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를 키우며 엄마가 된 20년, 아이들 교육에 설왕설래하는 말을 들으며 불안감을 갖거나 안타까움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중에도 특히 영어교육에 대한 정책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고, 이 땅의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 역시 비켜갈 수 없지만, 남들보다는 소신있게 대처하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지냈다.

우리 삼남매의 친구들이 초등 저학년부터 영어 수학 과외하며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릴 때, 나는 독서교육에 주력했다. 어려운 가정경제탓도 있었지만 정말 학원비가 아까워서 학원을 못 보냈고, 책값은 얼마가 들어도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아끼지 않고 책을 사들여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고, 마을도서관을 꿈꾸며 이웃의 작은 도서관을 감당하고 있다. 개학을 앞두고 독후감 쓴다며 책을 빌려가는 녀석들, 그나마 숙제라도 있어 서너 권이라도 읽으니 다행이지만, 정말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어쩌다 내가 지켜본 아이들은 친구와 어울림 때문에 학원 수강을 하거나, 숙제를 베껴가기도 했고... 엄마들은 '학원에 있는 시간만큼은 공부를 하겠지, 학원 보냈으니 내 할일은 했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공부는 제가 하는 거지 엄마가 대신하랴'는 생각에 '저 할때 되면 하겠지!'기다리는 마음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학원을 여러 곳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저 애들은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서 다닐까?' 궁금했고, 저 엄마들은 '아이가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믿는 걸까?' 이런 생각 때문에 자유롭게 보낼 수 없었다.

우리말을 제대로 깨우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 시키는 걸 보며, 정말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영어사전을 줬다고 자랑하는 엄마나 유치원장의 정신세계가 과연 한국인인가? 도대체 우리 말이나 글은 언제 가르칠 것인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일었다. "남들이 다 영어공부에 올인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가르치라."는 주제넘은 당부를 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건 개인적인 경험도 있지만 책에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게 소신을 갖도록 도움을 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꼽은 책이다.

 이미지가 안 뜨지만 이 책도 아이들 독서교육에 큰 도움이 됐다.(조금 더 쓴 어진이의 서울대 간신히 들어가기) 

 

 

오늘 새벽, 인터넷 기사에서 이 글을 보며 반가워서 옮겨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콕 집어서 하셨기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선진국 되려면 영어보다 우리말 교육을"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08.23 03:33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22일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학생들에게 영어보다 우리말을 잘 읽고 쓸 줄 아는 방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청주지검에서 '지속적 경제 성장과 교육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가진 특별 강연에서 "여러 대학에서 앞으로 철학과 제 2외국어를 포함해 강의의 50%를 영어로 진행한다는데 이는 난센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래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지녀야 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어'"라며 "국어를 잘해야 생각을 잘할 수 있고 나아가 이 생각들이 사고, 사상으로 이어지면서 우수한 문화를 꽃피운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는 그는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시스템과 학부모, 일반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인재 양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제가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뒤쳐진 사람들이 낙담해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장래 한국의 생산 능력은 배양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속적 경제 성장을 위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큰딸의 친구중에 최고의 명문대에 간 친구도 있는데, 자기소개서나 학교지원동기를 쓰는 것도 부담스러워해서 우리 딸이 조언해주거나, 내게 도움을 받아 쓴 아이도 있었다. 다행히 둘 다 합격해 잘 다니고 있는데, 논술도 아닌 자기 소신을 밝히는 글조차 자신없어 한다면 우리 교육이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큰딸 친구 엄마들이 대학을 보내면서 독서를 소홀히 했던 자신들의 교육법에 발등을 찍고 싶다며 안타까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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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8-08-24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순오기님의 글에 세삼 반성하게되네요.
저도 아이들 어릴 때 부터 책을 많이 읽게 해주었다고 생각되는데,
책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읽을 때 더 효과(?)아니, 더 좋은것 같아요.
저도 소신있는 엄마의 모습이 되어야 될 것 같아요.
지금 아이들에게 진짜로 필요한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서'겠죠? 인정합니다.

