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의 두께를 보면서 기겁을 했다. 또한, 이 책이 저자의 고작 세번째 책이라고 한다.

1985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이야기꾼 조엘디케르!

두번째 책으로 이미 조엘 디케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세번째인 이 책에서 그 신드롬이 고공행진으로 이어지리라 예상된다.


읽으면서 상당히 흥미롭고, 두께에 겁먹어버린 것을 잊을 만큼 흡인력있는 전개로 진행되는 이 책은 볼티모어가의 가족이야기를 조부부터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하고 있다.


시작은 주인공이자 작가인 마커스가 글을 쓰기 위해 옮긴 보카레이턴이란 곳에서 법률가이자 소설지망생(?) 레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또한, 길을 잃어버린 개 듀크의 주인을 찾아주다 옛 연인인 알렉산드라를 만난다. 그렇게 그들의 과거, 추억, 아픔, 슬픔이 서서히 드러난다.


마커스의 어린 시절 그에게는 그의 큰아버지 가족이 선망의 대상이다.

잘나가는 변호사인 큰아버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큰어머니, 그리고 마커스와 동갑인 영리한 외아들 힐렐이다.

그들은 별장과 관리인들의 관리를 받는 멋진 집, 차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능력은 탁월하다.

늘 그들에겐 가진 것이 풍족했고, 여유로웠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배려와 관대함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늘 사랑과 행복 그 자체의 가족이었다.

큰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으로 그동안 변호를 서며 돌보아 준 고아 우디를 양자로 데려왔고,

그동안 가족의 문제로 힘들었던 힐렐의 학교 왕따 사건도 우디로 인해 일단락 되었다.

그들은 더욱더 행복했고, 그에 스콧과, 알렉산드라, 그리고 마커스까지 합세하여 골드먼 갱단을 만든다. 그들은 점점 성장하였고 그들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환경과 선택에 이르면서 점차 다른 삶의 먹구름이 그들의 삶에 찾아온다.


그 와중에 마커스가 느꼈던 가정환경의 괴리감, 그리고 큰아버지 가정에 대한 부러움, 골드먼 갱단에 참여하기엔 먼 곳에 살아서 생긴 그들을 향한 질투심, 그리고 사랑 등이 마커스의 어린시절부터의 시각과 감정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어진다.



소설은 부유함의 자체인 볼티모어 골드만과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주인공의 가정 몬테클레어 골드만의 환경을 나열하며 그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가진 이들과의 현실적인 비교를 통해 평범한 우리 조차 입이 떡벌어지고 괴리적인 감정을 갖게끔 한다. 마치 이것을 통해서 작가가 무언가 할말이 있다듯이....


우리 누구나 경험해봤을 다른 개인, 혹은 가족 그외의 공동체와의 비교의식, 열등감 등이 마커스란 인물을 통해 이야기 된다. 그 가운데 항상 초조했고, 부러움과 열망으로 나아가서 욕심으로 결국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까지에 이르는 사건의 전개가 우리 삶의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차와 집, 직업을 통해 가진 자들의 모습을 보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 모습에 우리는 우리 안에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우리 안에서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더불어 비참함을 느끼며 우리 안에 무언가를 더 채우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들의 겉모습과 대비적으로 그들의 삶이 절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들안에 생기는 문제와 아픔과 극복해야할 시련들이 그들이라고 비켜나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과 도스토예프스키의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명언들이 떠오른다.


항상 행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 예상되었던 볼티모어 골드먼의 가정이 한없이 두각을 나타내다가 끝내 서서히 추락의 길로 떨어지게 되는 과정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것을 마커스의 경험과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의문이 해결되고 의심이 되었던 상황들이 밝혀지게 된다.


이 책은 두꺼운 만큼 사건의 전개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상세하게 잘 적었다. 특히 읽는 내내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상황들을 보게 되었다. 아이의 왕따문제, 가정의 불화와 의심, 아이가 큰 이후에 겪게 되는 문제들은 아직 내게는 먼 이야기와 같이 느껴지지만 그 문제들이 내게도 있을 수 있는 문제이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학교를 옮겨도, 아이를 달래보아도,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하는 부모의 노력과 바람과 달리 아이는 왕따문제로 매번 맞고, 털리고 상처 받아온다. 아이의 외모와 나약한 신체, 그리고 주머니의 송곳같이 똘똘함을 보이는 아이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질 뿐 아니라 왕따를 당하게 된다면??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나의 현실이 될지도....

얼마 전에 첫째가 큰 아이들과 놀다가 그 아이들에게 우습게 여겨지고 이용당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잠깐 본 아이들에게도 내 자식이 내 자신과 같아서 안쓰럽고 싸워주고 싶고 한데, 학령기 이후의 아이의 삶은 어디까지 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 대목이었다.


