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갖고 있는 공포감. 특히나 전자기기들. 중금속들과 기기 속 내 정보들이.

당신은 매주 화, 목, 일요일에 쓰레기를 내놓는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간 쌓인 쓰레기를 정리한다. 전염병의 시대를 살게 된 이후로 당신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더 늘어난 것만 같다. 줄이려고 애쓰는데도 금세 쌓인다. 당신이 이 지구에 없을 훗날에도 당신이 썼던 모가 닳은 칫솔, 끊어진 머리끈, 깨진 머그잔은 땅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썩지도 않고 남겨질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당신은 질끈 눈을 감는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물론 괜찮지 않다. 살아가는 일이 죄스럽다. 당신은 수거차가 다녀가기 전에 늦지 않게 쓰레기를 내놓기로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반투명한 비닐봉지에서 달그락달그락 앓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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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물건들은 아니다. 잼이나 소스, 피클이 들어 있던 병, 차나 쿠키, 디퓨저가 담겨 있던 상자들이다.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색이나 은색의 병뚜껑, 맑게 빛나는 유리,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틴케이스와 단단한 마분지로 만들어진 상자. 버려지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당신에게는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서서히 멀어졌거나 뒤돌아 떠났거나, 결코 돌아올 수 없을 이름들.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자주 그 이름들을 부른다. 묵독을 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때처럼 호명한다. 그 이름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당신은 선명하게 듣는다. 고유한 말투. 희미한 미소, 가만가만한 고갯짓을 본다. 때때로 그 이름들이 당신의 일상에 불현듯 출몰하기도 한다. 한 줄기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흩어놓고 나뭇잎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갈 때, 잔물결 위 빛 조각 하나가 끈질기게 당신의 눈길을 따라와 반짝거릴 때, 그것들이 매단 투명한 이름표를 목격한다. 당신은 당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는다. 곧바로 알아차린다. 아니, 덮어놓고 믿어버린다. 해묵은 그리움과 간절한 기도가 다르지 않다고 당신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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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죽음을 소재로 삼지 않겠다.
2001년 여름, 당신은 일기장에 쓴다.





 
나는 수첩에 적힌 외마디 단어들 위에 검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봄이 오면 뿌리려고 하얀 종이에 고이 싸놓은 작은 씨앗들 같다. 까맣게 지워졌어도, 아니 까맣게 말랐어도 당신은 이제 안다. 씨앗들이 품고 있는 소리를, 하나하나의 이름을. 이 씨앗들을 당신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씨앗들은 당신에게로 가서 어떤 이야기로 자랄까. 부디,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가 무탈했으면, 덜 쓸쓸했으면 좋겠다.
씨앗들은 이제 내게 없고 당신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부질없는 일일까.
과연 시간은 잘도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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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하던 날에요. 제 생시는 왜 물어보셨던 거예요?
아…….
숙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 기운이 많다고 해서, 이 집터에. 나도 그렇고. 목 기운이 들어오면 좋대서.
저 몰래 제 사주를 보신 거예요?
기운만 봤지, 기운만. 다행이었지 뭐. 302호 아가씨가 목 기운이 강하다고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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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의 장례는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전용 빈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간소하게 예식을 치렀다. 참석한 사람은 숙분과 기연, 미리내의 직장 상사와 동료 둘이 전부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숙분은 사십구재가 되는 날까지 매일 302호의 현관문을 열어두고 향을 피웠다. 미리내의 유품은 상자에 담아 4층에 올려놓았다. 혹시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십구재 날에는 302호 안방에 조촐한 제사상을 마련했다. 그날은 단심도 일찍 가게를 접고 따로 부쳐두었던 전을 싸 들고 숙분을 만나러 갔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자 빌라의 세입자들과 주변 이웃 몇이 302호를 찾아왔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제삿밥을 먹고 돌아갔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서야 숙분은 벽지와 장판을 새로 갈았다. 처음에는 단심이 들어올 계획으로 집을 내놓지 않았는데, 단심이 살던 집과 20년 가까이 해오던 백반집도 정리하기로 하면서 이사가 계속 미뤄졌다. 숙분과 단심은 상의 끝에 일단 302호에 세를 놓기로 했다. 그해 가을, 302호로 나경이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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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완벽함을 찬양하고 인간의 부족함을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실수를 남겨둔다는 아미시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라고 둘러대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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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내가 뜨개 선생님에게 바라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 뜨개 강사나 디자이너를 비방하지 않을 것, 다른 하나는 수강생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둘 것. 이 두 가지를 갖춘 선생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의 커리큘럼이 몇 년 과정이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뒤 이런저런 교육기관을 꽤 기웃거린 편이다. 수채화와 데생, 인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출판 기획과 마케팅, 시나리오와 번역까지 꽤 많은 강의를 들으며 다양한 강사들을 봐왔다. 그중에는 깊이 있는 강의를 하면서도 수강생과 친구처럼 소통하는 강사가 있는가 하면, 강의실을 자신의 왕국처럼 꾸려가는 강사도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수강생의 심리 상태까지 알고 싶어 하는 강사, 자신이 가르친 대로 단축키를 쓰지 않으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강사, 의대에 진학했다는 자신의 딸과 딸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강사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했다. 첫 강의를 듣고 강사가 어떤 유형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건 다년간의 수강 경험이 쌓인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 두 가지 조건은 몇 차례 뜨개 강의를 경험한 뒤 갖게 된 나만의 수강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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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당시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상에서 늘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어느 기자가 쓴 수필집에 이런 글이 있었다. 사회에서 활약하는 여자 선배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자 후배에게 들려주는 몇 가지 조언을 적은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조언은 기억이 안 나고 내 머릿속에는 세 번째 조언만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의 잡지를 한 권 반드시 구독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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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분 역사를 안다.
인강으로 에브라임 국사를 들었으니까. 그래서 잠깐 공무원 준비 할 때 선생님이 말씀 세게 하시는 게 적응이 잘 안 됐다. 대학생이 되어 이후 사촌동생이나 학생들에게 추천해주면 내 말에 설득력이 없었는데 그건 전한길 선생님 암흑기 때여서 그랬던 거 같다. ^^;;



