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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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의 「자본론」을 공부하다가 두통으로 지끈거렸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이 났지만,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으로 인한 잉여가치로 부를 굴린다는 개념이 뇌리에 남았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본'이 굴러가는 방식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윤창출이 유일한 목적이자 최대 목표인 기업들, 하나부터 열까지 상품화된 세상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노동력 제공이 불가피한 노동자, 이에 대한 부작용이 끝없이 열거되고 있지만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자본이란 톱니바퀴는 멈출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세상을 살고 있기에 이를 공부하고 이용해야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주 오랜만에 「자본론」을 주제로 한 책을 읽게 되었다. 사이토 고헤이의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은 칼 맑스의 자본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견을 제시한다. 저자는 머리 싸매며 읽었던 「자본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명쾌한 해설을 덧붙여 '자본주의'가 아닌 21세기에 알맞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도록 한다. 어려울 것 같아 살짝 겁먹고 시작했던 독서였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사유의 지평을 넓혀 준 흥미로운 내용들로 몰입하여 읽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노예는 단지 외부의 두려움에 의해 노동하지, 자신의 생활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자유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한다. 자유로운 자기결정, 즉 자유에 대한 의식과 그에 따른 책임의 감정은 자유노동자를 노예보다 훨씬 더 나은 노동자로 만든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자발적 책임감, 향상심, 주체성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다고 마르크스는 경고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와 보상을 제공한다는 '로또'와 같은 희박한 희망을 선사한다. 하지만 실상 노동자들은 '자유'를 앞세운 자본에 자발적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끝없이 가치 증식하는 '자본가'와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애초에 양립할 수 없기에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하고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구매한다. 그 역시 자본가에게 득이 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자급자족했던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상품화'되어 화폐를 통해 거래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지는 속성이다. 생애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상품화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민영화', '사유화'도 같은 이치이다. 삶의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가 필요하니, 우리는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제공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받은 대가는 다시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된다. 또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을 제공받아 잉여가치를 얻는다. 그리고 노동자의 구매로 또 다시 이윤을 창출한다.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체제가 있었다는 것에 안주해서 포스트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소련의 붕괴를 맞이했고, 그 뒤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상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여태까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상을 그려 내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는 나빠!'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방식과 이면의 어두운 현실(불공정성, 양극화, 착취 등)을 직면해야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자본의 가치로만 굴러간다면 곪다가 터져버릴 것이다. 이는 벌써 여러 사회문제(노동, 자연파괴 및 이상기후 등)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사회구조'의 문제가 있으니 이를 타개할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칼 맑스의 자본론의 한계를 넘어선 상상력은 '21세기 코뮤니즘'으로 설명된다. 저자는 맑스의 미출간 원고들 및 숨겨져 있는 문제의식들을 찾아내 이를 연구했다. 환경과 사회적 기반이 보호되고 사람들이 안전하고 공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유토피아적 상상일 수 있지만 더 나은 사회로 내딛는 소중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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