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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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을까? 독서를 끝마친 뒤 글을 쓰기에 앞서 골똘히 고민했다. 주요 등장인물은 셋 뿐이지만 그들 각자에게 처해진 혹은 선택한 상황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줄거리로 요약하자면 K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K의 죽음으로 끝이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인물들이 겪는 심정의 변화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죽음은, 이별은, 소멸은 간단히 추억으로 교환된다. 갈등과 분노는 안타까움과 위무의 기도에 참윤된다. 소멸한 자의 슬픔과 번뇌에 목소리가 주어진다. 죽은 자가 죽기 전에 쌓은 악덕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가 부여되고, 그의 죄는 그와 함께 소멸한다. 남은 자들의 고통은 재갈을 물고 신음한다. 책임을 묻거나 싸울 수 없고, 소멸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을 귀중한 보물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산 자들의 세계는, 그렇게 산자들의 평화를 지속한다.

「K의 장례」를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노년 작가의 죽음이 가져온 두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노년 작가의 의도는 관찰되지 않는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딸이 했던 말처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나르시즘 속에서 죽어간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소멸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죽음은 슬픔과 이별을 동반한다. 허나 어떤 죽음에는 분노와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죽은 이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느냐에 따라 그 죽음에는 다른 감정들이 깃든다. 죽음이, 이별이, 소멸이 결국 산 자들의 몫이란 사실은 언제나 진실이며 때에 따라 그 고통은 평생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운다.

희정이 K와의 관계에 대해 체념할수록 그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누적되어가는 의존적 감정과 기대를 더 자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존재감이 세상에 드러날수록 커지는 고립감을 이해받고자 했다. 자발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고독을 스스로의 자유로 선택한 이에게 요구할 수 없는 이해였다.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면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사건을 자연스레 잊는 다면, 사건이 나를 지배할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라 해도 그것을 기억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기억과 내 인생 안에서 동거하는 중이다.

K와 희정의 관계는 K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5년간 이어져온 둘의 거래는 물리적 시간과는 상관없이 서로의 욕망에 의해 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K의 딸, 장재인 역시 그의 아버지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손승미란 이름으로 바꿔 생활했고 K의 진정한 소멸을 통해 자유를 찾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록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에게 그 그림자와 함께 사는 법을 깨우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그 속박을 이해하는 과정이 곧 해방이란 사실을 말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자유를 보았다. 지우고 싶을 수록 얽매여 오는 유무형의 형태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해답이 결국은 '나'에게 있지 않을까.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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