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을유세계문학전집 118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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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이전에도 두 번 정도 희곡을 접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희곡'은 내게 낯선 장르였고 기존에 읽던 소설, 시 등과 비교하여 문체가 달라 속도를 내기가 어려워 포기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고전주의 희극은 당대의 역사, 문화, 언어에 무지하다면 읽는 이에게 극강의 혼돈을 선물하기에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메데이아>는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서사가 쉽게 이해되었고 흥미진진하여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희곡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거야?'란 생각을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쉼 없이 종이를 넘겼다. 쉽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친절한 번역, 친절한 계보도, 친절한 각주, 친절한 해설까지 을유문화사의 친절한 배려와 책의 높은 퀄리티에 매우 감격했다. '왜 지금껏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읽지 않은거야!.' 라며 질타하는 나를 발견했다.

세 편의 이야기 모두 비극적이지만 각각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를 아우르는 깊은 성찰을 전해준다. 말 그대로 '예나 지금에나'란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메데이아」편을 읽으며 여러 생각에 젖게 되었다. 남편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메데이아'는 망명당한 코린토스에서 공주와 바람이 난 남편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여성의 지위나 역할을 되새기며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메데이아는 막장 드라마의 악역으로 등장할 법하지만 그녀가 겪어 온 과정을 알기에 극 요소인 코러스의 일원으로서 그녀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메데이아>를 읽는 내내 뮤지컬을 글자로 관람하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력이 발동되었고 머릿 속에서는 쉼 없이 배우들이 등장해 극을 꾸며나갔다. 문장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애초에 희곡이 연기를 위해 쓰인 문학작품, 즉 각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연극보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내게는 웅장한 뮤지컬 무대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익숙한 신들이 등장해 반가웠다.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몇몇 신들의 등장으로 내적 친밀감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봄이 오는 3월, 좋은 작품을 만나 한 없이 빠져들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이한 풍습과 관습 안에 도착해서는 집에서 배우지도 않았지만,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그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지낼지, 예언자가 되어야 한답니다. 우리가 이런 엄청난 수고를 해내고 남편이 결혼의 멍에를 마다하지 않고 함께 살아 주면 우리의 삶은 선망의 대상이죠. 그렇지 않다면 죽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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