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 칼릴 지브란의 철학 우화집
칼릴 지브란 지음, 신혜수 옮김 / 지에이소프트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자이자 화가이고,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칼릴 지브란.

그 이름이 많이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지만은 않은 이름이다.

그가 하는 말과 우화들이 이미 많은 책들에 인용되어져 언젠간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철학 우화집이라고 적혀서 어렵지는 않을까? 했는데

어렵다는 인상보다는 그 우화들이 깊은 의미를 담은 것들이라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책장에 두고두고 꺼내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우화이지만 그냥 우화로만 볼 수 없는 이 책은

저자의 철학적인 성향들이 잘 반영되어있다.

짧은 글로 비교적 잘 읽히는 글일지라도

그안에서 우리가 짚어보야 할 내용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는 우화도 좋았지만,

명언 구절들이 더 와닿았다.


읽는 순간

이래서 '칼릴 지브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구절에서 강력한 인상과 통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을 다녀오고 난 후, 아버지를 따라서 전국 및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다고 한다. 아랍어와 영어를 구사했으며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기독교적인, 영적인 것들을 이야기 중에 담고 있다.


그래서 초반의 이야기 중에 '몽상가'란 제목의 우화도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으로 예수님이 몽상가로 칭해진 것이 언뜻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글을 통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예수'에 대해 그렇게 이해하고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사색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볍게 여겨지거나

무작정 비판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현 시대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화와 명언들은 그 시대의 것만이 아닌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본성, 삶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 계속 곱씹을만한 것으로

고전으로 오래 읽히기에 손색이 없을 책이겠다.(이미 고전...?^^;)



고통을 헤쳐 나온 사람이 가장 강건한 정신을 갖게 되고 상처로 얼룩진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된다.

p.50


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이미 이루어 온 것을 보지 말고 그가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는지를 보아라. p.62


욕망이 인생의 반쪽이라면 무관심은 죽음의 반쪽이다.

p.93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자기 맘대로 조종하길 원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p.105


안락에 대한 욕망이 영혼의 열정을 잠재운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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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맨부커 수상작으로 이미 어떤 말도 필요없는 작품...

이라지만 나한테는 역시나 어렵긴 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보니

은유가 깃든, 생각을 할만한 요소가 있는 책에 흥미가 있어하는 편이라

이 책은 내게도 위의 평들과 같이 느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행동,,

불편한 표현들,

궁금하지 않은 생활들...


그다지 반가운, 아름다운, 감동적인, 따듯한, 행복해지는...그런 건 없다.

정말 괜찮은 책이야! 라고 나같은 사람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준 높고, 아름답고 마음을 흔드는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나같은 사람이 그렇게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나보다.


이 책은 주인공인 영혜가 꿈을 꾼 이후 고기를 끊음으로 생기는 가정의 파탄, 그리고 그녀와 다른 사람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영혜를 기준으로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각으로 영혜와의 관계, 생활이 나타난다.

언뜻 보면 한 사람이 그냥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죽어가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이 책을 그렇게 본다면 빙산의 일각만 본 꼴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나 또한 빙산 전부를 보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광기어린 표현들, 그리고 주인공의 행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단지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들이다.

흐지부지한 결말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섬세하고 명민하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극의 모습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작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왜 채식주의자인가?

책 중에 영혜는 꿈을 꾸고 그 이후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간 사장부부를 만나는 식사자리에서 그녀는 '채식주의자'로 명명되어진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채식주의자가 맞지만, 대체로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가치를 근거로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핏 해설에서 보니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다른 이가 그렇게 칭한 것으로 되어있기도 하더라...

영혜는,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약자를 대변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취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말이다.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라치면, 그와 반대되는 일반적인 사람, 평범한 취향을 지닌 사람, 고기를 먹는 사람, 강요하는 자에게서 제재가 그들에게 들이닥친다.


아버지가 그녀의 입을 억지로 열어 고기를 먹이려는 상황,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

남편이 그녀와 이혼하려는 상황,

그녀를 정신병원에서 넣으려는 상황...

그녀에게 억지로 수액과 영양주사를 맞히려는 상황...

그녀를 위해서라지만 그녀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보면서

우리 또한 약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먹을 것을 거부했다. 이또한 상징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을 매몰차게 대하고, 비판한다.

결국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우리가 약자를 대할 때 하는 행동을 볼 때

영혜를 대할 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영혜의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표면적인 것에 집중하여 막기에 바쁘다.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없을테니까..."라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녀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죽음의 과정에 발을 내딛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소수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소설로 이와 같이 독특한 상황과 은유로 썼다는 점은 감탄스럽고, 신선하다.