순오기 2008-08-25 01:51   좋아요 0 | URL
소신 있는 엄마의 독서교육 꼭 필요한 일이죠~ 책읽는 엄마가 책읽는 아이를 만드니까, 우리도 같이 열심히 읽자고요.^^

마노아 2008-08-2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미 추천했다고 나오네요^^;;;
책장 가운데가 휘었어요. 저도 책장 넓은 칸은 저렇게 되더라구요. 예전에 하이드님은 아예 책장이 주저앉기도..;;
다음 번에 책장을 구입하게 되면 두꺼운 프레임에 칸 너비가 좀 더 촘촘한 녀석을 눈독들이고 있어요. 물론, 그만큼의 공간 확보가 중요하지만.
출판사별로 분류되어 있다니, 역시 마을 도서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십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네요.
요즘 교육청 구인칸에서 사는데, 죄다 영어교사 구하는 글 뿐이에요. 가끔 수학강사를 찾지요.
구직칸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글은 '국어교사 지원'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여자들이죠.
대한민국의 현실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현장이기도 해요. 아, 맘이 쓰립니다ㅠㅜ

순오기 2008-08-25 01:53   좋아요 0 | URL
책장이 넓으면 휘더라고요~ 그 옆에 칸은 다행히 맞는 판자가 있어서 아래에 받쳐 주었는데 한칸만 아직 해결이 안 됐어요.ㅎㅎ
구인 구직란에 올라오는 걸 보면 시대를 알 수 있죠.ㅜㅜ 영어에 올인하는 대한민국~ 우리것을 소중히 알아야 자존감이 생기는데 말이죠.

Mephistopheles 2008-08-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찬 총장이 얼마나 열받았으면 눈에 불까지 켜고 저런 말을 했을까요...
그리고 두번째 사진 책장....보강공사가 시급해 보입니다...

순오기 2008-08-25 01:55   좋아요 0 | URL
정말 우매한 제가 보기에도 열받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영어 올인은 정말 아니다 싶어요.ㅜㅜ
두번째 사진 책장, 내려앉기 전에 빨리 보강공사 할게요.ㅎㅎㅎ

bookJourney 2008-08-2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보다 우리말 교육을! 맞는 말씀이에요. 수동태 문장을 남발한 학생들의 글을 보고, "한글로 쓴다고 다 우리말인 게 아니다"라며 꾸짖으시던 교수님이 떠오르네요. 논리적인 글쓰기 이전에 기초적인 문법도 놓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저 책장이요 ... 책꽂이 판이 안빠지는 건가요? 뺄 수 있는 판들은 한 번씩 뒤집어주면 좀 낫던데요~ ^^;

순오기 2008-08-25 01:56   좋아요 0 | URL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영어를 배우느라 우리말 교육이 안 된다니까요.ㅜㅜ 정말 한글도 모르는 아이들은 영어과외 시키는 현실은 정말 울고 싶어요.
책꽂이는 안 빠지는 거고요, 아래칸에 받침목을 대어서 올려줘야 해요~ㅎㅎㅎ

세실 2008-08-2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림이도 국어 어려워해서 열심히 독후감 쓰게 하고 있습니다. 책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는것도 중요하네요.

순오기 2008-08-25 01:58   좋아요 0 | URL
국어공부도 사실 어렵지요~ 독서 내공이 쌓이면 비교적 수월하게 하지만...
책읽기와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것이 필수인데, 우린 너무 소홀히 하잖아요.ㅜㅜ

건조기후 2008-08-2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는 우리나라가 차라리 미국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던 걸요. 건너건너 들은 말이지만 그 자리에 있었으면 정말 침을 뱉아버렸을지도 모를만큼 화가 나더라고요.

