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이 소설의 가치는 서문에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서문에서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자신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를 밝힌다. 그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나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을 그리며, 그의 목적이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것에 있음을 천명한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궁금한게, 그가 자연주의 소설을 천명한다고 해서 왜 꼭 소설의 엔딩이 비극이어야 하는가가 의문이다. 인간에게는 악한 면도 있지만 선한 면도 있고 또한 선함과 정의를 추구하기도 하는데 내가 이제까지 읽어온 에밀 졸라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그냥 휩쓸려가거나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다. 살인자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리면서 비극으로 향하는 그 서사가 딱 그러했다. 위선과 이기심,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들을 가감없이 그러내는 저자가 감탄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비극으로 향하는 결말은 저자의 다른 소설과 같기에 나로서는 조금은 아쉬웠다. 정말 에밀 졸라의 소설 중에 인간의 긍정적인 부분을 다룬 소설은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