또한 세 사람의 시각으로 한 인물과 상황을 봄으로

어디까지 그녀를 수용하고 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녀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볼 수 있게 한다.


남편은 그녀가 그냥 평범했기 때문에 선택했는데 더이상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고 떠난다.

형부는 자신이 가진 예술적인 기질과 직업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수용한다.

언니는 그녀로 인해 자신의 가정과 생활이 파탄났지만, 최대한의 인내심과 가족력을 발휘하여 그녀를 포용한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할 정도로 흡인력있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세계로 충분히 들어오게 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독특하고 남다른 구성과 관점 뿐 아니라 뭔가 남다른 표현방식이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체, 표현,,, 사실 그런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안나서 그걸가지고는 자세히는 말을 못하겠다.


사실 형부와의 관계는 상당히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여러모로 채식주의자(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다루기엔 적합한 설정이지 않았나 싶다.


어둡고 불편하지만

독특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대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독자로써 색다른 영광스러운 독서가 된 것도 같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p.43


그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표했던 재발에 대한 우려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영혜를 가까이 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그애가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건너가나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을.

p.173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석달 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해왔다. 지우가 아니라면-그애가 지워준 책임이 아니라면-자신 역시 그 끈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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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 페미니스트 박혜란의 조금 특별한 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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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반가웠다.....


기억은 나지 않는 꽤 오래 전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육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해야한다.', '~게 하면 안된다'가 많은 책들을 읽고 충고에 다소 피로함을 느낀 내게

저자의 책들은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이 보이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아는 좋아하는 언니를 아주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책을 들고 읽기로 했을 때,

70세가 다 되어가는 저자의 시점에서 적어내려간 이야기가

과연 내게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고 공감이 될지 의심스럽긴 했다.

나는 아직 몇 학년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주 먼 일의 삶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다.

간간히 쓰이는 단어가 매력적이고, 문장이 잘 읽힌다.

학자로써의 딱딱함 보다 부드럽고 잘 읽히는 것이 감성적이기도 하다.

솔직해서 통쾌하기도 하다.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도 좋다.

또한,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와는 다른 연령대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졌다.

내 자신이 다시 삶의 흐름에 떠밀려가며 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30대나 현재나 자신다움을 고수하려는 저자의 삶에 다시 내 자신을 내어놓고 싶었다.


각 주제에 따른 에세이를 짤막히 적은 것을 묶은 책이다.

딱히 어떠한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털털하게 서술했다. 굉장히 열려있는 감각과 앞선 생각들이어서인지 세대의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사색이, 생각이 나의 것들과 겹쳐지는 것도 제법 많아서

큰 공감이 된다. 그리고 작게나만 내리는 그의 결론은 내게 담담히 감동이 되고, 깨달음이 된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위의 글은 내가 나이 듦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과 비슷했다.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아니 젊은 시절 가졌던 생각이랑 흡사해서 놀랬다.

30대나 40대나 50대나 60대나 70대나 .....

'내 마음은 아직도 20대인데....' 드라마나 혹 현실에서 어르신들에게 쓰이는 말처럼 그 말은 요즘 내게도 쓰이고 있다. 경력과 노하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리고 때론 열정, 설레임, 두려움 등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매번 새롭고 그에 따르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조금씩 그분들의 뒤를 밟아가고 있는 삶을 사는 중에도 나 또한 삶을 대하는 방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나이는 점차 먹어가지만,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고, 나이든 사람처럼 서글프지 않길, 처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이 먹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하여 저자는 제목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듦으로 인한 현상들(망각, 외로움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발견하며 당당히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그 안에서도 새로움을 감사한 여러 의미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관점은 나이듦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든 이들이 함께 가져볼만한 마음, 자세다.

 그런 깨달음 나눈 덕에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삶이라는 것이 크기도 하지만 또 별게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간 갖고 있던 긴장감을 이완시켜보기도 했다.


이 책은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

도란도란 책에서 수다떠는 느낌을 갖을 수 있는 책이다.


편하게 보되 또다른 사람의 삶의 지혜를 맛볼 수 있길....



