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종이달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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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좀 알아차려줘. 

볼락 접시에 랩을 씌웠다.

안쪽이 부옇게 흐려지며 물방울이 무수히 생겼다.

리카는 그걸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좀 알아차려줘.

작은 벌레가 무수히 귓가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이명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1. 책과의 접견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팟캐스트에서 소개된 책이었다. 이쁜 이름의 책이라고 생각해 기억해 두었다.

다작을 발표했지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가쿠다 미쓰요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었다. 

다음에 읽고 싶은 그녀의 책 : 영화로도 개봉한 <8일째 매미>와 한국에서 많이 읽힌 <공중정원>

크레마 카르타의 전자도서관 어플을 애용하던 중 그동안 잊고 지냈던 <종이달>을 발견했다.

운명인지 아직 한 권이 대출되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딴짓을 해가며 책을 읽는 내가, 단 3일간 단숨에 읽어내려 갈 정도로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었다.

너무도 고루한 주제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 진부한 주제를 꽤 깊이 고심할 정도로 책은 세련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도 개봉되었던 것을 알게되었는데, 영화도 훌륭하다고하니 한 번 꼭 봐야겠다. 




2. 등장인물 및 줄거리


<종이달>은 등장인물의 소개로 시작된다. 일본만화책처럼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특징들을 먼저 알 수 있다.

주요한 등장인물은 아래와 같이 7명으로 소개된다. 등장인물의 여성들은 쇼핑중독이 있거나 돈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 과하게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지 않다는 것, 돈에 자신의 감정을 휘둘리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대하는 태도를 넘어서서, 물질로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고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을 덮고나서도 한동안 씁쓸함을 가져다주었다.  


우메자와 리카

  41세 주부. 유복한 부모 밑에서 성장해 평범한 가정을 꾸려왔으나 점점 삶에 회의를 느끼고,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와카바 은행에서 1억 엔을 횡령하고 도주 중

오카자키 유코

  우메자와 리카의 여고 시절 친구. 갓 쓰기 시작한 비누같은 청초함을 지닌, 정의로운 소녀로 리카를 기억한다. 과도한 근검절약파.

야마다 가즈키

  우메자와 리카의 전 남자친구. 짧은 교제였지만, 욕심없고 자기만의 고상한 품위를 지닌 여성으로 리카를 기억한다. 현재 낭비벽이 심한 아내와 갈등 중.

주조 아키

  우메자와 리카가 전업주부 시절에 다녔던 요리교실 친구. 계산적이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 리카를 기억한다. 쇼핑중독으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현재 독립 중.

히라바야시 고타

  우메자와 리카의 애인. 와카바 은행에서 리카가 담당하는 VIP 고객의 손자. 가난한 고학생으로 자신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조부를 증오한다.

우메자와 마사후미

  리카의 남편.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아내와의 관계에 큰 열정이 없다.

야마다 마키코

  야마다 가즈키의 아내. 부유했던 친정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생활수준을 비관하다 쇼핑중독에 빠져 큰 빚을 지게 된다




3. 소설의 특성


소설은 결말부터 시작된다. 은행에서 근무했던 리카의 1억 엔 횡령 그리고 타국에서 숨어지내는 리카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리카의 어린시절부터 횡령을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서술된다.

더욱 재미를 더하는 것은, 새로운 등장인물들의 사이드 이야기이다.

리카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거 동창생, 과거 연인 그리고 과거 요리교실에서 만났던 여자)이 매체에서 리카의 횡령 소식을 듣고

저마다 리카를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이 방식이 참으로 재미있다.

화자는 리카만이 아니라, 과거 동창생이 되었다가 과거 연인이 되었다가 과거 요리교실에서 만났던 여자가 되기도한다.

화자가 변해서 내용이 얽힐만도 한데, 화자가 바뀔 때마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밝히고 시작하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각 사이드의 이야기가 리카의 이야기만큼 재미있으며, 각각의 화자들이 가진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3. 넌 무얼 샀니? 무얼 손에 넣으려고 한거니?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옛말이 읽는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처음 고객의 돈에 손을 댄 것은 화장품을 사러 갔다가 돈이 조금 부족해서였다.

