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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행진 - 야누시 코르차크 ㅣ 양철북 인물 이야기 1
강무홍 지음, 최혜영 그림 / 양철북 / 2008년 6월
평점 :
현대사회는 부를 축적한 사람이 권력을 얻고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출판계는 이들을 앞세워 성공신화로 도색된 자서전과 자기계발서 출판에 열을 올리고, 어른들의 성공신화나 자기계발서는 어느 틈에 어린이용으로 둔갑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세상의 가치를 물질에 둔 어른들의 기준에 어린이도 세뇌시키려는 이런 현상에 편승하지 않은 책이 나왔다. 이타적인 삶을 산 진정한 위인인 ‘야누슈 코르착’의 생애가 그림동화로 나와 어린이들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소재의 무거움이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초등 고학년에게 좋을 책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과 어려운 낱말을 설명해주면 저학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림책이라 부담 없이 집어 들고, 거칠고 투박한 전사 그림에 담긴 야누슈 코르착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기를 꿈꾸는 현실에 깊은 반성과 자기 성찰을 주는 책이다. 이기적인 삶에 물든 어른들이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권해 주면 좋겠다.
야누슈 코르착은 촉망받는 의사였지만, 병원에도 올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그는 거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돌봐줄 수도 가난을 치료할 수도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의사의 길을 버리고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야누슈 코르착이 고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다시 버려질까봐 두려워했지만, 자기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을 갖는다. 가난과 학대와 무관심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쉴 곳을 찾아주고, 세상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되돌려 준 것이다. 그는 의사이며 교육자이고 작가였지만, 영원한 고아들의 아버지로 자신의 생애를 그들과 함께 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게 쉽지 않기에, 그의 이타적인 삶이 더욱 빛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자 신념인 인권존중을 실현하고자 고아원에 ’어린이공화국’을 도입하여, 어린이들이 존중받는 것이 무언지 생활에서 깨닫게 한다. 혹 잘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아이들은 법정에 세워 해답을 찾을 때까지 토론했다. 전쟁 중에도 인권을 존중받는 아이들의 행복이 밝은 색조의 그림으로 보여 진다. 고아원에서 존중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독자도 잠시 즐거워진다.
검은 군홧발과 철조망으로 그려진 1939년 9월, 침략군 독일에 무너진 폴란드 바르샤바에 '게토'가 설정되고, '고아들의 집'도 강제 이주 당한다.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없애겠다는 히틀러의 미친 짓거리인 참혹한 학살을 비켜갈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부족한 식량을 구걸하러 나선 코르착은 길에서 만난 아이들을 데려온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나누는 삶을 배운 아이들은 자기 것을 덜어주는 성숙함을 보인다. 코르착에게 본대로 배운 대로 사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독자는 잔잔한 감동에 뭉클해진다.
천사들의 행진이라 일컬어진 죽음의 행렬은 가슴을 울린다. 당시 저술활동을 했던 코르착은 게토지역에서 아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 짐작된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 닥쳤을 때, 그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신이라면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200명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여름휴가’를 떠나자며, 놀라거나 겁에 질리지 않도록 앞장 서 나아갔다. 그들은 코르착 할아버지를 천사라 말했고, 코르착은 아이들을 천사라고 생각했으니 그들은 분명 천사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행진은 죽음의 가스실로 가는 기차, 죽음의 길을 알지 못한 소녀는 코르착의 품에 안겨 꿈을 말한다. "할아버지, 나는 농부가 될 거에요. 밀을 많이 길러서 언니랑 오빠들과 할아버지에게도 줄 거예요." 소녀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스며드는 가스에 졸린 눈을 감는다. 소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코르착도 1942년 6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림책이라 그의 삶을 세세히 펼쳐내지 못한 아쉬움은, 말미에 덧붙인 생애를 조명한 글과 사진으로 덜 수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은 독일군의 학살에 맞서,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으로 저항한 그들의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행진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담겨 있다. 1979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제연합은 그의 정신을 기려 ’세계 어린이의 해’이자 ’야누슈 코르착의 해’로 제정하였다. 또한 1989년에는 코르착의 어린이 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어린이 권리 협약’을 제정 선포했다.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한 진정한 위인 야누슈 코르착은, 어린이들이 존중받고 사는 세상이 되도록 헌신했음을 알 수 있다.
이타적인 삶을 산 위인을 접할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남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기에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라 발견하면 좋겠다. 어린이들이 ‘천사들의 행진’에서 야누슈 코르착을 만난다면,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