어이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건망증 덕분에 '날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는지. p.28


....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내가 너무나 빠른 시간에 유명해진 게 내가 남보다 똑똑한 데다 말을 잘 해서 그런 줄 알았었다. 아무튼 착각에는 상한선이 없나보다. p.38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남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가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스스로 위축되기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를 느낄 겨룰이 없다.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이들어 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다 보면 젊으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노인은 점점 더 야속해 한다. 나이들수록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다. 덜 삭막해진다.

p.100


'시어머니로 사는 법'을 고민하는 요즘 신세대 어머니들에게 권한다. 그동안의 사회 변화와 나의 며느리 시절,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을 모두 아우르면서 어떤 시어머니로 살지 성찰해 보자고. 지구상의 수십 억 인구 중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만났다는 건 정말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신 新 시어머니의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 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생긴 대로 보여 주라.

p.186~~


어제 있었던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각자 올 한 해에 생겼던 좋은 일들을 소개하고 서로에게 손뼉을 쳐주자고. 멤버가 열댓 명이나 되다 보니 좋은 일도 갖가지였다. ....p.234


돌이켜 보면 또 내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속으로 '내가 당연히 받을 대접'을 받는다는 교만이 앞선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접은 대접하는 자의 몫이지, 대접받는 자의 몫이 아니지 않은가. 남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대접할 줄 알는 사람이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는다.

p.235


모든 일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며칠 지나면 그저 어릴 적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아스라하기만 하다.

p.241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친구들은 또 '겸손이 지나쳐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며 빈정거리겠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비교적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웠던 것은 남들이 평가하듯이 무슨 깊은 철학이나 뚜렷한 교육관이 있어서라기보다 아이들한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하고 다그치며 이끌어 줄 자신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를 꿰차긴 했지만 현재는 늘 숨가빴고 미래는 늘 불안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일을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은 버거웠다. 그러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 보겠다는 뚜렷한 비전 대신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잠재력이 오롯이 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지켜본 것이 내가 한 엄마 노릇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아무리 못났다 해도 적어도 엄마인 나보다는 잘났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은 확고했으니까.

p.2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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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섭의 글쓰기 훈련소 - 내 문장이 그렇게 유치한가요?
임정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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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지 요즘은 독서에 대한 책 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게 출간되는걸 볼 수 있다. 글을 잘쓰지 않음에도, 글쓰기란 무언가 자연스럽고 자신의 개성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으로 글쓰기에 대한 방법, 잘쓰는 법을 알아본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나는 글을 잘 쓰고 있는지 궁금했고, 함께 사는 이로부터 글에 대해 자주 지적을 당하는 요즘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 님의 추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책을 쓰려고 본 책이 바로 이 책 <글쓰기 훈련소>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구성은 하기 사진과 같이 되어있다.(사진은 제대로 못나온 점 죄송합니다.)



언어영역을 12년 넘게 공부했지만, 우리에게 글쓰기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과 같다. 무엇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지 막막하다. 머리 속이 텅 빈다. 그런대로 인터넷에서 댓글을 쓰거나, 카톡, 문자를 주고 받는 일은 곧잘 하지만, 어떤 대상을 설명하거나 서술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


저자도 다루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과 달리 '수사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할만큼이나 글쓰기에 대한 교육에 시간을 내지 않는다. 얼핏 미국, 유럽 등에서는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가 필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상 우리에게 글쓰기란 작가와 기자, 칼럼리스트들의 몫일 뿐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우리가 있는 곳에서 봄직한 글들을 통해 어른답지 못한 글쓰기를 다룬다. 오답노트로 우리 글쓰기의 현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무도 많은 글을 통해서 아이같은 쓰기행태를 드러내었다는 것을 읽는 내내 깨달았다. 

블로그의 글들을 모두 닫아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고, 마음 먹고 다 읽어 편집하고 싶기도 했다.


'~모르겠다.', ~느낀다.'라는 표현은 수준이 떨어지는 요소이며 자신 없는 언어 문화를 드러낸 거라고 한다. 또한, 넉두리성 글도 주의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감정의 과잉으로 쏟아지는 표현에 대해 저자는 아마추어는 마구 던지고, 프로는 돌려서 은근하게 느끼도록 한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적은 개인적으로라지만 글을 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적랄하게 지적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늘 신중하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저자는 글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른다운 글쓰기를 하기 위햇 우리가 어떻게 써야 할지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 글쓰기의 자세, 기술, 구성연습, 장르 연습 마지막으로 잘 쓰기 위한 습관을 일러준다.

초반에는 글쓰기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하지만, 후반부는 직장인들에게 기안문, 기획서 등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직장인에 특화된 글쓰기 특강을 적었다고 한다.


