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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보이 ㅣ 그림책 보물창고 9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이웃에 '와일드 보이'를 아주 좋아하는 소년이 있다. 네다섯 살에 책을 빌려갔는데, 아주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끼고 살아 몇 달이 지나 가져왔다가도 여러차례 다시 빌려갔다. '저 애가 본능적으로 뭔가 느끼는 걸까?' 제 엄마와 나는 속삭이며 가슴이 철렁 머리끝이 쭈뼛하는 전율이 일었다. 돌도 되기 전 방치하듯 일곱살 누나에게 맡기고 제 엄마의 잦은 가출로 아이는 굶주림을 겪은 이력이 있다. 결국 두 돌도 되기 전 부모의 이혼으로 큰엄마의 아들이 되어 자라고 있다. 조카를 데려오면서 '그냥 바보처럼 살기로 했다'는 그 엄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데려오기 전이나 4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답답하면 늘 나를 찾기에, 내게도 특별히 마음 끌리는 아이다.
19개월에 아이가 왔을 때의 몰골은 참으로 가슴 아팠다. '배고픔'을 겪어서인지 유난히 '먹을 것'에 집착했고, 저 먹을 것이 두 손에 확보되어야만 남들에게 주었다. 성장이나 발육도 늦되어 기아 지역 아이처럼 깡마르고 시커먼 아이를 지켜보며 울컥 했다. 그 엄마는 심리적 안정을 갖지 못한 아이를 위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사를 제쳐두고 아이에게 올인했다. 1년이 지나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 되었을 때, 고맙고 감격해서 나는 '생일떡'을 해주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오르고 뽀얘졌는데도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지금도 이 책의 표지처럼 바람같이 달리기를 잘하고, '와일드 보이'를 좋아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내 가슴에 휘익~~바람이 지나간다.
성장기 환경이 그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밝혀지고 검증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선, 부모가 부모답기 위해선 자녀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할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와일드 보이'의 빅토르는 정글에서 본능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익히며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아 야생소년이 된 것이다. 인간사회의 접촉이 없었기에 인간다움을 학습하지 못한 늑대소년 '아밀라'와 '카밀라'의 사례는 '교육학'에서도 다루고 있다. 인간사회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과연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언어의 소통과 감정의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동화를 그리는 '모디캐이 저스타인'은 '와일드 보이'를 통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와 먹을 것' 외에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 빅토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이타르박사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돌봐준 '구에링' 아줌마에게 빅토르는 인간다운 감정을 표현한다. 화창한 봄날 아침, 잠에서 깨어 무조건 숲으로 갔다 길을 잃어 하룻밤을 공원에서 보낸 빅토르가, 그를 찾아 온 구에링 아줌마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을 보면 비로소 희노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이 된 듯하다. 바람을 좋아하고 달빛에 흠뻑 젖은 빅토르를 보며 이타르 박사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저 아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지금 저 아이는......'
이타르 박사가 6년간 빅토르를 연구하며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았지만, 끝내 말을 배우지는 못했다. 빅토르와 말을 나눌 수 없었던 이타르 박사의 안타까움도 짐작이 된다. 인간이 선천적인 언어학습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환경적인 뒷받침이 없었던 빅토르는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파리의 작은집에서 구에링 아줌마가 돌봐주는 가운데 40세까지 살았고, 이타르 박사의 연구논문과 교육이론은 특수교육과 몬테소리 교육의 기초가 되었다고, 책 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사람은 바람처럼 자유롭고 사랑의 본능에 따라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할거라는 잔잔한 감동이 좋다. 야생소년 빅토르가 가슴 가득 받아들이던 그 바람이 내 가슴에도 불어오는 것 같다.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그림은 거친 듯한 연필선과 색감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어, 빅토르와 이타르 박사의 마음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림이나 내용이 주는 무거움이 유치원기나 저학년 아이들도 느껴지는지 이 책을 읽어주면 숙연해지는 분위기다. 빅토르를 짐승처럼 생각하는 나쁜 사람들도 나오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돌봐준 이타르박사와 구에링 아줌마가 있어 따뜻한 가슴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