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천재가 된 홍 대리 - 딱 6개월 만에 중국어로 대화하는 법 천재가 된 홍대리
문정아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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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영어가 우세하고 있는 흐름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영어교육을 받아왔지만 그 장벽 앞에서 맴돌면서 끝내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현재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며,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이자, 무대임을 부인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못지 않게 점차 중요시 되는 외국어가 바로 이 중국어이며, 이 또한 필수 외국어로 점차 자리잡고 있다.


나 또한 영어에 대해 이미 장벽을 넘지 못해서 늘 중국어를 미루어왔다. '영어조차 마스터 못했는데 과연 중국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벌써 10년을 넘게 보냈다.

그렇게 하다가 읽을 기회가 있어 한번 책이라도 읽어나보자 하고 집어 든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홍대리가 어떤 분야를 다룬 유일한 책은 아니다. 홍대리 시리즈는 이미 유명한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서, 골프, 회계, 기획, 협상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어 이미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알만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저자로 나서 내용은 상당히 신뢰할만 하다. 또한, 과정과 방법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잘만 따라 적용하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홍대리의 성취과정스토리도 흥미로워 무언가 시도하기 부담스러워하는 분야에 접근하는 것이 용이할 듯하다.

 주인공인 홍대리는 초보이기 때문에 잦은 실수도 하면서 슬럼프도 겪는다. 그런 경험들이 다들 있기 때문에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하지만 홍대리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이 시리즈에서도 빠질 수 없다. 그러한 에너지가 독자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어 학습의지를 돋운다. 

 

사실 나같은 중국어 초짜라면 홍대리가 처음 추천받은 대로 단어를 빽빽하게 적어 외우는 (예전에 영어단어 외우듯) 방식을 뭣도 모르고 적용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 또한 중의학으로 중국유학을 하며 중국어에서 자신이 실패하고 고생하며 찾아낸 노하우덕분에 헛수고를 줄였다. 겸손하게도 그는 자신의 노하우가 누구에게나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저마다 맞는 학습법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공유한 중국어 공부방법은 초보들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오랜 공부가 아니면 쉽게 터득하지 못할 방법을 다루어 굉장히 알차게 보인다. 적용해봐야 알지만 그녀의 노하우가 꼭 중국어 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에도 적용될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이 책을 활용하는 것을 몇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먼저, <콜롬북스> 앱을 받아 실행한 후, 이 책 제목에 따른 MP3를 다운받을 수 있다.

홍대리 스토리 후에 운모, 성조 뿐 아니라 활용할 만한 단어, 문장이 나온다. 책을 보면서 함께 따라해보며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문정아의 편지>를 통해 그녀가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있었던 어려움과 많은 이들의 질문 등을 다루어 도움이 된다.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 한명한명의 모습을 다룬 것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제자와 중국어교육에 대해서 저자의 열정과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어는 남을 존중하는데서 시작된다'는 기본적인 그녀의 외국어를 대하는 방식은 또한 굉장히 숭고하다. 배우는 사람 또한 그녀의 가치를 알고 따라서 중국어를 공부하면 보다 다른 자세로 임하게 될 것 같다. 

 또한, 맨 뒤를 펼치면, 마법의 문장 300가지가 담겨있다. 여기에 문정아 중국어 14일 무료 수강권도 있으니 빠뜨리지 않고 활용하면 좋겠다.

 


​홍대리의 근무사정을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맞추어서 한 것이라 내용적으로는 살짝 함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바쁜 일정을 고려했고, 짧고 굵은 효율적인 학습을 기대하는 학습자이자 초보자에게는 이 책이 상당히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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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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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제목만 보고는 촌스럽지만 순박한 느낌인 드는 소설 <몽실언니>를 떠올렸다.

표지 또한 풀밭에 있는 언니의 모습이 청초하게 느껴졌지만, 막연하게 언니를 그리워하는 따듯한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한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기로 지정해던지라 책을 펼쳤다. 간단히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접하고 무심코 읽어내려간 프롤로그에서 받은 강력한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피의자 신분인 최순실은 수송버스에서 내려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외친다. 저자는 그녀의 소리에서 한 여인을 떠올린다. 똑같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송버스에서 내린 저자가 떠올린 그 여인은 "민주주의 쟁취, 독재타도!"를 외친다. 같은 상황의 여인 둘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 한 순간을 통해 그녀는 세월 속에 묻어놓은 영초언니를 다시 회생시키며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불과 2년도 안 되었던 2016년 겨울 우리는 비선실세의 거대한 그림자를 직면했다. 그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고 그 자체로 한동안은 크나큰 충격에 빠져있었다. 그에 촛불시위로 국민의 권리와 힘을 보여주었고, 이른 새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미 한번 분노와 열정으로 격렬히 타오르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차에 영초언니의 소환을 통해 우리는 다시 그 감정을 떠올린다.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철저히 농락당한 우리 국민의 삶에 대한 배신감, 박탈감, 허탈함.... 등등...

