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철들면서 신문을 보게 되었는지, 신문을 보면서 철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신문을 본 역사도 꽤 길다. 아~ 철들기 전에도 보았구나. 충남 촌구석에서 살때 볼거리가 없어 아버지가 보시는 '충남일보'였든가, 거기에 실린 '大미륵'이라고 기억되는 연재소설을 초딩때부터 살짝 엿보았더랬다. 나~ 제법 조숙했나 보다, 그 어린 나이에도 성적 묘사가 나오면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 장면을 다시 읽었던 것 같다. 신문 연재소설이란 날마다 그런 장면 하나씩 끼워넣는다는 걸 그 나이에 간파했었는지 날마다 우체부아저씨를 기다렸다.^^
이렇게 시작된 신문보기로 일찍 세상을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과 결혼 전엔 아버지가 보시던 '동아일보'를 열심히 읽었고, 직장에서 보던 '조선일보'는 여자들이 볼거리가 많았던지라 스크랩까지 하면서 열독했다. 그땐 '조.중.동'이라 불리던 시절이 아니었던 듯하다. 결혼해선 '한겨레 신문' 창간부터 구독했고, 우리 큰딸 세살 때 살 뺀다고 '한겨레신문'을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만 60부던가 100부던가, 이제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딱 한 달 돌려봤다. 사실 더 돌렸으면 지금의 체중이 아니었을 텐데... 그만 한 달 돌리고 신문지국이 부도나서 돈도 못 받고 끝났다. ㅠㅠ 다행히 본사에서 사람이 와서 구독자 명단을 달라며 한 달 수고비로 91년에 6만원을 주었다. 그때도 기관지가 약해서 한달 새벽바람 쐬고 신문 돌렸더니 천식이 도져 결국 그 돈으로 한약 한재 먹으니 꽝이었다.^^
이런 인연과 워낙 '한겨레신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장기 구독했는데, 내가 워낙 비판적인 성향이라 그 신문을 오래 보니 세상 살맛이 없어지더라는 것. 그 후에 '중앙일보'로 바꿔 몇년을 보았나? 아마 10년은 훨씬 넘은 듯하다. 선거때마다 신문 바꾸자는 남편의 성화에도 꿋꿋이 봐 왔는데, 왜 그랬을까?ㅎㅎ 중학교 동창이 있어서 끊기가 그랬나, 사실 그 친구가 거기 있는 것은 5~6년 전에 알았는데.....
그렇게 투덜대고 빈정대며 '중앙일보'와 지속했던 관계를 2월 29일부로 끝냈다. 물론 남편이 지국에 연락해 3월부터 넣지 말라 했고, 무슨 신문을 보겠냐고 물으니 '경향신문'을 보잔다. 오우~ 거긴 또 초등동창이 있는데... 그 친구 때문에 2003~4년까지 열심히 '뉴스메이커'를 열독했다. 그 덕에 중학생이던 큰딸이 나의 비평적 성향을 충실히 따르게 된 것 같다. 당장 문자를 보내 통화하고 3월부터 '경향신문'이 들어왔는데 어제 아들녀석의 한마디,
"엄마, 중앙일보를 볼 때는 완전 2MB 찬가였는데, 확실히 경향은 다른 것 같아. 머릿기사부터 어~~ 이렇게 써도 되나? 놀랐어." 라는 말로 소감을 피력한다. 어~ 이 녀석도 비판성향을 제대로 따라주겠군. 물론 신문이 그런 성향을 키우기도 하지만, 그동안 쌓인 '독서내공'으로 신문보는 눈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러는 나는, 거의 1년도 넘게 신문을 제대로 안 보았다. 대충 머릿기사나 부자 신문답게 찬란한 섹션을 자랑하는 '열려라 공부' 'Weekend' 'Book'정도나 가물에 콩나듯 훑어보았다. 내가 신문 안봐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대한민국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누가 어떤 논조로 무슨 말을 썼을지 뻔히 아는 신문을 머리 아프게 보겠는가 아줌마스런 사고에 젖어버렸다.
자~ 이제는 우리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슬슬 '경향신문'을 봐 주셔야 할 것 같다는 맘을 먹었는데, 9시 뉴스에서 재밌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는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께서 미국을 방문해 대통령을 부시별장에서 만날 거라나~ 대단해용 부라보! '고이즈미'부럽지 않겠구만!ㅎㅎ'영어올인'한다고 자랑하려나, 아니 내친김에 이라크 파병 늘리겠다 알랑거릴까 심히 걱정되어, 손택수시집 '목련전차'를 보다가 큰딸한데 읽어주었던 '콘돔전쟁'이란 시가 뜬끔없이 생각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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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전쟁 -손택수-
걸프전 때도 그랬고
아프카니스탄 침공 때도 그랬다.
사막에서 전쟁이 시작되면
콘돔 회사 주가가 껑충 뛰어오른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막이용
총구덮개로 콘돔이 힘을 쓰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한 강간범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총열에 덮어씌운 콘돔
드르륵 드르륵 교성을 지르며
총알은 단번에 콘돔을 찢고 뛰어나가
모래언덕 깊숙이 파고들어가 박힌다
무진장의 석유를 애액처럼 핥아댄다
CNN을 타고 생중계되는 미국식 포르노
바지를 까내린 점령군들 허여멀건 엉덩짝이 보이지 않도록
빙 둘러서서 망을 봐주고 있는 이십일 세기
뭔가 더 짜릿한 장면이 없나, 드르륵드르륵
나는 충혈된 눈으로 밤새 채널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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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난, 이런 맛에 시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