항상 글을 쓰기에만 바빴지 정작 읽고, 편집하는데에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은 길어졌고,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연결이 안될 때도 있었다. 포인트는 찾을 수 없었고, 흥미로움은 없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글쟁이는 초고를 작성할 때와 거의 같은 분량의 시간을 퇴고에 쏟는다고 한다.

사실 글을 쓰고 어서 마치느라 분주해서 다시 읽어보지 못할 때가 허다하고,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려는 것보다 내 생각, 느낌,  아이디어만 글에 적어내려가기 바빴다.

글쓰기에도 전략이 필요하고, 핵심이 필요하며, 첫인상(첫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글쓰기 방법이었다.


한편으로 글을 쓰는데 나는 진정한 생각을 갖고 썼을까 의문도 들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따라서 과제 끝내듯이 한 것은 아닌가 되짚어 봤다. 딱히 내가 쓰는 것은 딱히 전략적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냥 쏟아내기 바빴지 그것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구성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 글은 텅 빈 수레같았겠구나...

내 글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오탈자가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구성에 대해서는 약간 번복된 것을 쪼개어 다른 구성에 넣은 것으로 보였다.


3장의 기술학습에서 세번째 '포인트 찾기'와 네번째 '핵심부터 적기'에서 처음에는 포인트와 핵심이란 단어자체가 번복되었는데 이것들을 나눈 것이 조금 의아했다.

차라리 포인트(핵심) 찾아 적기라고 하면 어땠을까? 

그래도 포인트찾기는 글의 전체의 핵심을 찾아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찾는거라고 보고, 핵심문장을 쓰는건 글의 흐름, 방향을 잡아 흐트러지지 않게 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자가 두 가지를 따로 두고 이야기 하할 수도 있겠다.


하나더, 트집을 잡는 것 같아보이기도 하지만,

p.123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문장으로 나타내는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꼭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시로 들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나는 특별히 정치적으로 어느 쪽을 옹호해서 지적하는게 아니다) 꼭 정치적인 그리고 글이 아닌 말을 예시로 들어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예시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나는 채식주의자다'라는 것을 자기소개로 하는데 한강의 소설이 바로 생각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거론하는 것은 소설을 거론하기 위해 채식주의자라는 자신을 소개한 예를 끌어들인 것도 같아서 설득력있거나 적절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가 저지르는 글쓰기의 심각한 오류를 잘 지적하였고, 그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는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용기'를 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도 태어날 때부터 펜을 물고 자라지 않았을 거라는 말은 내게 약간의 흥미로움과 위로의 꺼리로 적합했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의 방법 뿐 아니라 글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과 태도로 임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쓰기를 배워야 합니다. 글쓰기 전문가로서 저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남들보다 일을 끝내는 시간이 빠르며, 같은 시간 안에 남들보다 훨씬 나은 결과물을 낸다는 의미다."

p.72


많은 글이 진실하지 않습니다. 글이 진실다고 보는 관념은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히면서 생긴 착각입니다. 글쓰기 초보 때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솜씨가 늘면 자유자재로 속내를 드러냅니다. 이윽고 글을 잘 쓰는 단계에 이르면 거짓을 미화하거나 진실을 깎아내릴 수 있습니다. p.94


일단 초고는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대로 쓰십시오. 완성한 다음 퇴고 과정에서 서두와 결말을 고민하는 쪽이 좋습니다. p.142


만약 글쓰기가

고작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타자기를 내다버렸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행위다.

작가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수전 손택(미국의 비평가)

p.235


요약의 방법으로는 우선 절반을 줄이고, 또 절반을 줄이는 '1/2 감속법'을 권합니다. 그 과정에서 쭉정이는 다 떨어져 나가고 최후의 한 문장이 남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만큼 매우 중요하겠지요. 이것이 앞서 나온 '핵심 문장'입니다.

p.243


 제가 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디어에 대한 글을 매일 쓰라는 겁니다. '일일일상'입니다.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으로 아이디어에 예민해질 수 있는 방편입니다. 직접 쓰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기억창고에 더 잘 보관됩니다. ..... 아이디어 상품부터 기발한 특허, 이색적인 비즈니스 등 소개한 글을 매일 찾아 읽으십시오. 그런 다음 그와 관련한 글을 쓰십시오. 단순 기록도 좋고,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이면 더 좋습니다.

p.268-269


글쓰기 교육은 두가지 측면이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사실을 서술하는 기술 향상과, 생각을 심화하는 사고 강화입니다. p.279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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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두께를 보면서 기겁을 했다. 또한, 이 책이 저자의 고작 세번째 책이라고 한다.