그리고 이루어낸 정권의 교체와 새롭게 인식된 민주화 정신으로 벅찬 그 순간의 느낌.....


영초언니를 그녀의 기억속에 힘겹게 끄집어 내며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영초언니를 만나게 된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객관적이고 또박또박 그리고 담담히 이야기 해 내는 그의 문체는 화려하지도 않고, 감정을 휘두르는 수식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거운 이야기를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을 수 있다.

기자였다고 했던 그녀의 경력을 보며 소설가가 아니어도 이렇게 침착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기술할 수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흡인력있어 강력한 사로잡힘에 끌려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영초언니를 만나며 저자는 그가 지녀왔던 시각에서 새로운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를 통해 불의하고 모순된 사회의 모습을 보았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보게 되었다. 남다른 보살핌과 우정,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전반적인 사고를 뒤흔든 그녀, 영초언니였기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비겁해지기로'한 저자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왔다.


정의와 선을 따라갈 것인지, 안정과 성취를 따라 갈 것인지 저자는 우리네 사람들이 흔히 겪는 고뇌와 갈등으로 매 순간 선택의 위기에 직면한다. 가난한 환경에서 처한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야학과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깨우치는 야학, 그리고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볼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을 알기 쉽다. 하지만,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준 가족이 있기에, 지켜내야 할 현실이 있기에 무작정 이상을 쫓으며 현재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고민 끝에 저자는 안정과 가족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그리 순탄치는 않아 쫓기고, 갇히고, 당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 상황에 영초언니가 있었고, 언니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현시대를 고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서술된 많은 희생자들의 고통들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의 현재 안위와 평안이 어디서 왔는가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빚을 지었지만, 권력의 통제아래 우리는 귀머거리였고, 눈먼자여서 우리는 몰랐노라고 우리끼리 핑계를 대본다.

알 생각도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가 버거웠다는 이유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참혹한 십자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롱하고 야유해왔다.

그런 나의 무지함이 무관심함이 또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켰음을, 그 댓가를 우리가 다시 돌려받았음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핑계는 고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그들의 현재는 어찌 이리 비참하던가...?

그들은 현재와 미래 촉망받는 지성인들이었다. 끔찍이도 사랑받는 그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열띤 토론을 하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있나? 무엇을 하고 있나?

영초언니, 정문화 ... 그들이 목숨걸고 끝까지 지켜온 숭고한 가치에 대해 권선징악 보상을 받고 있나?

오히려 벌집집에 살았고, 다단계에 뛰어들었고, 이혼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빨간 줄이 그어져 취업조차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그들의 어둡고 외로운 그림자는 그들의 삶에 깊게 드리워져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어왔다. 그런걸 생각할 때에 그 비참함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이책의 주(主)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 한국사회의 깊은 성차별의 뿌리가 그 당시에도 깊었던 상황을 읽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의 원인들을 이미 예견된 것이었겠구나 싶다. 자신과 다른 성에 대한 무시와, 조소와 폭력이 자행하던 그 시대를 볼 때 '어떻게 저런 세상이 불과 몇십년 전에 있었나' 생각이 든다. 요즘의 페미니즘을 적극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재와 견주어 유머스럽게 걸크러쉬를 다루었지만, 걸크러쉬가 주목되고 있는 현재와 그 당시에 여자들의 공동체(여대, 여성관련 단체 등)를 볼 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상황들을 살펴볼 때 아직은 우리가 약자에 속하기에 이런 현상이 있구나 싶다.


아무도 이야기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전태일 열사의 노동투쟁, 대학생 궐기대회, 광주5.18민주화 운동, 제주 민주화 항쟁 등... 저자는 그녀가 있던 모든 곳에서 민주화가 거쳐가는 것을 그녀의 몸으로도 거쳐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열어보인 것을 우린 한번에 보았다


저자는 비록 영초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민주주의에 헌신한 자들에게 보답하고자 쓴 글이라고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시대에 대한 부담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관심과 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희생과 참사가 있던 현장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그들에게서 받은 선물임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알려줘야 겠다.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흐른 뒤 1978년 봄 교정에 핀 진달래는 더 이상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이라는 <진달래>의 가사처럼 핏빛 진달래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전태일 열사, 사전 검속으로 잡혀가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선배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은유적 상징이었다. 꽃이 더 이상 꽃으로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끔찍했다."p.73


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p.272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이 역사로부터, 국민드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내상을 입은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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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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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독서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어렵지 않게 한번쯤은 발견하게 되는 이름이다.

한번도 그의 글을 읽은 적은 없었지만, 많은 애독자들이 그의 이름을 수시로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거론되는 그 이름을 접하며 한번쯤은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역사평론가이자 고전연구가인 한정주 님이 그의 글을 엮고 옮겼다는 이 책을 보고 '이거다!' 싶어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고전이고 오래된 책에 나온 단어와 표현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직접적으로 접하기는 부담이 되었는데 마침 이덕무의 글을 엮은 책이라니!!

마치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게 된 기회를 잡은 설레임과 두근거림, 기대가 이 책을 펼치며 가득했다.

