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올렸던 '학운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페이퍼를 기억하십니까? 여튼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이편에 등록서류를 보냈다기에 정성껏 작성해 접수시켰고, 학부모위원 정수인 6명만 등록해서 무투표 당선되었다. 초등학교 학부모 12년 졸업했으니 당연히 중학생 학부모로 진급해야 했지만, 대부분 오후에 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울까 봐 망설였었다. 권면하는 교감샘께서 가능하면 내가 쉬는 월욜에 회의를 하겠다기에 어쨌든 수락했고...

전화로 교감샘과  등록하겠다고 일단락 지은 그날 밤 9시 45분, 00돌솥밥이라 저장된 번호로 핸드폰이 울렸다. '아니~ 이 식당에서 왜 내게 전화를?' 의아하며 받았더니, 교감샘이 번호를 주셨는데, 학운위를 할건지 묻는 거였다. 아~~~~ 난, 이러면 정말 열받는다. 본인이 수락한 일을 다시 학부형 통해 확인하려는 이유가 뭐냐? 게다가 이 엄마, 자기가 예전에 자모회장 했던 얘기를 주절주절 꺼낸다. 큰애는 서울로 대학갔고... 등등. 지금 그게 학운위랑 무슨 상관인데? 처음부터 발끈 화를 낼 수가 없어 잠시 억누르며 듣고 있는데 점입가경이다. 난 인내심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난, 이런 전화 불쾌합니다. 내가 뜻이 있으면 수가 넘쳐 투표 붙여도 하고, 내가 뜻이 없으면 미달이어도 안합니다. 교감샘께 내일 서류 접수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왜 학부형을 통해 다시 확인합니까? 그리고, 내가 정석대로 가는 사람이라 이런 식으로 학부모들이 뜻 맞는 사람 모아 학운위 참여하는 것 아주 싫어합니다. 나는 학생과 학부모 대표로 학운위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으니, 후에 교감샘께서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이런 통화를 끝내고도 열린 뚜껑이 닫히지 않았다. 교감샘이 이런 식으로 한다는 게 맘에 안 들었다. 게다가 그 엄마 수준은 안 봐도 알 것 같아서...... 사실 학교관리자 입장에서 이런 엄마들 학운위에 앉혀두고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그 속을 나도 알고 겪을만큼 겪었는데, 거기에 나를 포함해? 이 양반,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군. 흥~  내가 홈스테이 한거야 담임샘의 부탁이 있었고 내자식 영어 공부에 도움될까 한건데, 무조건 학교 일에 협조하는 엄마로 파악하셨다 이 말이지? ㅎㅎ 내가 학운위 어떻게 하는지 보면 나한테 해달라 한거 후회하실 거다...낄낄거리며 그나마 마음을 풀었었다.

지난 19일 학부모총회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학부모위원으로 소개되었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초등에서 나를 알만큼 아는 엄마들이 학교에 건의할 것들이나, 의무교육이라면서 분기마다 거의 5만원 돈을 내는 '학교운영지원비'에 대해서도 할 말들이 많았다. 하여간 내가 누구 엄마로 운영위를 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 대표로 참여한다고 새삼 확인했다.

드디어 오늘, 지역위원 3명을 선출하기 위해 모였다. 며칠 전, 지역위원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추천을 부탁하는 지인의 전화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작년에 학부모위원을 했는데, 수가 마감되어 투표까지 하면서 하고 싶지는 않아 그만뒀다며 지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싶단다. 분명히 학교가 세사람 추천할거고 투표를 붙여야 된다면, 이미 학교측에서 학부모위원을 작업했기에 절대 된다는 보장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엄마가 지역위원감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의에 가기 전, 교감샘의 전화를 두번이나 받았다. 지역위원 후보가 4명이라 투표를 하는데, 한분은 골수 전교조 출신이라 배제하고 싶다는 얘기다. 투표를 연기명으로 하는데 혹 교원위원 측에서 단기명으로 하자면, 투표방식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발언을 해 달라는 친절한(?) 부탁까지 하신다. 그러면서 30분 빨리 와 달라는...... 허~ 이 양반, 나를 너무 믿는군, 이런 작업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데!

초등때도 학교가 이렇게 허수아비 세워놓고 맘대로 주물럭거려서 내가 오기로 나섰던 적이 두번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엄마들을 모아 연설문을 작성하여 연습하고, 6명 선출에 12명의 후보가 연설 - 200여명의 학부모들이 투표하여 전부 당선되었다. 그해는 학교 맘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의 학운위가 되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싸움질한 것은 아니고, 초반에 두어번 목소리 높여 정석대로 하자고 하면 학교도 알아서 맞췄으니 학생들과 선생님을 위한 학운위 역할을 제대로 했을 뿐... ^^

교감샘의 전화를 받은 후, 아들녀석 담임샘 - 전교조 선생님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부모측은 학교가 작업해서 이미 물건너 갔는데, 나와 작년에 이어 연임인 엄마랑 둘이 찍는다 해도 아~ 이런 상황이면 게임이 안된다.

