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지 45억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1. 책과의 접견
 
 정말 간만에 좋은 평점 5점을 줄만한 책을 만났다! 행복!! 구병모작가의 독특함과 섬세함은 <빨간구두당>, <아가미>에서 익히 알았다. 이번에 <한 스푼의 시간>을 완전 몰입하며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여성작가였다. 여성작가라니!! 이름만 보고서는 남성작가인줄 알았는데, 깨달음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책을 훑어보니 이런 멋진 작가가 한국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난 불과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그녀의 소설에 풍덩 빠져버렸다.


2. 책의 구성 및 등장인물, 줄거리
 
  비행기사고로 아들을 잃고, 부인과 사별한 명정은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지낸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아들 이름으로 큰 택배 하나가 배달된다. 옆집 여대생 세주와 함께 개봉한 박스 안에서는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이 명정의 눈에 들어온다. 꼭 아들이 보내 준 마지막 선물같아서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소년로봇에 '은결'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은결'과 '명정' 그리고 주변 인물들 '세주', '준교', '시호'의 이야기들이 얼키설키 뒤엉켜서 각별하고 애틋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약 10년이란 시간동안 명정의 세탁소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매체에서 숱하게 등장한 인간로봇의 식상함과는 거리가 있다. 늙어가는 인간과 부식되는 로봇의 조화로움은 상상 이상으로 나를 설레게 했고 읽어내려가는 눈길을 단숨에 잡아두었다. 착한 사람들의 애쓰는 이야기이며 의아한 소재를 사용하여 삶의 근원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한 스푼의 시간>은 너무도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따뜻함과 애잔한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3. 지독히 착한 사람들의 삶,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순간 가난함은 착함을, 착함은 가난함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착하니까 당하고 살지. 이 말이 소설 속 장면장면에서 떠오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가난하기에 부당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오롯이 가난함에서 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굴레는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전형적으로 '시호'의 가정이 그렇다. 그러나 다행이도 현실과는 지극히 다르게 이 소설에서는 희망을 엿본다. 난 이런 류의 소설이 좋다. 사실 영화건 책이건 씁쓸한 상황의 전개와 결말이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희망을 슬쩍 비춰주는 소설은 현재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렇다고 부정적 배경을 모두 덮고 '좋은게 좋은거지'로 끝맺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겪는 상황들로 충분한 문제의식을 심어준다. 지독히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머리를 조아리며 이 악물고 살지 않는 세상. 가난함이 가져다 주는 굴레에 속해있지 않은 세상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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