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첫날, 추석에 수고한 자신에게 영화 한편 상으로 보여주자며 독서회원 12명과 하남점을 찾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거나 짜증내지 않은 나를 위한 선물로! 개인적 영화 취향에 따라 새내기부부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젊은아낙들은 '사랑'을, 불혹 주변의 아짐들은 '즐거운 인생'을 선택했다. 이준익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좋아하는 난, 우리 세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 만땅이었다. 시작부터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며 즐거운 인생이 펼쳐졌다.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네의 삶, 여성 최고의 직업이라 꼽히는 학교선생인 마누라 덕에 백수로 살아도 돈 벌 중압감 없는 철딱서니 남편 기영(정진영 분)~ 에구 백수면 일어나서 아침이라도 챙겨주면 좋으련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누라와 딸내미가 나가면 슬며시 일어나 혼자 룰루랄라 먹는 저 남자 꽁 쥐어박고 싶었다~~ ㅠㅠ 

회사 짤리고 낮엔 택배로 밤엔 대리운전으로 죽어라~~ 돈 벌어서 아들놈 학원 보내랴 뒷바라지에 등골 빠지는 성욱(김윤석 분)은 피곤하다. 요즘 자식들 학원보내느라 일터로 나선 주부도 많은데, 집에서 안 하는 공부 학원 간다고 할려나~ 의문이지만 학원에서 공부하겠지 믿고 싶은 엄마는 안심하고 싶을거다!  

'대학교수님이 타던 차라 믿고 사셔도 됩니다'라는 접대 멘트 날리며 중고차를 팔아, 캐나다 보낸 처자식에게 돈 보내는 대머리 아저씨 혁수(김성호 분)는 자신은 창고 다락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살아도 만족하는 모습이다. 그런데~~이 대머리 아저씨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아, 저게 사는거야? 왜 마누라의 허영에 끌려가서 저 고생을 하느냐고? 저 마누라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거야?' 괜히 남의 일이지만 화가 치밀고 마음이 불안하다.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활화산' 밴드를 결성하고 세번이나 예선 탈락해서 해체됐다는 그들은, 멤버였던 성우의 죽음으로 다시 만난다. 참, 사는게 뭔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중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당신이 꿈꾸는 '즐거운 인생'은 어떤 것인가? 하고 싶은 일 다 미루고, 그저 자식 새끼한테 올인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혼하거나 집 나가고 싶을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고~ 동감하는 아짐들의 한숨이 들린다. 나는 저런 유형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망가진 인생, 놓쳐 버린 인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런 후회를 곱씹기 전에 부모들은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할 영화다.

죽은 친구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 분),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고. 내 기타도 아버지가 부셔 버렸다'는 말이 가슴에 콱~~ 박힌다. 자기의 꿈을 좆아살면서 마누라는 도망가고 하나 있는 아들놈은 아버지처럼 생각도 안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만나니, 참 가슴이 답답하다.


 젊고 멋진 장근석과 활화산 멤버들의 라이브에 열광하면서, 즐거운 인생의 맛을 물씬 느낀다. '그래~ 바로 저런 따뜻함이 이준익의 시선이다!' 지나간 청춘을 회상하는 우리 속에도 아직은 저런 열정이 남아 있을거라 위안을 삼아본다.

부부도 잘 나갈때는 사실 애정전선에도 이상없다. 하지만 잘 나가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한번도 잘 나가 본 적이 없는 내 남편을 비롯한 가장들이 안쓰러워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사오정 세대로 지금은 힘들게 견디고 있을 평범한 가장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넣어주는 영화라고 느꼈다. '내 남편이, 우리 아빠가 저렇게 돈을 버는구나' 이제라도 그 수고를 알아줘야 할 마누라와 자식들이 보면 좋겠다.

이제는 대머리에 희끗한 서리가 내려앉은 내 남편 속에도 저런 열정이 있었을거라 짐작해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잘 나가지 못하는 내 남편이 짠~하고 따뜻한 눈길로 보듬어 주고 싶었다. 이마트에 들러 장을 보면서 그에게 건넬 '자일리톨' 한 통을 사왔다. 내 남편과 같이 '즐거운 인생'을 한번 더 보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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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ny 2007-10-0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보고싶어지네요. 하지만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언제 자라서 엄마를 영화관에 보내줄런지^^;;

순오기 2007-10-04 15:32   좋아요 0 | URL
음, 세살 다섯살이면 엄마 떨어지기가 쉽지 않지요~~
저도 삼남매 키우는 10년 세월은 극장에 갈 수 없었어요 ㅠㅠ
요즘은 한주에 한편은 보니까 한달에 네번쯤...음, 행복해요!!

비로그인 2007-10-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통 극장엘 못가서 ^^

순오기 2007-10-04 15:34   좋아요 0 | URL
체셔님, 아프셨던데 이제 생기발랄 원상복귀하신거죠?
영화는 정말 자기 취향에 맞아야 한다는걸 새삼 확인했어요.
최근 몇달간 본 영화중에서 젤 좋았던 영화로 추천~~~~~^*^

라로 2007-10-0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멋져요!!!!
꼭 봐야겠어요,,,,저두 이준익감독작품을 좋아라하는데,,,ㅎㅎㅎ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길것 같아요,,,님처럼.
저두 미리 자일리톨 껌을 장만해놔야겠어요,ㅎㅎ

순오기 2007-10-04 18:01   좋아요 0 | URL
ㅎㅎ~ 나비님은 자일리톨 말고 다른 멋진 걸 준비해 보세요.
출산 전 남편을 감동시키면 아마 두세배는 불어서 돌아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