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뜨려던 건 아니었는데’ 1편의 주인공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를 위해 뜬 돌고래 스웨터였다. 표현하고 싶었던 건 푸른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돌고래였건만, 돌고래와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부분에서 장력 조절에 실패해 쭈글쭈글한 스웨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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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뒤 역자 후기에서 작품을 이렇게 요약했다. "표적을 벗어난 화살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 김영하의 말을 빌려 나는 망한 뜨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예상을 벗어난 바늘이 끝내 빚어낸 이야기라고.




* 「표적을 벗어난 화살이 끝내 명중한 곳에 대하여」, 문학동네, 2009, 242쪽.

같은 도구와 방법으로 같은 일을 수십만 번 한다는 게 어떤 일일지 상상해보자.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야겠기에, 그 지루함을 어떻게든 극복해야겠기에 찾아낸 방법이 문어발인 것이다. 그러니까 문어발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지루함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마라토너는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기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두고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페이스를 유지한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다면 42.195킬로미터는 훨씬 고된 길이 될 것이다. 뜨개인은 문어발이라는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으로 더 많은 것을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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