 

간단히 이덕무라는 사람의 소개를 인용한다.

북학파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영정조시대에 활약한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다.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는 못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 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했다. (책 표지글 참조)

 

성리학과 계급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서얼출신은 그에게 분명 약점이었고, 많은 제약을 받았으리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소박함과 특유의 긍정을 잃지 않고 그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누려 여러 말과 글들을 남겼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그의 글들은 정밀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저술한 글들은 그 당시에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에 분주함에 휘둘러 사는 우리에게까지깊은 곳에 있던 자연스러움을 끌어올려 그것들로 충분히 쉼과 평안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관찰은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다. 삶의 이치와 진리를 자연에서 찾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나아가야 할 바와 행동해야 할 방향들을 떠올렸다.

 

그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글들을 바라보노라면 '이 사람!! 정체가 뭐야?'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다. 분명 문체는 고전적인데 소재를 보면 좀, 거미, 쥐, 족제비에서 바다물개, 학을 춤주게 하는 방법까지 아주 사소한데서부터 독특한 것까지 관심사가 다양하다. 일반인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하나하나 글로 남긴 것은 그야말로 그가 어떠한 것도 경시하지 않고 모든 것들에 대해 겸손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같이 종이가 흔하거나 편하게 펜을 쓰는 시대도 아닌데, 그는 항상 종이와 붓을 준비하며 다녔다고 하니 그의 열정과 사랑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6. 온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은 그 어떤 챕터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에게 관심을 갖는 그리고 나와 같이 그의 이름을 듣고 한번 쯤 관심을 가졌을 만한 사람에게 특별한 서비스 혹은 보너스를 제공한 것같은 느낌이 절로 드는 코너다. 평생 2만권을 읽었을 만큼 방대하고 또한 깊은 사색으로 풍성한 독서를 즐겼던 그의 책에 대한 사랑과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그의 독서사랑을 호색이 있는 자를 비교한 글은 순간 시선을 확 끈다. 그 당시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함부로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의식할만한 일이었을 텐데, '호색' 이란 단어를 거론하여 자신의 애독과 견주어 표현한 것을 보면 그의 재치와 유머스러움은 폐쇄적이던 조선시대에도 감출 수 없어보인다. 그가 글을 쓰는데 있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남기는 호탕스러움을 생각할 때 참 재미난 분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는 서자이고 가난했다. 겉으로 보기에 한계를 통해 많은 좌절을 겪었을 것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 당시 성리학을 거스르는 실학을 주목하는 시대에서는 실용과 효율이 그나마 통했기 때문에 그의 말과 글들을 공유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그의 글들이 도달해 깊은 울림을 줌을 생각할 때 그가 시대를 그나마 잘 타고났음과 그의 긍정과 호방함이 참 감사하.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가 옛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하여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삶의 철학과 진리이 있는 그의 글들을 그간 제대로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옛것을 배우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은 다행인 일이다. 

온고지신. 그가 우리에게 남긴 사유들과 새로운 지금의 것을 잘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와 이치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이 책을 통해 있길 바란다. 이 책이 고전스러운 깊은 통찰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다양함이 우리의 또 다른 사유에 상큼한 자극을 주길 기대한다.

 

  

 

시대의 기운이 변함에 따라 사람의 글 또한 달라진다. 태평한 시대의 글은 순수하고 맑고 밝은 기운을 띠고 있으며 천연의 질박한 아름다움을 숭상한다. 반면 혼란한 시대의 글은 인위적으로 화려하게 꾸미는데 힘을 쏟아 화려하고 경박한 기운을 띤다. 혼란한 세상일수록 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소박한 것보다는 화려한 것,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치레가 화려해질수록 본질은 더욱 경박해질 뿐이다. p.21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 中>

 

.....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의 가치는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p.35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쉽게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도 반드시 손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p.44

 

사람은 어떤가? 자질과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잉여 인간이 되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곳에 있으면 꼭 필요한 인재가 된다.

p.50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도 두루 알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스로 깨달아 터득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식은 서로 연쇄 반응을 일으킬 때 가장 좋다. 하나의 지식을 알게 되면 다른 지식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 그 의문을 풀어 가다보면 또 다른 지식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문학을 알면 역사가 궁금해지고, 역사를 알면 철학이 궁금해지고, 철학을 알면 과학이 궁금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학문과 저술이 지극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문학가이자 역사가였고 철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또한 예술가였다. p.81

 

경험과 인식의 오류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아는 것마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오류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곧 보는 것이 아는 것에 지배당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실체나 진상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대로만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모든 것을 시험해 보라. 자명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p.101

 

사물의 가치에는 차이가 존재할 뿐 무엇이 최상이고 무엇이 최하인지 어느 누구도 논할 수 없다.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은 사물은 그렇게 재발견되고 재해석 된다. p.110

 

