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성 연대란, 여성이 여성스러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여성스러운 일에 종사하는 여성을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여성이든 자신의 성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성 편견을 거스르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이 시대에 뜨개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항이다. 페넬로페 헤밍웨이도 한때 페미니스트 친구들 앞에서는 뜨개를 꺼렸다고 한다. 그러나 뜨개의 역사와 여성성의 관계를 연구한 끝에, 여성스러운 취미라 알려진 뜨개가 사실은 페미니즘적인 취미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의 뜨개는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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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이 뜨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고담시를 장악한 뒤 조너선 크레인이 인민재판을 빙자해 부패한 사업가를 추방할 때, 베인이 군중 속에서 말없이 뜨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도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걸 발견한 사람은 허핑턴포스트 기자인 모양인데, 기자의 문의에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기자의 눈썰미가 예리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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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영화에는 소설 속 설정과 대사가 오마주처럼 등장하는데, 베인 캐릭터는 『두 도시 이야기』의 주요 악당인 드파르주 부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드파르주 부인은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파리에서 혁명의 완성을 위해 살생부를 만든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늘 뜨개를 한다.
드파르주 부인의 뜨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살생부 명단이다. 그는 살생부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뜨개 무늬에 암호 패턴을 넣어 명단을 기록했다. (살생부 명단을 암호화한 도안이라니!) 또 하나는 잔혹한 행위를 감행할 때의 냉정함을 상징하는 장치로서의 뜨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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