교감샘이 30분 일찍 오라했지만, 혹시 늦어질까봐 저녁밥 준비도 다 해놓고 딱 5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헉~~ 교장실에 가서 보니, 교감샘이 추천한 엄마들이 앉아있는데 그중에 00 엄마가 아는 척을 한다. 식당에 자주 왔다면서 자기를 모르느냐고. 그 자리에 있어야 알아보지 다른 곳에 있으면 못 알아보지요.^^ 웃음으로 받았는데, 내 옆으로 오신 교감샘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하신다. 왜 전교조 선생님을 차단하십니까? 학부모들은 견제세력으로 전교조 선생님이 학운위 참여하는 것 좋아하고, 나도 동의합니다. 제가 00 엄마로 학운위 하는 거 아니고, 학부모대표로 참여한 건데 저를 어떻게 믿고 이런 말씀까지 하십니까? 실실 웃으며 뜻을 밝혔다. 그 00 엄마가 너무 수준 미달이었기에 커밍아웃의 필요가 절실하더라는......ㅎㅎ

>> 접힌 부분 펼치기 >>

다음 주 월욜에 운영위원장, 부위원장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다. 나야 뭐~ 연임자를 부위원장으로 추천하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다. 이 연임하는 엄마가 작년에 전교조선생님들과 많은 활동을 해서 학교에서는 안하기를 바랬던 분이다. 나와 뜻은 같지만 성향이 다른 사람이라 썩 말을 섞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한배를 탔으니 두 분 선생님과 같이 학운위 몫을 제대로 할 사람이다. 회의 끝내고 아이들반에 들러 학급문고도 넣고, 아들담임샘과 전교조선생님들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학교운영지원비 외에도 우리 학교는 복지우선투자학교라 복지예산을 많이 받기에, 학운위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나의 커밍아웃으로 학교편인줄 알았던 관리자들은 좀 당황스러울까? ^^

다 끝내고 돌아와 작년에 학운위 했던 엄마에게 들으니, 전교조 선생님들이 교감샘이 추천한 내가 00엄마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까봐 엄청 걱정하더라는....... 그래서 절대 그쪽은 아니고 작년에 했던 엄마들의 두몫 세몫을 할 사람이라고 했다니까 은근 부담된다. 그전에는 00엄마 부류의 사람들로 학운위를 구성해서, 학교가 맘대로 전횡하다가 작년에 제대로 걸렸단다. 너무 깐깐하게 따지니 학교는 심의건을 몰아서 대충 넘어가려고 9건을 한번에 올렸고, 대충 할 수 없는 위원들은 아침 10시에 시작한 회의를 점심 시켜 먹어가며 저녁 6시까지 했단다. 특히 교장샘의 판공비를 일일히 따졌단다. 그래서 교장샘은 2학기에 다른 곳으로 가시고 새로 오셨단다.ㅎㅎ 이러니 교감샘이 알아서 작업 들어간거고...... 아무튼 중학교는 처음인데 엄청 기대되는 학운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8-04-01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최고에요!!! 드릴 수 있는 게 추천밖에 없어서 속상하네요.

순오기 2008-04-01 20:04   좋아요 1 | URL
나같은 학부모도 있어야 된다는 신념으로 참여합니다~ ^^
우리 큰아이가 입학할 때부터 생긴 학운위라 제 학부모 나이와 같답니다.13기~

무스탕 2008-04-01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같은 학부모님이 정말 절실해요.
누군가 나 대신 나서주겠지.. 늘 발뺌하는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저도 큰 녀석 중학교 가서 처음으로 내본 '학교운영지원비'를 보고서 도대체 이게 뭔가..? 싶더라구요.
중식비 낼려고 스쿨뱅킹에 돈을 넣어놨더니 중식비보다 운영비 먼저 출금시키더군요 -_-

순오기 2008-04-01 21:06   좋아요 1 | URL
저도 큰아이 저학년때는 안하고 참교육학부모회나 기타 단체에서 하는 교육에 많이 참여했어요. 그러면서 하나 둘 알아가니까 참여하게 되었지요. 뭘 알아야 할 말도 하고 짚어낼 것도 짚을 수 있으니까...이제는 어떤 궤변에도 넘어가지 않을만큼 알게 되었어요. 학교운영지원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지켜보는 것, 학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마노아 2008-04-01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멋진 순오기님! 이런 학부형, 학운위가 있어야 학교도 정신 바짝 차리지요. 갈길이 멀겠지만 화이팅이에요!

순오기 2008-04-01 21:07   좋아요 1 | URL
멋지다기 보다 학운위 역할을 잘 하려는 것 뿐이에요. 응원에 힘입어서 불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