편한 것만 좇다 보면 안일함에 빠지기 쉽다.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변화에 둔감해 큰 기회가 찾아와도 잡지 못한다.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환난이 쌓이고 쌓여 큰 위기에 봉착한다. 이기려고만 하다보면 종국에는 천적을 만나 낭패를 겪게 된다. 편안하면서도 안일하지 않고, 옛것에 머물면서도 혁신할 줄 알고, 임시방편에 능숙하면서도 일의 질서를 잃지 않고, 이기려고 하면서도 패배를 용납할 줄 안다면 그야말고 고상한 인덕의 소유자라 할만하다. p.145-146

 

어린아이가 울고 웃는 것은 타고난 천성이다. 어찌 인위적으로 한 것이겠는가! 어른들은 기쁘고 노여운 감정을 거짓으로 꾸민다. 어린아이에게 부끄러워할 일이다. <이목구심서3 中>

 

어린아이는 자기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일부러 그렇게 하거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타고난 천성에 따라 그렇게 할 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점점 거짓으로 감정을 속이고 인위적으로 마음을 꾸미는데 익숙해진다. 왜 그렇게 될까? 권세와 명예와 이익을 좇는 마음이 앞서면 모든 일에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하면 거짓으로 감정과 마음을 꾸며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솔직한 감정과 진실한 마음을 되찾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린 아이를 본보기로 삼으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린아이는 역설적으로 어른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p.160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쓸쓸하게 살아갈망정, 끝내 '이 세상에 나왔으니 이 세상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이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마음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서계 박세당이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 남긴 말이다. p.162

 

루소 <에밀>을 읽어보라. 그는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목표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기심과 상상력의 힘을 긍정해야 한다. 그 능력에 따라 인가의 미덕과 악덕, 행복과 불행, 환희와 고통, 현재와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는 반드시 호기심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세계 자유로운 세상을 그려볼 수 있겠는가? 새로운 발견과 발명, 그리고 창조의 진정한 에너지가 바로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상상력 속에 존재한다. p.201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착한 것과 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워하는 것 가운데에서 착한 것을 찾을 줄 알고, 사랑하는 것 가운데에서 악한 것을 볼 줄 알아야 공정한 식견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잇따. 이익의 관물편에 실려있는 한 대목의 뜻을 빌려 생각을 펼쳐보았다. p.214

 

행실은 언제나 상층을 밟을 것을 생각해야 된다. 거주와 생활은 언제나 하층에 처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미 평범한 사람이라면 힘껏 나아가 선한 사람이 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이미 선한 사람이라면 역시 힘껏 나아가 군자나 대현이 되어 성인에 도달할 것을 생각해야 된다.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굳세게 나아가는 데 달려있다. 만약 크고 넓은 집에 살고 쌀밥과 고기반찬을 먹고 지낸다면 "초가집에 살면서 나물밥을 먹는다 해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초가집에 살고 나물밥을 먹고 지낸다면 "흙집에서 살면서 굶주린다 해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된다.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겸허하게 행하는데 달려있다. 대체로 이와 같다면 어디에 간들 편안하고 태평하지 않겠는가.

p.267

 

....인간의 불행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권세와 부귀와 명예와 이익을 얻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얻으려다가 인격과 존엄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때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인생일기>에 나오는 에픽테로스의 말을 차용해 표현해보았다. p.268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생활 속 잡감을 거리낌 없이 글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일상의 미학이다. 일상은 그냥 두면 지나가 버리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글로 옮겨 담으면 색다른 의미와 가치로 영원히 남게 된다. 이덕무는 추운 겨울날, 늦은 밤에서 이른 새벽까지 불평과 화평사이를 오간 잡감의 조각들을 이 글에 묘사했다. 이러한 잡감이 하루 이틀의 일이겠는가?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밤 동안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오고 갔으리라. 어디 이덕무만 그러했겠는가? 아마도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과 감정의 기복을 겪었으리라. 그렇다면 이덕무와 그들의 차이는 단지 자신의 잡감을 글로 옮겨 묘사한 사람과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그냥 보내버린 사람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덕문의 일상 속 잡감은 이백오십여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큰 울림을 남기지만, 시간의 흐름에 보내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잡감은 무엇인지 알 익링 없다. 일상에 숨결을 불어넣고 생명을 부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무엇이든 글로 옮겨라. 당신의 일상은 새삼 재발견되고 재창조될 것이다. p.275

 

머리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써 꾸미거나 자꾸 다듬으려고 할 것이다. 심장으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기운을 어떻게든 새기려고 힘쓸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가식이고 인위다. 그러나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 가득 쌓여 있는 말과 글을 도저히 참거나 막을 수 없을 떄 그 말과 글을 그냥 토하고 뱉어 낸다. 이것이 모두 자연이고 천연이다. p.301

 

"숙제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나쁘다. 숙제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꾸중을 듣지 않을까 무서워 마지 못해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대개 참고서 모범 답안 따위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한 것이지만 사실상 내가 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숙제다. 또한 목적이 따로 있거나 남을 위해 쓰는 글이 가장 좋지 않다. 십중팔구 자신이 정말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형태의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진실로 '내가 쓴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때 쓴 글이 가장 좋다. 단지 정말로 쓰고 싶다는 마음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도 이유도 없이 써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p.359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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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이권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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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터넷서점에서 이 책을 다루는 것을 발견했다.

