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의 장례는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전용 빈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간소하게 예식을 치렀다. 참석한 사람은 숙분과 기연, 미리내의 직장 상사와 동료 둘이 전부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숙분은 사십구재가 되는 날까지 매일 302호의 현관문을 열어두고 향을 피웠다. 미리내의 유품은 상자에 담아 4층에 올려놓았다. 혹시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십구재 날에는 302호 안방에 조촐한 제사상을 마련했다. 그날은 단심도 일찍 가게를 접고 따로 부쳐두었던 전을 싸 들고 숙분을 만나러 갔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자 빌라의 세입자들과 주변 이웃 몇이 302호를 찾아왔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제삿밥을 먹고 돌아갔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서야 숙분은 벽지와 장판을 새로 갈았다. 처음에는 단심이 들어올 계획으로 집을 내놓지 않았는데, 단심이 살던 집과 20년 가까이 해오던 백반집도 정리하기로 하면서 이사가 계속 미뤄졌다. 숙분과 단심은 상의 끝에 일단 302호에 세를 놓기로 했다. 그해 가을, 302호로 나경이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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