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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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제목만 보고는 촌스럽지만 순박한 느낌인 드는 소설 <몽실언니>를 떠올렸다.

표지 또한 풀밭에 있는 언니의 모습이 청초하게 느껴졌지만, 막연하게 언니를 그리워하는 따듯한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한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기로 지정해던지라 책을 펼쳤다. 간단히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접하고 무심코 읽어내려간 프롤로그에서 받은 강력한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피의자 신분인 최순실은 수송버스에서 내려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외친다. 저자는 그녀의 소리에서 한 여인을 떠올린다. 똑같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송버스에서 내린 저자가 떠올린 그 여인은 "민주주의 쟁취, 독재타도!"를 외친다. 같은 상황의 여인 둘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 한 순간을 통해 그녀는 세월 속에 묻어놓은 영초언니를 다시 회생시키며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불과 2년도 안 되었던 2016년 겨울 우리는 비선실세의 거대한 그림자를 직면했다. 그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고 그 자체로 한동안은 크나큰 충격에 빠져있었다. 그에 촛불시위로 국민의 권리와 힘을 보여주었고, 이른 새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미 한번 분노와 열정으로 격렬히 타오르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차에 영초언니의 소환을 통해 우리는 다시 그 감정을 떠올린다.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철저히 농락당한 우리 국민의 삶에 대한 배신감, 박탈감, 허탈함.... 등등...

그리고 이루어낸 정권의 교체와 새롭게 인식된 민주화 정신으로 벅찬 그 순간의 느낌.....


영초언니를 그녀의 기억속에 힘겹게 끄집어 내며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영초언니를 만나게 된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객관적이고 또박또박 그리고 담담히 이야기 해 내는 그의 문체는 화려하지도 않고, 감정을 휘두르는 수식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거운 이야기를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을 수 있다.

기자였다고 했던 그녀의 경력을 보며 소설가가 아니어도 이렇게 침착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기술할 수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흡인력있어 강력한 사로잡힘에 끌려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영초언니를 만나며 저자는 그가 지녀왔던 시각에서 새로운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를 통해 불의하고 모순된 사회의 모습을 보았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보게 되었다. 남다른 보살핌과 우정,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전반적인 사고를 뒤흔든 그녀, 영초언니였기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비겁해지기로'한 저자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왔다.


정의와 선을 따라갈 것인지, 안정과 성취를 따라 갈 것인지 저자는 우리네 사람들이 흔히 겪는 고뇌와 갈등으로 매 순간 선택의 위기에 직면한다. 가난한 환경에서 처한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야학과 노동현실을 고발하며 깨우치는 야학, 그리고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볼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을 알기 쉽다. 하지만,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준 가족이 있기에, 지켜내야 할 현실이 있기에 무작정 이상을 쫓으며 현재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고민 끝에 저자는 안정과 가족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그리 순탄치는 않아 쫓기고, 갇히고, 당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 상황에 영초언니가 있었고, 언니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현시대를 고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서술된 많은 희생자들의 고통들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의 현재 안위와 평안이 어디서 왔는가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빚을 지었지만, 권력의 통제아래 우리는 귀머거리였고, 눈먼자여서 우리는 몰랐노라고 우리끼리 핑계를 대본다.

알 생각도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가 버거웠다는 이유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참혹한 십자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롱하고 야유해왔다.

그런 나의 무지함이 무관심함이 또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켰음을, 그 댓가를 우리가 다시 돌려받았음을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핑계는 고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그들의 현재는 어찌 이리 비참하던가...?

그들은 현재와 미래 촉망받는 지성인들이었다. 끔찍이도 사랑받는 그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열띤 토론을 하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있나? 무엇을 하고 있나?

영초언니, 정문화 ... 그들이 목숨걸고 끝까지 지켜온 숭고한 가치에 대해 권선징악 보상을 받고 있나?

오히려 벌집집에 살았고, 다단계에 뛰어들었고, 이혼하여 가정이 깨어지고, 빨간 줄이 그어져 취업조차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그들의 어둡고 외로운 그림자는 그들의 삶에 깊게 드리워져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어왔다. 그런걸 생각할 때에 그 비참함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이책의 주(主)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 한국사회의 깊은 성차별의 뿌리가 그 당시에도 깊었던 상황을 읽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의 원인들을 이미 예견된 것이었겠구나 싶다. 자신과 다른 성에 대한 무시와, 조소와 폭력이 자행하던 그 시대를 볼 때 '어떻게 저런 세상이 불과 몇십년 전에 있었나' 생각이 든다. 요즘의 페미니즘을 적극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재와 견주어 유머스럽게 걸크러쉬를 다루었지만, 걸크러쉬가 주목되고 있는 현재와 그 당시에 여자들의 공동체(여대, 여성관련 단체 등)를 볼 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상황들을 살펴볼 때 아직은 우리가 약자에 속하기에 이런 현상이 있구나 싶다.


아무도 이야기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전태일 열사의 노동투쟁, 대학생 궐기대회, 광주5.18민주화 운동, 제주 민주화 항쟁 등... 저자는 그녀가 있던 모든 곳에서 민주화가 거쳐가는 것을 그녀의 몸으로도 거쳐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열어보인 것을 우린 한번에 보았다


저자는 비록 영초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민주주의에 헌신한 자들에게 보답하고자 쓴 글이라고 하지만,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시대에 대한 부담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관심과 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희생과 참사가 있던 현장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그들에게서 받은 선물임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알려줘야 겠다.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흐른 뒤 1978년 봄 교정에 핀 진달래는 더 이상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이라는 <진달래>의 가사처럼 핏빛 진달래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전태일 열사, 사전 검속으로 잡혀가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선배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은유적 상징이었다. 꽃이 더 이상 꽃으로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끔찍했다."p.73


행복! 당시의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사전 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그런 단어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부 기자들의 최대 전쟁터, 시사지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목인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사지 편집장인 내게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총 맞고 전사하기 딱 좋은 전쟁터에서 이 악물고 용케 버텨내고 있었기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고, 내 영혼의 우물물은 바싹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자각에 진저리치는 나날이었다.

p.272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뭐라 형용하기 힘든 비참한 심경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그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다니. 우리가 젊은 날 한 그 모든 일이 역사로부터, 국민드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받는 느낌이랄까. 박대통령이 당선된 뒤로 나는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내상을 입은 것 같아서 한동안 뉴스조차 보지 못했어."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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