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라...??

가지를 책 제목에 다룬 게 인상적이어서 궁금해졌다.

권수를 정해 책을 읽고 그것들에 대해 쓰기로 나름 기회를 만들고 실행한지 1년이 넘었다.

그러면서 읽기와 더불어 자연스레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었다고 표시만 하려고 쓴 글쓰기가 '나도 글을 잘 써보고 싶다'라는 바람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관련된 책은 소개가 넘쳐난다.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독서인구가 과거에 비해 적어졌는지는 몰라도 읽는 이들에게는 글쓰기가 여전히 독서와 더불어 뗄 수없는 '실과 바늘'과 같아서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이 책은 오직 책읽기만 혹은 글쓰기데만 초점을 둔 책들과 구별된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관계를 밀접하게 여겨 두가지 모두를 강조한 것이 확실히 차별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큰 챕터는 딱 두가지다.

제 1부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 잘 읽는 법,

제 2부는 어떻게 쓸 것인가- 제대로 쓰는 법

이렇게이다.


1부에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책읽기의 기술을 고전을 인용하여 다루고 있다.

또한 글쓰기와 연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독서법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글쓰기의 기본과 글쓰기의 요령을 다룸으로 우리가 글을 막연하고 어렵게 여기게 될 때 글에 대해 틀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글쓰기의 방식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을 구성하고 전개하는 글쓰기를 말한다.

책을 잘 읽고 싶어하는 사람과 제대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두루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마지막으로 다루는 '이제, 독후감과 서평에 도전하자'!!

책을 읽은 후 감상문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쓴다'는 것에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다루고 기록해야할 것같은 부담감에 선뜻 쓰지 못한다. 그렇게 쓰기를 머뭇거리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챕터이다.

어려운 글쓰기라는데에 서서히 접근하도록 저자는 친절히 방법을 제안한다. 

또한, 여기서는 서평을 쓰는 걸로 주로 글쓰기를 하는 내게 서평이 무엇인지 서평을 쓸 때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생각과 태도로 책에 접근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동안은 기한을 맞추는 일, 내 독서목표량 등의 어떤 목적에 따른 독서와 글쓰기가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주장과 해석보다는 전반적인 이해로 서두른 감도 없지 않았다. 고백하지만 충실한 글쓰기였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되돌아보고 글쓰기에 반성하며 성실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저자가 이야기 한 것들을 요약하자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충실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의 제대로 된 읽기가 기반이 된다. 하지만, 그 읽기는 능동적인 행위인 쓰기를 동반할 때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독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읽기와 쓰기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존에 책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들 개인적인 사유와 경험을 다룬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런 점에서도 구별된다.  독서평론가이자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는 전문가인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면서도 다양한 자료들을 근거로 우리에게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그의 문장이 꼼꼼하고 정돈된 것을 볼 때 전문가스러움이 느껴진다. 제대로 된 독서와 글쓰기를 알고 싶다면 읽어보고 저자의 안내대로 따라해보면 상당한 도움이 될 듯하다.

'글쓰기와 읽기는 다르며, 그중 하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읽기와 쓰기에 새로운 인식을 주고 조금더 이것들에 친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이 '쓰기'에 관련된 책이어서 이 글을 쓰는게 몹시 부담되고 자신이 없어졌다는 건... 안비밀.^^;

하필 이 책을 읽고는 뭔가 쓸 준비를 안했다는건 또 안타까운 일...^^;

 

그렇다면 흩어져 있고 넘쳐나고 흘러 다니는 정보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수많은 정보 가운데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눈입니다. 그리고 무관해 보이는 정보를 엮어서 유관한 그 무엇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이런 안목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소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가장 작고 낮은 단위의 정보에서 시작해, 가장 크고 높은 단위의 지식으로 끝나는 것은 오직 책 뿐이기 때문입니다. p.18


모르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고, 그 말에만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삶을 일러 자유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결정해 살아가려면 두루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책읽기가 바로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지요. p.38


그러니, 우리 삶은 <삼국지>의 삶과 <서유기>의 삶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길로만 가지 아니하고 두 길을 다함께 걸으려 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적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여기에만 빠지지 않고 진정한 것에 대한 열망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렵지요?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양극의 팽팽한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느 한 길로만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온고하면서도 지신하고, 지신하면서도 온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고는 말씀의 길, <서유기>의 길일 수 있고, 지신은 욕망의 길, <삼국지>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두 길 가운데 한 길을 버려서도 아니 되고 팽팽하게 맞서 있는 두 길 사이에 있는 작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일러 옛사람들은 중용이라 했지요. p.46


이제 고전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가 드러난 셈인가요? 참고서를 보는 것은 답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바로 질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답을 찾는 훈련을 참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질문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중요할까요? 질문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질문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더욱이 질문은 지적 호기심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떡하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고전에는 질문과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익히는 것이지요. 답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고전 읽기의 참된 모습인 셈입니다. p.67