‘가난해져 보면 착한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워져 보면 충신을 알게 되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강한 풀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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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락장에서도 통하는 논리 같다. 나는 상승장보다 하락장에서 더 종목 보기가 쉬운데, 하락장에 주가 안 빠지고 버티는 애들에 상승장에선 날아갈 가능성이 커서 하락장을 좋아한다. 물론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게 좋지만 요즘같은 하락장에선 버티는 애들 몇개 갖고 있으면 참 든든하다. 상승장보다 하락장에서 종목고르는 게 참 좋다.

명절 때 카페에 올라온 이야기다. 설날 큰집에 갔는데 큰아버지가 너 요즘 뭐 하냐 해서 공무원 공부한다 하니까 "야, 너 안 돼. 너는 떨어져"라고 했다더라. 큰아버지의 그 이야기를 듣고 부글부글해서 바로 집으로 왔는데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댓글로 그러면 니 생각이 옳고 큰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그랬다. 큰아버지한테 멋지게 복수하라고.
누구든 나보고 안 된다고 말하거든,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큰아버지 이게 뭔지 아십니까?" 합격증 딱 들고 다음 명절 때 가서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큰아버지가 뭐라고 하겠나? "그래. 너 참 훌륭하다. 고생했다. 멋있다"라고 할 거다. 내가 잘되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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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강사 시절, 나는 소위 잘나갔다. 대구 지역 출신 강사 최초로 EBS 방송 강사가 되고, 강의 평가도 EBS 강사 전체에서 1등을 했다. 강사와 직원을 합쳐 100명이 넘는, 대구에서 가장 큰 학원인 유신 학원 이사장도 했다. 내가 집필한 교재도 전부 베스트셀러였다. 『에브라임』이라고 당시 EBS 방송 교재보다 이 책이 더 많이 나갔다. 그러니까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 인기 스타 강사, 이사장, 출판사 대표이사를 하고는 그 뒤로 다 실패했다. 학원 실패, 출판사 부도, 인기 강사 추락. 메가스터디 꼴찌 강사까지 갔다. 어떤 사람이 캡처해둔 게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전한길 메가스터디 꼴타’ 잘나가던 30대 초반 전한길은 엎어지고 부도나고 25억 빚더미에 앉았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 중 내가 실패한 걸 기뻐한 애들도 많았다. 내가 망한 걸 가지고 저희들끼리 수근거렸다. "야, 전한길이 망했대. 아이고 어떡하냐?" 그러면서 자기들 위안으로 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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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항상 최선을 다하되 무조건 목숨 걸고 해라. 그랬는데도 떨어질 수 있다.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하면 된다.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렸다. 마인드 컨트롤.

‘가난해져 보면 착한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워져 보면 충신을 알게 되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강한 풀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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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한테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딱 하나다. "자기 자신한테 실망하지 마라"는 것이다. 나도 책도 내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강의도 하고 덕분에 명성도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지눌 스님이 이야기했지 않나. 깨닫고 노력하고 작심 3일, 또 노력하고 또 작심 3일, 노력하고 돈오(깨닫고)하고 점수(노력)하고 돈오하고 점수하고 깨닫고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가면 되는 거다. 절대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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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 때 나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공부도 안 했다. 대학에 안 가고 시골 가 있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등록금 마련해놓고 우시는 것 보고 충격 받아서 나왔다고 했잖은가. 그 재수할 때는 집에 1년간 안 들어갔다. 그동안엔 친구 다 끊고 그냥 1인 1실 고시원에 처박혀서 공부만 했다. 모의고사도 1년간 한 번도 안 쳤다. 자가 진단 해보면 안다. 단원마다 문제 평가가 있는데 다 풀리면 되는 거다. 그렇게 혼자 독하게 했다.
점심 저녁에는 만둣국만 먹었다. 소화가 잘되니까. 만둣국만 먹으며 미친 듯이 공부했더니 수학을 제외하곤 모든 과목에서 거의 100점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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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영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존경한다. 내가 못하는 일을 잘하시는 분들이니까. 그게 구멍가게든 작은 식당이든 쉽지가 않다. 몇몇 사람들은 늘 적대적으로 경영자와 근로자의 갈등을 부추기려고 한다.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은 경영 못 한다. 근로자가 없으면 경영자가 있을 수 없고 경영자가 없으면 근로자가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니까. 이렇게 서로 존중하고 챙기는 문화가 필요한데, 이 사회에는 꼭 갈등을 부추기는 조직이나 단체들이 있다. 어쨌든 좋은 문화 만들면서, 열심히 경영하시는 분들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실제로 망해보니 잘 알겠다.
수업료를 너무 비싸게 냈다. 한 10년은 또 다 날아갔으니까. 월세 생활에 신용불량 생활에 아주 바닥 생활을 또 했지 않은가? 그러다가 다행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학생들 수강료 낸 거 아깝지 않도록 항상 몇 배를 내가 돌려주겠다 생각하면서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수업한다. 내 성격하고도 딱 맞아떨어진다. 퍼주는 자. 많이 주면 이걸 무조건 학생들이 알아준다. 나한테 딴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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