요샌 참 얄궂은 상황들이 많죠. 엄마가 5-6살짜리 자녀들한테 영어발음 지적당하면서 우리 애가 이 정도다, 하고 기뻐하는 모습 보면 참-_- 엄마가 애들 국어교육을 시켜줘야하는데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영어 단어 툭 던져놓고 음, 한국어로는 뭐라고 해야 되지? <- 외국인도 교포도 아닌 이런 무뇌아들은 또 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건지-_- 말할 때 영어 몇단어 정도는 섞어쓰는 게 당연한 것이 돼버렸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선이 있는데 몰입교육 몰입교육하니까 최대한 영어로 바꾸는 게 잘하는 건 줄 아나봐요. 언젠가 패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사회자가 "이런 게 좀 영 해 보이죠" 이래요. young 해 보인대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어요ㅋㅋㅋ

정말 웃다가 급 슬퍼지는 현실입니다-_ㅜ

순오기 2008-08-25 02:01   좋아요 0 | URL
건너건너 갈 필요도 없이 파란집의 이씨부터 침뱉고 싶은 인간들이 너무 많지요. 방송이나 글에서 필요없이 영어 남발하는 거, 정말 꼴불견이에요~~ 우리딸도 영어로 하는 수업에서 한국말로 뭐라 하는지 몰라서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군요. 여긴 분명 대한민국인데 말입니다~ OTL

순오기 2008-08-25 02:13   좋아요 0 | URL
아~ 실시간 댓글이에요. 중간에 한 문단 추가됐군요. 맞아요~ 엄마 영어발음 나쁘다고 퉁박 듣는다며 그걸 자식자랑이라고 하는 현실이 웃기고도 슬퍼요. 전 대놓고 애들한테 물어봐요~ 방송이나 알라디너 글에도 영어나오면 잘 모르거든요.^^

건조기후 2008-08-25 02:14   좋아요 0 | URL
에고야. 마우스 갑자기 멈춰서 막 클릭했더니 댓글이 지워져버렸네요. 아하;

순오기 2008-08-25 02:25   좋아요 0 | URL
ㅋㅋ괜찮아요. 이미 제가 봤으니까요~ ^^

반달 2008-08-2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찾았다. 순오기님의 서재! 국어교육 정말 공감합니다. 영어, 수학 다음에 국어, 그것도 논술부터 찾는 세태지요. 제 나이에 맞게 천천히 책 읽히라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딱입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좋은 책이 많이 나왔어요.... '외치며 버티고 있답니다. 좋은 글이 이렇게 많은 순오기님의 서재... 자주 놀러올게요. ^^ 저는 일본 여행 친구 반달입니다.

순오기 2008-08-26 01:11   좋아요 0 | URL
아~~~이렇게 반가울수가~ 벌써 님의 서재 방명록에 인사 남기고 왔어요.
하도 소식이 없으니 알라딘까지 찾아 납시었군요.ㅎㅎㅎ
일본여행 후기도 이틀째에서 멈추고 있지만, 9월이 오기 전에 마무리할게요.^^

반달 2008-08-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위의 저 빨간 모자는 누구지요? 전가요? 알라딘이 익숙지 않아서리... 쩝...^^

순오기 2008-08-26 01:13   좋아요 0 | URL
본인이 이미지를 설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설정된 이미지가 시간대별로 바뀐답니다. 우선은 신경 쓰지 말고 하나씩 익혀가기로 해요~~~~~ 소통하는 재미가 또 살맛나게 하거든요.^^

뽀송이 2008-08-2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너무 싫어요.ㅡㅜ
답답해요. 아들 녀석들 고1, 중2인데 생각할수록 교육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지...
도무지 국어 알기를 우습게 하는 이 나라가 한심합니다.ㅡㅜ
"국어를 잘 해야 생각을 잘 할 수 있고 나아가 이 생각들이 사고, 사상으로 이어지면서 우수한 문화를 꽃피운다" 멋진 말씀이네요.

순오기 2008-08-27 04:01   좋아요 0 | URL
국어뿐인가요?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이미 팽개쳐버린지 오래~~ 그래도 이런 학자들이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말씀이라도 해주시니 버티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