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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전10권 세트 - 반양장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새해에 중2 아들녀석에게 '한강'을 읽으랬더니 이제 3권을 읽었고, 6학년인 막내는 열흘만에 10권을 다 읽었다. 아이가 남겨 놓은 일기를 보다가 오래 전 내 홈페이지에 올렸던 걸 뒤적여 봤다. 2003년 8월 9일, '한강' 10권을 읽고 내가 남겼던 감상이다.
존경하는 조정래 선생님!
순수한 마음으로 감동 받고 드리는 찬사랍니다.
1996년 큰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기념으로 님의 장편 읽기에 돌입했고, 대하소설 '아리랑' 12권을 두 달에 걸쳐 읽고 가슴에 차 오르는 격정, 일본에 대한 분노~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이리도 절절하게 그려 낸 당신이 참으로 큰 산처럼 다가왔었죠.
'그래 우리 삼 남매를 자랑스런 호남인으로 키워야지!' 한 아름 차 오르던 감동은 오랫동안 물결 쳤지요. 94년 대선 때 '호남인의 정서'라는 말의 의미와 깊이를 눈물겹게 이해하며, '아~ 나도 이제 속까지 광주 사람 다 되었구나!' 생각했었죠.
2000년 이었던가~ '광주시민의 날' 백일장에 5학년이던 큰딸을 데리고 나갔다가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나의 핏줄, 나의 분신'이란 제목의 산문으로 일반부 우수상을 받았지요. 삼 남매를 키우다 보니 일기나 편지 한 장 제대로 쓰지 않아, 글쓰기와 거리가 멀게 살다가 받은 상이라 '이제 한 번 글이라는 걸 써 볼까?' 하는 마음도 잠시 들었죠.
그 후 '태백산맥' 읽기를 시도했는데 전라도 말이 영 입에 붙지 않아 자꾸 자꾸 다시 읽다가 결국 덮어 버리고 말았네요. 여기 저기서 귀동냥으로 주워 듣긴 했지만, '태백산맥' 읽기에 재도전 해야겠다 생각도 합니다.
한국전쟁 6.25를 건너 뛰고, 5.16쿠데타 이후의 현대사를 펼쳐놓은 '한강' 읽기에 들어갔지요. 2003년 2월 14일부터 읽기 시작해 2~3일에 한 권씩 읽어 3월 27일까지 8권 절반쯤 읽었는데... 그만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허비해 덮은 채 4개월이 지나 버렸네요. 8월 1일부터 시작된 휴가에 두문불출 방콕하고 드디어 10권까지 다 읽었답니다.
현대사의 굴곡을 유일민 유일표 형제를 축으로, 수많은 가공의 인물들을 창조해 그려 낸 굴절된 우리의 역사... 너무나 가난했기에 오직 '잘 살기 운동'을 하며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했던 장기집권의 독재, 나의 성장기에 듣고 겪었던 사건들이기에 더 가슴 아프게 이해되었지요. 산업화와 근대화를 겪으면서 아직은 분배할 때가 아니라는 미명하에 근로자들이 겪는 인간 이하의 삶,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고통을 보면서 지금은 너무나 쉽고 편케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에 무방비로 당하기만 하는 없는 자의 비애... 분단의 아픔을 인생 포기하고 싶을 고통으로 감당하는 유일민 가족의 아픔, 분노, 좌절, 체념... 젊은이의 인생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날개가 꺾여 너무나 가슴이 막혀버리던 안타까움.
끝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체념속에 자기 앞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자족하며 사는 그들 형제~ 안타까운 여인 임채옥과의 사랑의 완성...그것으로 그의 고통이 보상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해피엔딩하는 그들 형제에게 맘껏 박수를 보냅니다.
광주 5.18 아픔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표 일행이 기차에 오르면서, 오늘도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증인으로 '한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죠. 그 다음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면서...
나는 '한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하소설 세 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을 쓰느라 마흔에서 예순까지 20년 세월을 바쳤다는 작가 후기를 읽으며 눈물이 나더군요. 초등 4학년이던 아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갔다 와 결혼해 그 아들이 태어난 세월을 헤아려보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작가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지요.
나의 가슴을 물결치게 했던 감동은 작가 조정래 선생님을 큰 사람으로, 내 가슴에 모신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음을 고백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