1985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이야기꾼 조엘디케르!

두번째 책으로 이미 조엘 디케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세번째인 이 책에서 그 신드롬이 고공행진으로 이어지리라 예상된다.


읽으면서 상당히 흥미롭고, 두께에 겁먹어버린 것을 잊을 만큼 흡인력있는 전개로 진행되는 이 책은 볼티모어가의 가족이야기를 조부부터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하고 있다.


시작은 주인공이자 작가인 마커스가 글을 쓰기 위해 옮긴 보카레이턴이란 곳에서 법률가이자 소설지망생(?) 레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또한, 길을 잃어버린 개 듀크의 주인을 찾아주다 옛 연인인 알렉산드라를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과거, 추억, 아픔, 슬픔이 서서히 드러난다.


마커스의 어린 시절 그에게는 그의 큰아버지 가족이 선망의 대상이다.

잘나가는 변호사인 큰아버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큰어머니, 그리고 마커스와 동갑인 영리한 외아들 힐렐이다.

그들은 별장과 관리인들의 관리를 받는 멋진 집, 차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능력은 탁월하다.

늘 그들에겐 가진 것이 풍족했고, 여유로웠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배려와 관대함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늘 사랑과 행복 그 자체의 가족이었다.

큰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으로 그동안 변호를 서며 돌보아 준 고아 우디를 양자로 데려왔고,

그동안 가족의 문제로 힘들었던 힐렐의 학교 왕따 사건도 우디로 인해 일단락 되었다.

그들은 더욱더 행복했고, 그에 스콧과, 알렉산드라, 그리고 마커스까지 합세하여 골드먼 갱단을 만든다. 그들은 점점 성장하였고 그들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환경과 선택에 이르면서 점차 다른 삶의 먹구름이 그들의 삶에 찾아온다.


그 와중에 마커스가 느꼈던 가정환경의 괴리감, 그리고 큰아버지 가정에 대한 부러움, 골드먼 갱단에 참여하기엔 먼 곳에 살아서 생긴 그들을 향한 질투심, 그리고 사랑 등이 마커스의 어린시절부터의 시각과 감정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어진다.



소설은 부유함의 자체인 볼티모어 골드만과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주인공의 가정 몬테클레어 골드만의 환경을 나열하며 그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가진 이들과의 현실적인 비교를 통해 평범한 우리 조차 입이 떡벌어지고 괴리적인 감정을 갖게끔 한다. 마치 이것을 통해서 작가가 무언가 할말이 있다듯이....


우리 누구나 경험해봤을 다른 개인, 혹은 가족 그외의 공동체와의 비교의식, 열등감 등이 마커스란 인물을 통해 이야기 된다. 그 가운데 항상 초조했고, 부러움과 열망으로 나아가서 욕심으로 결국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까지에 이르는 사건의 전개가 우리 삶의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차와 집, 직업을 통해 가진 자들의 모습을 보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 모습에 우리는 우리 안에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우리 안에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더불어 비참함을 느끼며 우리 안에 무언가를 더 채우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들의 겉모습과 대비적으로 그들의 삶이 절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들안에 생기는 문제와 아픔과 극복해야할 시련들이 그들이라고 비켜나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과 도스토예프스키의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명언들이 떠오른다.


항상 행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 예상되었던 볼티모어 골드먼의 가정이 한없이 두각을 나타내다가 끝내 서서히 추락의 길로 떨어지게 되는 과정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것을 마커스의 경험과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의문이 해결되고 의심이 되었던 상황들이 밝혀지게 된다.


이 책은 두꺼운 만큼 사건의 전개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상세하게 잘 적었다. 특히 읽는 내내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상황들을 보게 되었다. 아이의 왕따문제, 가정의 불화와 의심, 아이가 큰 이후에 겪게 되는 문제들은 아직 내게는 먼 이야기와 같이 느껴지지만 그 문제들이 내게도 있을 수 있는 문제이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학교를 옮겨도, 아이를 달래보아도,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하는 부모의 노력과 바람과 달리 아이는 왕따문제로 매번 맞고, 털리고 상처 받아온다. 아이의 외모와 나약한 신체, 그리고 주머니의 송곳같이 똘똘함을 보이는 아이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질 뿐 아니라 왕따를 당하게 된다면??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나의 현실이 될지도....

얼마 전에 첫째가 큰 아이들과 놀다가 그 아이들에게 우습게 여겨지고 이용당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잠깐 본 아이들에게도 내 자식이 내 자신과 같아서 안쓰럽고 싸워주고 싶고 한데, 학령기 이후의 아이의 삶은 어디까지 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 대목이었다.


