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이어리 - 행복을 느끼는 일상의 속도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이미화 지음 / 알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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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하고 설레는 분홍빛으로 베를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정보에 무지한 내게 베를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장벽이었다. 그리고 독일 그 뿐이었다. 작가에게 베를린의 이미지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진 회색도시였지만 그 낯선 곳에서 생활한 기간만큼 베를린의 매력에 흠뻑 취한 것처럼 보였다. 사계절로 설명되는 베를린 생활의 시작은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순탄치 않았지만 소중한 인연을 만났고 베를린이 가진 느림은 사색을 가져다 주었다. 

도시는 잿빛이었지만 내 마음은 맑아지더라. TV는 못 알아듣고, 살 것도, 광고도 없으니 오직 글 쓰고 사색을 할 수밖에 없었어. 소비 강박관념에서 해방되니 자유로워지더라고. 그냥 그대로가 너무 평온했어. 처음엔 지루했지만, 곧 마음이 충만해졌어.

  28에 맞이한 낯선 땅, 돈과 경력 결혼도 뒤로하고 훌쩍 떠나버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28살의 여자에게 충고하는 세상의 레파토리는 너무 뻔하다. 충동적이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혀를 찬다.  하지만 나를 내린 뿌리 깊은 땅에서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 자체로 용기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새로운 곳에서의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 넓은 사람, 배움의 호기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아닐까? 

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비극이 불과 70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 아픔이 피부로 느껴지기보다는 단어 그대로 '추모' 정도의 의미로만 다가왔었다. 하지만 직접 걸어 들어가서 본 홀로코스트의 깊이는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단순히 사건 밖에서 추모하는 마음만으로는 알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베를린 속 일상생활을 통해 알게 된 깨알 정보도 담겨있기 때문에 베를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형광펜을 그으며 자료로 사용해도 좋을만하다. 책을 읽는 시간동안 싱그러운 베를린의 사진과 작가의 성향이 묻어나오는 글을 보며 나른함을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베를린의 시간과 함께하며 그늘진 나무아래 낮잠을 청하는 기분이 들기도하고 변덕스런 날씨에 울상을 짓다가도 쉬이 지지 않는 벚꽃길을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기여행의 장점은 어쩌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짐을 덜어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쓸데없는 집착일 수도, 각자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일 수도 있지만 짐을 덜어내면서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장기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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