공부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볼 책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길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길을 걸어 궁극에 참된 사람이 되려는 열망 없이 공부할 적에 우리 책상에는 입시나 처세와 관련된 책만 켜켜이 쌓여 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 앞에 놓여 있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지요. 고통받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소설이나 언어 감수성을 세련되게 해주는 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사회과학책,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논쟁적으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철학책이겠찌요. p.84


저는 지금 해리 포터 시리즈를 무조건 재미있게만 읽지 말고 비판하며 읽자는 말을 에둘러 한 셈입니다. 그 가운데 타고나 ㄴ것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설정을 다른 시각에서 비판하고 있찌요. 책은 본디 이렇게 읽는 겁니다. 작가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꼼꼼하게 읽어보는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찾아내고 시비를 걸며 작가에 도전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p.116


오랫동안 우리는 읽기만을 강조해왔씁니다. 워낙 안 읽었고 읽을 여유도 주지 않았고 읽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릴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읽기만 강조하다 보니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수동적인 행위를 할 적보다 능동적인 행위를 할 때 더 즐거워하고 더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기실 읽기는 아무래도 수동적 행위입니다. 지은이가 마련해놓은 논리의 줄기를 따라 읽어가며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작가가 감춰놓은 복선을 들춰내어 주제와 상징을 해석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과 감성의 수준을 높이려고 읽는 책은 대체로 수준이 높습니다. 여러모로 힘든게 사실이지요. 이러다 보니 책읽기에서 멀어지는 면도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저는 관점을 바꿔보자고 제안합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사유를 논리체계를 갖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쓰기를 익히는 과정은 읽기 못지 않게 어렵고 쉽게 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읽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얻은 힘을 바탕으로 해 쓰는 사람이 됩시다. 특히 읽기가 의미의 수용이라면, 쓰기는 의미의 창조입니다. 쓰기는 능동적인 행위이잖아요. 남에게 설득당하기보다 남을 설득하려는 일이니까요. 무슨 일이든지 능동성을 띤 행위는 좀 더 기쁘고 행복하기 마련입니다. 그 어떤 희열보다 창조적 행위를 능동적으로 했을 때의 기쁨이 제일입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하자는 겁니다. '읽자'를 강조하기보다 '쓰자'를 강조해보자는거죠. 수동보다는 능동을, 수용보다는 창조에 방점을 찍자는 말입니다. p.136-137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p.154


"당신의 글쓰기를 누르던 자아라는 짐을 벗어던지는 순간 당신은 인간적 감정과 인생의 단면이라는 파도를 타고 더 큰 조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지요. 나타릴 골드버그가 강조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손을 계속 움직여라. 그러지 않으면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둘쨰,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떠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셋째,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넷째,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다섯째,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여섯째,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p.161


서론은 기본적으로 가볍고 날렵하면서도 짧게 쓰는 게 좋습니다. 익숙해 질 때까지는 전체 글의 5분의 1정도만 서론이 되도록 노력해보아야 합니다. 서론을 구상할 적에는 먼저 서론의 핵심인 문제제기를 확실히 하고, 읽는 이의 관심을 끌 만한 화젯거리를 생각해보는 게 낫습니다. ... 결론은 글 저넻의 주제의식을 단 한 줄로 정리할 만한 구절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잘 쓰인 결론은 지금껏 해온 논증의 필연적 귀결이면서, 서론과 본론을 종합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p.182-183


문장론 십계명

첫째, 문장이 길면 짧게 줄여야 합니다. 복문을 쓰지 말고 단문을 써야 합니다.

둘째, 한 문장에는 하나의 생각만 담아야 합니다.

셋째, 미사여구가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넷째, 수동태는 가능한 한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말 문법에는 수동태가 없습니다.

다섯째, 영어의 영향을 받아 '만들다'가지다'를 남발합니다. 문맥에 맞게 다양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여섯째, 강조하기 위해 '~ㄴ것이다'라는 어투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이다'로 맺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일곱째, 접속어는 가능한 한 적게 쓰는게 좋습니다.

여덟째, 주술관계가 명확한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홉째, 부사어가 자주 나오면 글의 격이 떨어집니다.

끝으로, 항상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을 그야말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p.183-184


그렇다고 반드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독후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과 책 그리고 사유의 결과를 오롯이 글에 담아내는 훈련을 꾸준히 해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책을 이해하는 능력과 글 쓰는 실력을 동시에 높여준다는 점은 기억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p.214


앞의 글을 기초로 서평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평 대상 도서를 제대로 분석해 공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분석할 때는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드러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 책에 담긴 지은이의 독창적인 해석을 잘 드러내고 그것의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평이라면 미리 책을 읽은 이(프리뷰어)로서 미덕을 보여주어야 하는바, 책의 내용을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요약해주어야 합니다.