리카는 고객의 돈을 일부 빼서 화장품을 사는데 사용했으며, 자신의 돈을 출금하여 채워넣는다.

그리고 이후 죄책감 없이 나중에 갚으면 된다는 희미한 다짐으로 점점 많은 고객의 돈을 빼돌린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떠오른다. 아주 사소한 균열의 시작은 어떤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리카가 본격적으로 횡령을 시작한 것은 남자친구인 고타에 의해서였다.

고타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그녀는 고객의 돈을 횡령하여 빚을 갚을 수 있도록 한다.

또 그녀는 한낱 주부로 보이지 않기 위해 12살 어린 고타와 늘 값비싼 데이트를 즐긴다.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고급 레스토랑, 백화점 쇼핑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객의 돈을 가로챈다.

소설의 마지막 쯤, 고타는 리카에게 자신은 한 번도 뭘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말을 한다.

맞다. 스위트룸도 고급 레스토랑도, 값비싼 옷과 멘션, 차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것들을 고타는 한 번도 원한적이 없었다. 

모두 리카가 마음대로 주었던 것이었다.


그건 리카가 그렇게 값비싼 것을 내보일수록 그를 잡을 수 있다고 느꼈던 그녀의 내면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실제를 은폐하고 거짓이 사실이 되었던 현재를 살았던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리카가 한심하다기보다는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다정하지만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에게서 어떤 정서적 의지도 느끼지 못했던 여자가

12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육체적 관계를 통해 느낀 만능감은 그 결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리카는 그 만능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은채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뿐더러 모든 것을 잃었지만

1. "낯선 지폐는 어느 나라 돈이나 처음에는 장난감 같죠. 그러다 점점 돈처럼 보이기 시작해서, 10바트라도 없어지면 난리가 나죠, 배낭여행에서는." 하야마가 말했다. "그야 돈이니까요." 리카는 웃으며 말하고 일어섰다.

2. 돈을 쓰려면 마사후미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걸 굳이 지적하는 듯한 기분이 순간 들었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그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그 어느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카는 자신도 제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요컨대 그 온천 여행은 사죄가 아니라 확인이다. 리카가 선술집에서 한턱 낸 다음에 굳이 시내 고급 초밥집에 데리고 간 것과 같다. 그는 리카에게 깨닫게 하고 싶은 것이다. 업무 내용도, 경제력도, 자기가 리카보다 훨씬 위라는 것을.

3. 남편의 급여를 파악하고, 그걸로 현명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생활을 꿈꾸었다. 고급 가게의 잔골이 되기보다 싸고 맛있는 집을 발견하고 웃고 싶었다. 마사후미가 말하는대로 "싸게 먹히는" 기쁨이야말로, 리카가 생활에서 추구하던 것이었다.

4. 돈이라는 것은 많은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 있으면 그것은 1만 엔이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5.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얼마나 썼지? 빌려준 돈, 물건을 산 돈, 먹은 돈, 교통비, 멘션 우러세, 차 구입비, 유지비, 주식 자금, 그만큼 돈을 받아놓고. 오늘 만나고 싶다는 단 한 번의 부탁도 거절하는 거지. 리카는 처음으로 고타에게 분노를 느꼈다. 화를 내면서도 웃고 싶어진다. 실제로 웃었다. 얼마나 썼는지 자신도 모른다. 3천만인지 그 이상인지. 그만한 금액으로도 오늘 만날 시간을 살 수 없었던가. 무선 전화기를 꽉 쥐고 있는 손바닥이 땀으로 촉촉하게 젖었다.

6. 넌 무얼 샀니? 무얼 손에 넣으려고 한거니? 그 물음은 어느새 유코 자신에게 향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절약을 한 거지. 무엇 때문에 저축하려고 한 거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

7.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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