나쁘게 산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이 자신이 가진 능력과 문제를 극복하며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문제들,,,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이 반드시 권선징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주어진 환경(고아, 폭력남편 등)으로 겪게 되는 아픔과 시련을 한 개인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어 한탄할 수 밖에 없음이 씁쓸했다. 또한, 그로 인해 늪과 같이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감정을 어떻게 관리 해야하는 것인가? 그 감정에 휩쓸려 망가지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그냥 넋을 잃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인간의 연약함, 욕심으로 인해 하나하나의 삶에 균열이 가고 그것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것을 안다고 해도 인간으로써 그것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반드시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큰아버지의 말은 우리가 갖는 씁쓸함과 질문에 대해 답이 되는 것도 같다.


"그 일이라고 하지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골드먼 일가가 추수감사절에 모이지 못한 건 그 일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야. 이겨내기는커녕 더 깊은 좌절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 안 돼. 마커스, 우리에게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 이제부터 추수감사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쇠길 바란다. 그러겠다고 약속해다오."

p.634-635


그 일들은 우리가 이겨내야한다. 바로 그게 삶일지도 모르겠다.

큰 아버지는 추수감사절이라는 한 계기를 토대로 그들은 모이고 그들의 삶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파괴되고 몰락하고 사라졌지만 모이고, 그들은 기념해야만 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에서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저자는 단지 재미난 한 이야기만을 독자들에게 하기만을 바라지 않는 듯 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행복'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라고 하는 요즘, '돈'만 있으면 뭐든 것이 되는 요즘인 이 세상에서

우리는 매체와 광고 등을 통해 끊임없이 부유함을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덜 행복한 것 같다.

무언가 가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노라고 우리는 끊임없는 메세지로 세뇌당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끝까지 해피엔딩하게 갈 것 같았던 볼티모어가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비참하게 마무리 되었다. 거기서 우리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가?

오직 그안에서 살아남은 것은 주인공인 마커스 뿐이다.

마커스 또한 부에 대해 비교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는 그의 어머니를 통해 행복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인식하게 된다.  


"저는 우리 가족도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처럼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우리는 몬트클레어 골드먼으로 행복했잖아. 앞으로도 변함없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야. 우리가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랄 이유는 없어.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달라.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해."

p.469-470


바로 거기서 행복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마커스의 어머니의 행복에 관한 시각을 우리도 한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시작이며 곧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자체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행복은 무의미하다. 우리 자체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빈틈없이 비어있는 퍼즐을 찾아가는 면밀하고 구체적인 접근의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궁금증이 해결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깨알같이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는 이 책은 내게 있어서 그뤠잇! 했다. 이책의 주인공인 마커스가 이 책뿐 아니라 바로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란 책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한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그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





"이 고물들을 챙겨서 뭐하게? 고물상이라도 열 생각인가?"

"큰아버지와의 추겅이 담긴 물건이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요."

"추억은 머릿속에 담아 두어야 하는 거야. 그 나머지는 그저 공간만 차지하는 잡동사니일 뿐이야.

p.453


"유명해진다는 건 그저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처럼 겉치레에 불과해. 옷은 누군가 훔쳐가 버릴 수도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벌거벗고 있을 때의 너 자신이야." p.461




"네 말대로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 문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어. 사람은 감정을 마음먹은 대로 조절하 수 없지. 그래, 문제는 감정이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난 패트릭을 질투했고, 매사에 초연하지 못했지. 패트릭은 뉴요커였고, 우리 부부는 볼티모어에 사는 촌닭에 불과했으니까."

p.535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 내 산촌들을 왜 그토록 부러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내 사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모습으로 보아 왔던 건 아닐까? 내 사촌들이 내가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을 만큼 비범한 존재들이었을까?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피조물에 불과했던건 아닐까? 그럼 나는? 내 자신이 내가 머릿속으로 창조해낸 바로 그 볼티모어 골드먼은 아니었을까?p.542


볼티모어 골드먼들이 과거에 누린 영광은 모두 다 사라지고, 이제는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유산이라고는 내가 써나가는 소설밖에 없었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전부 지울 수 있었고

전부 잊을 수 있었고

전부 용서할 수 있었고

전부 치유할 수 있었다.

p.605


".....네가 반드시 했어야 마땅한 일을 못했다고 자책하지마. 누군가에게 볼티모어 골드먼들의 삶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린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겠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우리의 비극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야. 우리 가족이 겪은 비극이 알렉산드라의 잘못 때문에 빚어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이제 너도 죄책감이라는 망령들은 멀리 쫓아버려."

p.608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p.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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