-평가를 할 적에는 그 책의 미덕과 한계를 균형 있게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에 부족한 점이 있따면 이를 정확히 지적해주어야 하며 분석이나 설명에 오류가 있따면 이 또한 말해주어야 합니다.

-저자가 펴낸 기왕의 저서에 대한 정보, 이를 통한 저자의 특성을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독자의 선택과 이해를 돕는 데 서평의 일차적 목적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거나 입장이 다른 책을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저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로 서평을 써야 합니다.

p.224-225


.... 쓰려고만 하지 말고 잘 읽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평의 목적은 남의 지적, 문화적 성과를 평가하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하고, 잘 읽으면 잘 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서평 쓰기의 진정한 기본은 그러므로 잘 읽는 데 있습니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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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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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읽은 작가의 저서였다.

뭔가 빠르게 읽히도록 몰아치는 몰입감을 주는 것도 매력이지만

사물과 이해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독특함 또한 그렇기도 해서 작가의 글을 사랑한다.


그냥 한 스토리처럼 여기자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글의 한곳한곳이 지속적으로 뇌리에 남게 되는 것...

작가의 글이 뭐였더라 하며 떠올릴 때 그랬구나 하고, 그래서 작가의 책을 다시 잡게 된다.


이 책에 대해서 어떠한 분석이나 해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 개인적으로 복잡할 것 같고, 더 많은 생각을 하기에 여유가 없어서다.


그냥 글 자체가 참 좋은 작가의 저서 중 하나이고,

글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사색과 삶에 대한 통찰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그냥 단순하게 몇가지 떠오른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인물을 생각해 보면...


현금의 캐릭터는 거침없고 솔직하다.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매력이 참 멋지게 느껴졌다.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서 더 끌렸고,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 할 수 잇는 그녀의 캐릭터가 동경이 되었다.

처음엔 그야말로 '나쁜 년'으로 여겼지만, 그녀 자신이 도덕적인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솔직한 인정함과 자신의 인생을 통해 끝없이 자신을 찾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빈은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하며 비겁하다. 어쩔 수없는 환경에서 그는 얽매이고 능동적일 수 없던 삶에서 자신의 생명만큼은 자신에게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그건 당신의 핑계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있어서 그의 상황들과 그의 우유부단함이 이해가 되었지만, 자신의 환경에서 거스르기를 포기했던 그냥 자신을 내었던 삶을 그럴 수밖에 없음처럼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이 찌질해보이기도 했다.


영묘를 보며 과연 저 여자가 사법고시 공부한 사람이 맞을까? 싶었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그리고 절박함과 충격 속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만큼은 똑똑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할거라고 응원하고 기대했떤데에서 배신감을 느꼈다. 후에는 오빠를 힘입어 결국 시댁의 그늘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지만 참으로 그녀의 삶은 시작부터 결혼이후 내내 씁쓸하고 개운치못하게 갑갑함을 남겼다.


아! 그리고 이 책에서 강하게 뇌리에 꽂힌 것은 '인간의 탐욕과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인간의 상식과 존엄은 배제된 여러 상황들이 경악스럽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도태되고 당하는 약자들은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버텨보고자 애쓰고 비틀고 방황해가며 견뎌온게 영빈의 삶을 통해 보이는 듯하다. 서로가 속고 속이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소속을 향해 가는 우리네의 모습이 이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아서 씁쓸했으나 강렬했다.

뿌리와 본능의 힘은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점차... 이내 곧... 사그러든다.

그리고 어찌어찌 살아낸다.



 


"난 느네가 이사 갔다는 거 느네 집에 능소화가 피지 않는 걸 보고서 처음 알았어. 되게 섭섭하더라. 우린 느네보다 몇 년 더 그 동네서 살았거든. 어쩜 이사 갈 때 능소화까지 파 갔냐?"

"얘는, 멍청한 소리 하고 있네, 그때 우리 쫄딱 망해서 그 집 쫓겨났는데 무슨 수로 꽃나무를 파가냐? 파가길. 그 집 빼앗아 이사 온 아버지 친구도 우리 집에 전화 걸어 제일 먼저 한다는 소리가 어떻게 사느냐는 안부가 아니라 딴 정원수들은 다 잘 있는데 유독 능소화만 여름이 되도록 기척이 없다고 혹시 우리더러 죽이고 간 게 아니냐고 항의하는 소리였어."

"그럼 저절로 죽었단 말이지."

"저절로 죽긴 어떻게 저절로 죽냐, 자살을 한 거지."

"자살? 나무가 말이야?"

