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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토지 15권 리뷰는 패스합니다.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ㅠㅠ ㅋㅋ
줄거리
홍은 자신의 사업을 접으려고 하고 이를 송관수와 상의한다. 관수는 자신이 해오던 일에 대한 한탄과 뿌리에 대해 원망, 그리고 허탄과 좌절에 깊이 빠져있고, 그런 관수에게 홍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관수에게도 그만 그리하라고 한다. 이로 홍은 관수를 그의 아들 영광과 다시 이어주려고 하는데, 그 전에 관수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양현은 성숙해져 의대생이 되었으나, 자신의 공부에 확신이 없다. 그래도 이런 양현에게는 명희도, 자신의 아버지(이상현)의 아내인 시우엄마도 듬직한 보호자와 조력자로 있다. 플러스! 서희네 가족도 그녀를 가족과 다름없이 대하고 보살핀다.
환국의 아들이 돌을 맞이하며 길상과 서읜돈, 임명빈도 모여 담소를 나누지만, 송관수의 죽음 이후 관수와의 깊은 영향과 우정에 더 슬픔이 깊어져 길상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관수의 유골을 들고 영광과 영선네는 진주로 들어선다. 여관 숙박업을 하게 된 장연학에게 들른 후, 도솔암으로 가서 영광의 동생이자 관수, 영선네의 딸인 영선식구들을 만난다. 영선은 강쇠의 아들 휘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산다. 이웃으로 영산댁이 데리고 살던 선이와 영호(한복의 아들)를 두어 영선은 선과 단짝으로 지낸다.
조준구는 말년에 아들에게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그의 아들에게 자신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며 생떼를 쓴다. 풍을 맞은 그는 끝까지 아들에게 짐이 되어도 살아보려고 안간 힘을 쓴다. 마지막까지 ㅈㅅ....
길상은 마지막으로 우관선사의 명으로 받아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그리고, 서희는 뒤늦게 도솔암을 찾는다. 서희네 집의 주치의였던 박의사의 자살소식을 듣고 서희는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길상은 이에 노한다. 화가이면서 교육자인 환국이 아버지의 그림을 소지감과 함께 바라본다. 길상은 전문가인 아들 앞에 부끄러워 떠나있는다.
감상평
신분사회의 구습이 일제시대에도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백정'은 여전히 '백정'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백정의 딸과 결혼한 관수는 뼈져리게 느꼈고, 그 한을 곱씹고 당해왔다. 한많았던 괴로운 인생을 마주하며 그대로 당해왔다. 관수 뿐 아니라 홍이도 자신의 어머니의 남편이 '살인자'였기에 사람들의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를 감당해야 했다.'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힌 한복 또한 그랬다. 그들 모두 평생을 따라다닐 주홍글씨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그것을 견디고 애써 극복하는 그들의 삶이 애처롭게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들의 인생 속 내내 쫓아 다닌 그들의 그 '낡은 패'를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긴 했다. 그렇다 해도 이 책으로 그 모든 걸 담담히 견뎌내야했던 신분과 죄를 상속받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을 헤아려볼 수 있었던 16권이었다.
일제시대의 거의 말미를 달린 시기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창씨개명, 그리고 노동력 차출, 민족 신문 폐간 등 마지막까지 발악했던 일제의 탄압이란 역사적 사실이 <토지> 속 인물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소설이지만, 혹시 서희 일가처럼 친일과 동시에 독립운동을 가능했었을까 싶다. 보통 생각하기론 친일 아니면 독립운동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인물을 평가하곤 한다. 과연 이런 집안이 존재하긴 했을지 궁금해진다.
거의 막판을 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어갈지 궁금하다.
사실 일제 강점기 이후에 이 나라에는 크나큰 전쟁도 한 차례 지나가는 데 그 전쟁까지 담아내진 않겠지....
생각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Pick 문장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 술 말아 먹는 순간 혀 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p.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