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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맘먹었다, 나답게 늙기로 - 페미니스트 박혜란의 조금 특별한 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7년 3월
평점 :
엄청 반가웠다.....
기억은 나지 않는 꽤 오래 전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육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해야한다.', '~게 하면 안된다'가 많은 책들을 읽고 충고에 다소 피로함을 느낀 내게
저자의 책들은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이 보이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아는 좋아하는 언니를 아주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책을 들고 읽기로 했을 때,
70세가 다 되어가는 저자의 시점에서 적어내려간 이야기가
과연 내게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고 공감이 될지 의심스럽긴 했다.
나는 아직 몇 학년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주 먼 일의 삶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다.
간간히 쓰이는 단어가 매력적이고, 문장이 잘 읽힌다.
학자로써의 딱딱함 보다 부드럽고 잘 읽히는 것이 감성적이기도 하다.
솔직해서 통쾌하기도 하다.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도 좋다.
또한,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나와는 다른 연령대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졌다.
내 자신이 다시 삶의 흐름에 떠밀려가며 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30대나 현재나 자신다움을 고수하려는 저자의 삶에 다시 내 자신을 내어놓고 싶었다.
각 주제에 따른 에세이를 짤막히 적은 것을 묶은 책이다.
딱히 어떠한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털털하게 서술했다. 굉장히 열려있는 감각과 앞선 생각들이어서인지 세대의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사색이, 생각이 나의 것들과 겹쳐지는 것도 제법 많아서
큰 공감이 된다. 그리고 작게나만 내리는 그의 결론은 내게 담담히 감동이 되고, 깨달음이 된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위의 글은 내가 나이 듦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과 비슷했다.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아니 젊은 시절 가졌던 생각이랑 흡사해서 놀랬다.
30대나 40대나 50대나 60대나 70대나 .....
'내 마음은 아직도 20대인데....' 드라마나 혹 현실에서 어르신들에게 쓰이는 말처럼 그 말은 요즘 내게도 쓰이고 있다. 경력과 노하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리고 때론 열정, 설레임, 두려움 등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매번 새롭고 그에 따르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해봤다.
그리고 조금씩 그분들의 뒤를 밟아가고 있는 삶을 사는 중에도 나 또한 삶을 대하는 방식은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나이는 점차 먹어가지만,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고, 나이든 사람처럼 서글프지 않길, 처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이 먹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하여 저자는 제목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듦으로 인한 현상들(망각, 외로움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발견하며 당당히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그 안에서도 새로움을 감사한 여러 의미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관점은 나이듦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든 이들이 함께 가져볼만한 마음, 자세다.
그런 깨달음 나눈 덕에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삶이라는 것이 크기도 하지만 또 별게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간 갖고 있던 긴장감을 이완시켜보기도 했다.
이 책은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
도란도란 책에서 수다떠는 느낌을 갖을 수 있는 책이다.
편하게 보되 또다른 사람의 삶의 지혜를 맛볼 수 있길....
어이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건망증 덕분에 '날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는지. p.28
....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내가 너무나 빠른 시간에 유명해진 게 내가 남보다 똑똑한 데다 말을 잘 해서 그런 줄 알았었다. 아무튼 착각에는 상한선이 없나보다. p.38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남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가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스스로 위축되기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를 느낄 겨룰이 없다.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이들어 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다 보면 젊으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노인은 점점 더 야속해 한다. 나이들수록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다. 덜 삭막해진다.
p.100
'시어머니로 사는 법'을 고민하는 요즘 신세대 어머니들에게 권한다. 그동안의 사회 변화와 나의 며느리 시절,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을 모두 아우르면서 어떤 시어머니로 살지 성찰해 보자고. 지구상의 수십 억 인구 중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만났다는 건 정말 보통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신 新 시어머니의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 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생긴 대로 보여 주라.
p.186~~
어제 있었던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각자 올 한 해에 생겼던 좋은 일들을 소개하고 서로에게 손뼉을 쳐주자고. 멤버가 열댓 명이나 되다 보니 좋은 일도 갖가지였다. ....p.234
돌이켜 보면 또 내게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속으로 '내가 당연히 받을 대접'을 받는다는 교만이 앞선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접은 대접하는 자의 몫이지, 대접받는 자의 몫이 아니지 않은가. 남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대접할 줄 알는 사람이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는다.
p.235
모든 일은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 죽을 것 같았던 고통도 며칠 지나면 그저 어릴 적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아스라하기만 하다.
p.241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나이든 사람도 세상이 재미있을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그저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나이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이 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늙어서 추레한 흔적을 남긴 채 죽지 않고 어느 바람 부는 봄날 벚꽃처럼 멋지게 스러지리라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게 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241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친구들은 또 '겸손이 지나쳐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며 빈정거리겠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비교적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웠던 것은 남들이 평가하듯이 무슨 깊은 철학이나 뚜렷한 교육관이 있어서라기보다 아이들한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하고 다그치며 이끌어 줄 자신감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를 꿰차긴 했지만 현재는 늘 숨가빴고 미래는 늘 불안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일을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은 버거웠다. 그러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 보겠다는 뚜렷한 비전 대신 아이들이 갖고 태어난 잠재력이 오롯이 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지켜본 것이 내가 한 엄마 노릇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아무리 못났다 해도 적어도 엄마인 나보다는 잘났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은 확고했으니까.
p.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