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놓은 길 웅진 세계그림책 113
재클린 우드슨 지음, 허드슨 탤봇 그림, 최순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2006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이란다. 난 지금도 이런 책을 읽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마 내 속에 반골 성향이 뿌리 깊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흑인들의 삶에 녹아 있는 애환을 남의 일이라고 밀쳐두기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들이 얻은 자유와 해방은 끝없는 생명을 담보로 했으며 그 피흘림의 결과였음을 알기 때문인지도. 생명을 담보로 하고 피흘림의 역사가 어디 자유와 해방을 얻은 흑인들에게만 요구됐을까? 우리에게도 일제강점기의 피흘림과 오늘도 자행되고 있는 악법과 불법에 의한 구속과 억압에 항거하는 촛불들이 있는 한 피흘림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백인들이 즐기던 퀼트가 흑인들에게 전해져 그들에겐 또 다른 의미가 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들에겐 단순한 조각보 이불이나 장식용이 아닌, 노예로 팔려가는 가족들을 이어주는 천이 되었고, 조각천을 이어 붙이면 탈출로를 알려주는 생명과 자유의 길이 되기도 했다. 흑인들의 퀼트가 이렇게 생명을 살리고 자유를 쟁취하는 도구였음을 발견하곤, 그들에게 무릎 꿇듯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수니의 증조할머니는 일곱 살 때 버지니아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농장으로 팔려갔다. 엄마가 준 헝겊 조각 하나와 산벚나무 열매로 물들인 붉은 색실 하나를 가지고. 팔려간 농장에선 왕할머니가 돌봐주고 밤이면 아이들을 모아 자유를 찾아 달아난 노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낮에는 쉴틈이 생기면 색실로 달과 별과 길을 수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노예 아이들이 자라, 깊은 밤 조각보와 하늘의 달을 등대 삼아  떠나간 그 길을 .... 

 

수니의 증조할머니는 키가 크고 뼈대가 곧은 처녀가 되자 노예 청년과 빗자루 넘기를 했다. 빗자루 넘기란 노예 시절 흑인들의 결혼 풍습으로 신랑 신부가 땅바닥에 놓인 빗자루를 뛰어 넘어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란다.^^ 



수니의 할머니 마티스 메이가 태어났고, 일곱 살이 되자 먼 곳으로 팔려갔다. 엄마의 조각보에서 별 하나와 길 한 조각을 잘라서 가져갔다. 엄마가 그리울 땐 별을 뺨에 대고 길을 품에 끌어안으며 멈마 곁에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견뎌 냈다. 마티스 메이는 비밀지도를 잘 만들었다. 노예들은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거나 조각보 비밀지도를 얻기 위해 마티스 메이를 찾아왔다. 

 

수니의 할머니도 자라서 노예청년과 빗자루 넘기를 했고... 그 청년은 남북전쟁 때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해, 1863년 자유의 몸으로 수니의 엄마가 태어났고 세월이 흘러 수니가 태어났다. 수니는 자유롭게 자라났으면 엄마에게 배운 조각보를 잘 만들었다. 더 이상 북쪽으로 가는 비밀지도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장에 내다 팔았다. 살아가고 기억하기 위해서 조각보를 만들었다. 대부분 글은 몰랐지만 달과 별과 길을 그림으론 읽을 수 있었으니까. 훗날 수니도 결혼했고 딸을 낳아 조지아나라 불렀다. 엄마의 성경책으로 글을 깨친 조지아나는 책에서 손을 놓지 않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쌍둥이 딸을 낳아 캐롤라인과 앤이라 불렀다. 캐롤라인과 앤은 일곱 살 때, 흑인과 백인을 따로 살게 하는 법을 바꾸기 위해 사람들과 줄을 서서 걸었다. 



때론 겁이 나기도 했지만 수니 할머니가 준 조각보를 옷 속에 핀으로 꽂으면 용기가 생겼다. 



앤은 자라서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고, 캐롤라인은 그 노래들을 수놓아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었다. 앤은 딸을 낳았고, 그 딸은 할머니 조지아나처럼 책을 읽었고 엄마 앤처럼 글을 썼다. 글이 안 써질 때는 달과 별과 길을 수놓아 조각보와 커튼과 옷을 만들었다. 엄마의 말을 기억하면서... 

"네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너를 안내해 줄 거란다.
길이 있단다. 얘야, 언제나 길은 있단다."



이 책의 저자인 앤의 딸은 키가 크고 뼈대가 곧은 사람으로 자라나 날마다 쓴 글을 모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아가는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여성4대에 걸친 이야기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에 버금가는 그림책이다. 소중한 생명과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흑인들의 삶을 조각보라는 퀼트에 얹어 들려주는 그들의 삶은 진한 감동을 불러온다. 자신들의 뿌리와 투쟁의 역사를 이야기와 퀼트로 전하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고난이나 영광의 역사도 가감없이 후손에게 전하는 것이 어른들의 진정한 역할이다. 우리 역사도 왜곡하지 말고 진솔하게 전해야 될 우리 몫을 감당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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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린이와 함께 보는 인권 이야기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1-15 02:45 
    그림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모두가 보는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린이가 보는 책이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 다행히 알라딘에는 그림책을 즐기는 어른들이 많아서 참 좋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매번 그림책을 보면서 감탄하는 건, 어려운 주제를 어쩌면 이리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자칭 마니아가 되면서 주제별로 찾아 읽는 재미도 얻게 되었다.
 
 
하늘바람 2009-03-1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답고 아련한 애잔한 책이군요

순오기 2009-03-18 11:49   좋아요 0 | URL
뭉클~ 감동이 오래가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3-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아름답네요.

순오기 2009-03-18 11:49   좋아요 0 | URL
이런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인데...그렇죠?^^

마노아 2009-03-1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책이군요. 이런 책은 꼭 보아야하지요!

순오기 2009-03-18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들한테 이런 책 읽게 하는 걸 보람으로 삼아요.^^

Kircheis 2009-03-18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대의 영향인지, 리뷰만 봐도 눈물이 나네요.

순오기 2009-03-18 11:50   좋아요 0 | URL
찡하지요~ 시간의 영향이 아니라 책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