 미생물을 관찰하기 위해 다섯 명씩 조를 짜라고 했지만, 어떤 조에도 속하지 못하고 남는 자리에 끼여 앉은 하츠와 니나가와. 그 둘은 다른 아이들을 유치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 고독을 즐긴다. 외톨이인 하츠가 불쌍해 끼워주려는 중학교 때 친구였던 키누요의 배려를, 마음에 없는 수다에 끼어들기 싫어 억지 소통을 거부한다.  

그러나 같은 외톨이 니나가와가 보는 패션잡지에 나온 모델 올리짱을, 중학교 때 만난 적이 있다는 것으로 니나가와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니나가와의 관심 대상은 오로지 올리짱 뿐이라 그녀와 관계된 것이 아니면 어떤 얘기도 나눌 수 없다. 이런 니나가와가 얄밉지만 이상하게 그에게 끌리는 하츠는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오로지 고독하게 종이만 찢어대던 하츠와,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패션잡지만 보는 니나가와의 관계맺기는, 올리짱이란 모델을 매개로 위태위해하게 진행된다. 올리짱의 공연티켓을 사러 밤새 줄섰던 니나가와는 감기로 무단결석하게 되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하츠는 병문안을 간다. 그후 올리짱의 공연에 키누요까지 셋이서 동행한다. 키누요는 니나가와가 하츠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고, 오히려 하츠가 니나가와에게 관심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이성친구로 발전하는 건 아니다. 그런 무관심에 하츠는 니나가와랑 제대로 소통하고 싶어서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었던 것이라 이해됐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그들의 내면을 엿보기하는 맛을 준다고 할까, 2층에 독립된 공간을 갖고 자유롭게 사는 니나가와가 부럽기도 하고, 거기에 드나드는 하츠와 모종의 관계로 발전하는 건 아닌가 기대감을 갖기도 했지만 허무하게 끝나서 아쉬웠다. 그러나 올리짱을 보기 위해 거칠게 다가갔던 니나가와는 비로소 자신과 올리짱의 관계가 소통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츠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게 되었거라고 그 이후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남겨줬다. 문장이 참 감각적이라고 느껴지는 곳들이 많았는데, 다음 문장은 이 책의 주제를 담은 문장이라고 볼 수 있을 듯.

   
 

 전율이 흘렀다. 포화 상태의 기분은 진정되기는커녕 만지는 것만으로도 터질 듯 아픈 여드름처럼 미열과 함께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 다시 올리짱의 세계로 돌아가버린 그 등짝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고 있으니 숨결이 뜨거워진다. 이, 어딘가 쓸쓸하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발로 걷어차버리고 싶다. 아파하는 니나가와를 보고 싶다. 갑자기 솟아오른,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이 거대한 욕망은 섬광과도 같아서 일순 눈앞이 아찔했다. 순간, 발바닥에, 등뼈의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66쪽)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분명, 나와 그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토록 아름답게, 하늘이, 공기가 파랗게 물들어 가는 곳에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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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7-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목이 참 멋집니다.
학창 시절엔 친구 문제로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배려와 사귐을 배우는 거겠죠.

순오기 2009-07-21 19:14   좋아요 0 | URL
제목처럼 살다보면, 누군가의 등짝을 바로 차주고 싶은 적이 있겠죠?^^
학창시절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건 일종의 특권이라 생각해요. 지나고 나면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는 않으니까요.ㅋㅋ

무스탕 2009-07-2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놓고 아직 안읽었어요..;;
순오기님 리뷰보니 더 읽고싶어졌어요. 빨리 읽어야징~~ ^^

순오기 2009-07-21 19:15   좋아요 0 | URL
사놓고 못 읽는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습니까?ㅋㅋ
우리도 많아요~ 술술 잘 읽히니까 어여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