나쁘게 산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과 문제를 극복하며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문제들,,,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이 반드시 권선징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주어진 환경(고아, 폭력남편 등)으로 겪게 되는 아픔과 시련을 한 개인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어 한탄할 수 밖에 없음이 씁쓸했다. 또한, 그로 인해 늪과 같이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감정을 어떻게 관리 해야하는 것인가? 그 감정에 휩쓸려 망가지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그냥 넋을 잃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인간의 연약함, 욕심으로 인해 하나하나의 삶에 균열이 가고 그것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것을 안다고 해도 인간으로써 그것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반드시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큰아버지의 말은 우리가 갖는 씁쓸함과 질문에 대해 답이 되는 것도 같다.


"그 일이라고 하지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골드먼 일가가 추수감사절에 모이지 못한 건 그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이겨내기는커녕 더 깊은 좌절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안 돼. 마커스, 우리에게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이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쇠길 바란다. 그러겠다고 약속해다오."

p.634-635


그 일들은 우리가 이겨내야한다. 바로 그게 삶일지도 모르겠다.

큰 아버지는 추수감사절이라는 한 계기를 토대로 그들은 모이고 그들의 삶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파괴되고 몰락하고 사라졌지만 모이고, 그들은 기념해야만 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에서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저자는 단지 재미난 한 이야기만을 독자들에게 하기만을 바라지 않는 듯 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행복'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라고 하는 요즘, '돈'만 있으면 뭐든 것이 되는 요즘인 이 세상에서

우리는 매체와 광고 등을 통해 끊임없이 부유함을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덜 행복한 것 같다.

무언가 가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노라고 우리는 끊임없는 메세지로 세뇌당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끝까지 해피엔딩하게 갈 것 같았던 볼티모어가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비참하게 마무리 되었다. 거기서 우리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오직 그안에서 살아남은 것은 주인공인 마커스 뿐이다.

마커스 또한 부에 대해 비교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는 그의 어머니를 통해 행복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인식하게 된다.  


"저는 우리 가족도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처럼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우리는 몬트클레어 골드먼으로 행복했잖아. 앞으로도 변함없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야. 우리가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랄 이유는 없어.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달라.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해."

p.469-470


바로 거기서 행복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마커스의 어머니의 행복에 관한 시각을 우리도 한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시작이며 곧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자체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행복은 무의미하다. 우리 자체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빈틈없이 비어있는 퍼즐을 찾아가는 면밀하고 구체적인 접근의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궁금증이 해결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깨알같이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는 이 책은 내게 있어서 그뤠잇! 했다. 이책의 주인공인 마커스가 이 책뿐 아니라 바로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란 책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한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그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





"이 고물들을 챙겨서 뭐하게? 고물상이라도 열 생각인가?"

"큰아버지와의 추겅이 담긴 물건이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요."

"추억은 머릿속에 담아 두어야 하는 거야. 그 나머지는 그저 공간만 차지하는 잡동사니일 뿐이야.

p.453


"유명해진다는 건 그저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처럼 겉치레에 불과해. 옷은 누군가 훔쳐가 버릴 수도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벌거벗고 있을 때의 너 자신이야." p.461




"네 말대로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 문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어. 사람은 감정을 마음먹은 대로 조절하 수 없지. 그래, 문제는 감정이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난 패트릭을 질투했고, 매사에 초연하지 못했지. 패트릭은 뉴요커였고, 우리 부부는 볼티모어에 사는 촌닭에 불과했으니까."

p.535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 내 산촌들을 왜 그토록 부러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내 사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모습으로 보아 왔던 건 아닐까? 내 사촌들이 내가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을 만큼 비범한 존재들이었을까?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피조물에 불과했던건 아닐까? 그럼 나는? 내 자신이 내가 머릿속으로 창조해낸 바로 그 볼티모어 골드먼은 아니었을까?p.542


볼티모어 골드먼들이 과거에 누린 영광은 모두 다 사라지고, 이제는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유산이라고는 내가 써나가는 소설밖에 없었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p.605


".....네가 반드시 했어야 마땅한 일을 못했다고 자책하지마. 누군가에게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삶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린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겠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우리의 비극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야. 우리 가족이 겪은 비극이 알렉산드라의 잘못 때문에 빚어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이제 너도 죄책감이라는 망령들은 멀리 쫓아버려."

p.608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p.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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