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 왔어... )의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 Pablo Neruda(1904. 7. 12~1973. 9. 23)는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의 이름을 딴 필명으로 쓰다가 이름을 바꾼 칠레 시인으로,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그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에서 거처할 때 그의 전담 우편배달부였던 마리오와의 관계를 유쾌하게 그렸다. 이 책은 메타포의 진수를 보여주는 언어들의 유희가 즐거웠고, 세상 모든 것에서 메타포를 발견하여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네스는 열일곱 살로 첫 눈에 반한 소녀 베아트리스의 사랑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났고, 친절한 네루다는 뚜쟁이가 되어 베아트리스 엄마의 허락을 끌어낸다. 네루다와 마리오는 메타포로 시작하여, 마리오 아들의 대부도 되어 주고 네루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 벗이며 동지로서 우정을 나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며 칠레 국민에게 사랑받은 네루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소설로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이 출렁인다.
내가 본 이 책의 백미는 세 곳에서 발견된다. 초반 네루다와 마리오가 '메타포'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시가 무엇인지 독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인용한 대화는 필요 부분만 발췌했다.^^
"메타포,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당장 포구 해변으로 가,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메타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간단한 시 한 수에 그렇게 절절매서 어떻게 노벨상을 받으시겠어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예요!"
두번째는 마리오의 장모가 된 베아트리스 엄마, 과부 로사 곤살레스 부인의 직설적인 성 묘사는 그 모든 메타포를 압도한다. 마리오를 몰래 만난 후 그가 한 메타포에 퐁 빠져버린 딸에게 하는 엄마의 말이다.^^ 우석균씨 번역인데, 과부가 인용한 속담이 얼마나 맛깔나는지 번역자에게 박수를!
"넌 지금 풀잎처럼 촉촉해. 후끈 달아올랐을 때에는 약이 딱 두 가지밖에 없지. 교미나 여행. 강물은 자갈을 휩쓸어 오지만 말은 임신을 몰고 오는 법이야. 가방 싸!"
"기막혀! 남자애 하나가 내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개짓한다 그랬다고 산티아고에 가야 되다니."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그리고 세번째는 아옌더 정부에서 프랑스 대사가 되어 파리에 간 네루다씨가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 보내라고 했을 때, 마리오가 녹음한 그 모든 소리들과 마지막 10분을 장식한 마리오의 갓 태어난 아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그것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칠레의 정치적 배경을 두고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잔잔한 감동과 긴 여운으로 남긴다. 자신의 철학과 민중의 염원을 시로 읊어낸 네루다 이야기를 연극과 라디오 극으로 만들었고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해설을 보며, 작가 스카르메타가 네루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