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길에서 -고재종 -
(제16회 2002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無明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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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2시, 어머니독서회 주관으로 동사무소에서
주민교양강좌로 '고재종시인 초청강연회'가 예정돼 있었어요.
시인은 담양출신으로 광주에 살며 촌사람의 정서가 묻어나는 시를 쓰지요.
5~6년 전,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을 기웃거릴 때 이분께 한 학기를 배웠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인이 중학교 2년 후배더군요.
이런 인연으로 시인의 출판기념회때 부인에게 선배님 소리도 들었고요.
그래서 이분은 내고향을 따서 나를 '당진댁'이라 부르지요.^^
새로 오신 동장님이 담양출신이고 시인과 동년배라며
환영 꽃다발도 준비하고 강연장도 국화로 꾸미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우리끼리 조촐하게 하고 싶었는데 규모가 커졌어요.ㅜㅜ
이렇게 되면 사람을 동원(?)하는 일이 제일 큰 관건이죠.
작년에 3회의 주민교양강좌와 한 번의 시낭송 행사를 하면서
30명, 50명, 80명~ 내가 목표한 숫자만큼은 꼭 채우며 치렀던지라
또 그 짓(?)을 한다는 게 꾀도 나고 겁도 나고 그랬어요.
그래도 일을 벌리면 나름의 목표 달성을 해야는지라
다들 직장 다니거나 (?)놀아도 바쁜 주부들을 30명 모은다는 건 쉽지 않지요.
독서회에 잘 나오는 회원이 10여명이니 한명씩 이웃 손잡고 온다 해도 20명,
나머지 10명을 채우는 일이 내 몫이 되는 거라서......
하여간 문자와 전화로 힘을 썼더니 참여한다는 수가 30여명은 됐지요.
게다가 2시간 강의에 처음, 중간, 끝에 시낭송도 세 사람이 하는데
한 분은 작년말 시낭송에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로 으뜸상을 받은 아저씨
우체국 근무하는데 어제 출장 일정까지 바꿔가며 낭송하기로 약속이 됐지요.
그
런
데
행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낸 강연 한 시간 반 전에 시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오늘 강연 못하겠어요."
"무슨 일이 있나요?"
"어머니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돌아가셨어요."
"어머......."
그
래
서
행사가 취소되고 참여할 모두에게 알리느라 난리도 아니었지요.ㅜㅜ
동사무소에서 날짜까지 넣어 제작한 현수막과
시인에게 드릴 꽃다발과
참여하신 분들과 나눌 다과까지 다 준비됐는데......
다음에 날짜를 바꿔 초청강연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고
오늘은 조문을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어제 강연 취소로 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서 '쿠션'을 뚝딱 읽으며
내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었으니 그도 다행이지요.
경청을 썼던 조신영씨가 쓴 책인데,
1997년 저자한테 5차원학습법을 배웠던지라
잘 아는 분이 쓴 책을 읽는다는 설렘과
5차원학습의 핵심을 담아 소설처럼 쓴 자기계발서라서
충격의 완충 역할을 감당할 내 마음의 쿠션을 만드는 독서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