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지 이형진의 옛 이야기 1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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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여우누이'가 원수를 물리치는 복수극으로 읽힌다면, '끝지'는 원수지만 한때 남매로 오누이 정을 나눈 그 마음에 촛점을 맞췄다. 어린이 그림책에 내밀한 심리를 그려낸 이형진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그림이나 내용에 별 호감을 갖지 못한다. 내용은 둘째치고 울긋불긋 알록달록 온갖 색채로 유혹하는 동화책이 즐비한데, 목탄의 거칠고 형체도 분명치 않은 그림에 열광할 아이는 별로 없으니까. 그래서 이 책은 어른들의 독서지도가 필요한 책이다.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어느 해 새벽, 사립문 밖에 버려져 울던 아기를 데려와 '끝지'라 이름 짓고 애지중지 키워 의좋은 남매가 되었다. 끝지는 유독 셋째 오빠인 순돌이를 잘 따랐고...  아침마다 멀쩡하던 돼지와 닭들이 죽어 있었고, 아버지는 세 형제에게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지나 지키라고 했지만 두 형들은 졸았다. 순돌이는 막내 끝지가 외양간으로 들어가 황소의 창자를 꺼내 먹는 걸 보고 아버지에게 고했지만, 불같이 화가 난 아버지는 순돌이 말을 믿지 않고 쫒아내버렸다.



3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온 순돌이는 끝지에게 가족들이 어찌 됐는지 물었더니 천연스레 대답한다.  "작은 오빠 죽은 건 큰 오빠가 알고, 큰 오빠 죽은 건 아버지가 알고, 아버지 돌아가신 건 어머니가 알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나도 모르는 걸." 



가족을 죽인 원수인 끝지를 어찌해야 할지 순돌이가 갈등하는 사이, 끝지는 오빠가 앞섶에 감춰둔 구슬주머니를 빼앗아 달아났다. "끝지야, 가져가지 마. 주머니에서 구슬 나오면 너 죽어. 내가 너 잡으로 온 거야!"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찬 부엌에선 캥 캥 캐앵 캥~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순돌은 죽어가는 끝지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구슬을 주머니에 담아버렸다. 누이를 죽인 게 아니고 가족을 죽인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살아난 끝지는 멀리 가는 오빠에게 감자라도 가져가라며 보자기를 내민다. 아~ 오누이 정 때문에 원수도 갚을 수 없는 순돌, 하지만 끝지는 엄마 여우를 죽인 사냥꾼이 순돌아버지였기에 원수를 갚으러 왔었노라고 말한다. 순돌이가 다시 주머니를 놓자 구슬은 끝지에게로 굴러갔다. 



"끝지야! 죽지 마, 끝지야!"
한걸음에 연기 속으로 뛰어든 순돌이는 숨이 막혀 쓰러졌고,
"죽으면 안 돼. 꼬랑지 오빠아...... "
끝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서로 가족의 원수가 돼버린 오누이,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은 독자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원수지만 한때는 남매 사이였는 걸~~ 어쩌란 말이냐!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읽어내면 오소소 소름이 돋을만큼 절절한 감정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우리 옛이야기는 선악의 대결 구도라 항상 권선징악의 선명한 주제에 길들여졌던 독자도, 어른의 독서지도가 곁들여지면 새롭게 해석한 작가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혼자 읽는 것보다 엄마나 선생님이 감정을 살려 읽어주는 걸 더 좋아한다. 책을 읽고 복수와 형제애에 대해서 토론을 벌여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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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7-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아픈 얘기 같아요. 이형진의 그림은 분위기가 늘 묘하더군요.
오기언니 해산토굴 문학기행 일정 같은 거 좀 알고 싶은데 올려주실래요?

순오기 2009-07-05 13:52   좋아요 0 | URL
분위기가 좀 으시시하지요.^^
우리 일정에 맞춰 해산토굴에 올래요? 그럼 같이 다녀도 좋은데...^^

프레이야 2009-07-05 23:12   좋아요 0 | URL
네,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요.
일단 좀 올려주세요^^

순오기 2009-07-06 00:19   좋아요 0 | URL
내일 아침 최종 확인해서 저녁참에 페이퍼로 상세히 올려볼게요.
여행자보험 때문에 참가자들 주민번호도 확인해야 돼서 바빴어요.
그리고 내일은 아들 학교 시험 감독이거든요.^^

마노아 2009-07-0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누이와 같으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정말 짠하고 찡해요. 그 넘의 정이 뭔지...

순오기 2009-07-06 00:20   좋아요 0 | URL
여우누이와 차원이 다르지요~ 읽어주면서 전율이 일거든요.

같은하늘 2009-07-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많이 본 얘기다 했더니 여우누이...^^
근데 마지막이 참 짠하네요...
허나 순오기님 말씀처럼 그림 때문에 아이들이 안 볼것 같네요...

순오기 2009-07-07 01:37   좋아요 0 | URL
어른들은 끝지에 감동하지만 애들은 여우누이를 더 좋아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