"그래 그 나무는 나를 좋아했으니까. 나를 좋아하지 않음 내 창가에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울 수가 있겠어. 우리 집 능소화처럼 화려하게 피는 능소화를 난 어디서고 본 적이 없어."

p.45


호적을 가르고 나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내 안의 나태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나는 단순 소박하고 외롭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구별이 안 되는 나태라는 악령 먼저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육체노동에 대한 갈망이 신흥종교에 대한 광신처럼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이상으로 삼은 정직하고 순결하고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육체노동의 본이 농사였다. 본보기는 제대로 정했다고 생각한다. 생각만으로 벌써 딴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신바람이 났다. p.63


그렇게 복잡한 이유 없이도 충격 받으면 투병의지를 잃고 더 일찍 죽을까 봐 우려하는 착한 마음으로 환자를 속이는 경우가 실은 더 많다. 영빈은 그런 착한 마음에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가 죽을 병들었을 때, 그의 주치의나 가족이 어떡하든 그를 속이려 든다고 바꾸어 생각해도 그는 모욕감을 느낀다. 개인정보가 예금액서부터 지문까지 어딘가에 차곡차곡 입력되어 있을 이 공포스럽도록 발랑 까진 대명천지에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고를 나만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내 몸은 무언가? 이 세상의 하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일생 받들어 모신 나의 주인이기도 하다. 내 몸을 가지고 비록 자식이라도 나를 속여먹으려 든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p.154-155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너무 적다. 영빈은 특히 자기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자기 시간을 낼 수 없는 의사라는 직업도 그가 원해서 된 건 아니었다. 피할 수가 없어서 되었을 뿐이다. 결혼도 피할 수가 없으니까 했고, 일을 피할 수가 없어 휴식을 못해봤고, 여행도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여행만 해봤지, 여행이 목적인 여행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태어난 것도 죽는 것도 선택은 아니지만 어떻게 죽느냐 정도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p.155


"넌 참 좋겠다. 넌 아마 하고 싶은 말을 참은 적도, 생각에 없는 말을 꾸며댄 적도 없을 거야.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의사가 환자한테 바른말을 못하는 고민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를테면 조기 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에게 외국 같으면 당연히 당사자에게 알릴 것을 우리는 보호자에게 먼저 통고를 하고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들 왜 그렇게 속이려 드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생각해봐.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 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 이런 거짓말을 강요당할 때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 적도 없다니까."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의사라고 농담하지 말란 법 있냐? 특히 너처럼 꽉 막힌 애는 농담 좀 할 줄 알아야 돼."

p.164-165


생활은 풍족했고, 노인들은 인자했고, 연못과 폭포까지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노는 걸 한 폭의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문득 할머니를 위해라는 건 자기기만일 뿐, 이 고여있는 시간 속에 뱀눈처럼 숨어있는 건, 이 저택과 조 단위의 재산을 노리는 욕망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영묘는 자기도 그 욕망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간단히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었다. 송 회장이 못 박았듯이 그걸 포기하는 건 바보짓이다. 그러나 바보 짓을 안 하려니까 자신이 서서히 박제(剝製)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 건 또 어떡하나. 살아 있는 채로 생기는 야금야금 증발하고 꺼풀만 반듯하게 보존되는 과정이 영묘가 느끼는 오늘이 어제와 다른 유일한 변화였다. 이 젊은 나이에 자신이 박제가 돼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거야말로 정말 바보짓이 아닐까. 어떤 게 진짜 바보 짓인지 알아야 한다.

p.276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아서 기어 들어간 안방에 큰 대자로 누워서 코를 고는 아내를 보자 영빈은 뒷걸음질 칠 것처럼 놀란다. 이건 얼마나 미련하고도 당당한 현실인가. 이걸 극복할 수 없는데 어찌 뜬구름을 잡을 것인가. 내 앞에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이 현실에서 내가 도망가봐야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육중한 것일수록 인력이 세다는 걸 그는 몸 전체로 느낀다. 아내의 몸은 실상 조금도 육중하지 않다. 현금이보다 오히려 작다. 시숙이 백만장자가 됐다는 소리에 애가 떨어질 뻔하게 놀랄 정도로 간뎅이도 작은 여자다. 그러나 나의 영역에서의 저 당당함이라니. 아내의 몸 속에는아들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유구한 여성잔혹사가 압축돼 있다. 어찌 육중하지 않겠는가. 현금의 명령 한마디로 맥없이 물러나 내 힘으로는 털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으리라. 그는 다용도 실에서 밤새 차게 식은 몸이 아내에게 닿을까 봐 침대 가장자리에 새우처럼 몸을 오그렸다. p.321-322


"멀리서 너희 집 쪽을 바라볼 때나, 너희 집에 올 때나, 네가 과연 거기 그냥 있을까 늘 불안해했었거든. 너와 나 사이의 불안은 이미 친숙한 감정이야."

"친숙한 불안도 있나. 친숙해질 수 없는 게 불안인 줄 알았는데."

"그래 그건 불안이라기보다는 전율이었을 거야. 매번 처음처럼 새로운....."

p.323-324


그러나 모르는 척해야 된다,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모르는 척, 부부간의 파국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걸 나타낼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건 자신이 얼마나 너그럽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막힌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만치나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는 가족이라는 게 이렇게 엉성한 허구 덩어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정답인 걸로 돼 있는 모범적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모범생이 다 그렇듯이 그는 정답에 약했다. 그래서 사실이 밝혀질까 봐 조심조심하는 건 아내가 아니라 영빈 쪽이었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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