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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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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책을 꽤 많이 읽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넛지"가 벌써 7년 전에 나온 책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했지만, 그 책의 공저자인 캐스 선스타인이 쓴 최신작 "와이저"도 작년에 읽어보았고, 또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부터 로버트 실러와 조지 애컬로프의 공저 "야성적 충동", 로버트 실러의 "비이성적 과열",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까지 관련 책들을 다 읽어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전혀 낯설지 않다. 사실 이 책은 저자인 리처드 탈러가 자신이 어떻게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고 일구어왔는지에 대한 여정이 담긴 책이다. 저자 스스로 자서전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데, 자신의 학문 분야에 국한시킨다면 자서전과도 다름없는 책이 되겠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넛지"가 가장 많이 팔린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4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 놀랄만한 사실 한 가지가 언급되는데,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이름을 출판사에서 "넛지"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그 출판사는 결국 "넛지"의 출판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자신의 친구이자 스승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트버스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이 책은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논의되었던 다양한 논점들이 대부분 다 등장한다.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들보다 이미 자기 자산의 일부가 된 것들을 더욱 가치 있게 평가하는 소유효과,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그것이 필연적인 결론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과가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후판단 편향, 이익이 가져다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주는 슬픔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손실 회피 경향 등이 그렇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자들의 다양한 이론들도 많이 등장한다. 소비는 이후 시점보다 지금 더 가치가 있다는 기본 개념이 깔린 할인된 효용 모형이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와 같은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한 존재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 가설부터 거래비용이 없는 환경에서 자원은 언젠가는 가장 가치 있게 활동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코즈 정리와 어떤 투자자라도 이용 가능한 정보를 기초로 한 거래에 의해 초과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가설까지 등장한다.

 

결국 이 책에서는 기존 경제학의 모형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현실 속에서는 그렇게 동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시험을 낼 때 만점을 100점에서 137점으로 높여 평균 점수가 90점대로 유지되게 한 이유부터 시작해 가격인상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객들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제안했던 그릭픽 스키장의 성공 사례, 사람들이 부당한 제안을 싫어하고 부당한 제안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경제적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려 든다는 것을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 등을 통해 확인 했던 것, 주식 투자 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더 자주 들여다볼수록 그만큼 많은 손실을 확인하게 되어 위험을 덜 무릅쓰려 한다는 것, 프로 선수 드래프트 시장이 효율적인 시장 가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서 한 명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다른 여러 개의 선순위 지명권들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란 것들을 증명해주고 있다. 딜 오어 노딜 같은 게임의 사례를 통해 내기에서 돈을 따서 그것으로 게임할 때와 돈을 잃었지만 본전을 만회할 기회가 남았을 때 사람들이 적극적인 위험을 추구한다는 것도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금융 분야에서 기존 이론과 행동경제학간의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던 머튼 밀러와의 논쟁 이야기, 그리고 그 머튼 밀러와 효율적 시장 가설의 대부 유진 파머가 있는 시카고 대학에 자신이 임용되었을 때의 상황, 시카고 대학에서 법 경제학의 개척자인 포스너와 맞짱 뜬 사연, 소유효과를 여실히 확인시켜주며 실제 상황에서 경제학자들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시카고 대학 교수들의 사무실 고르기 대소동도 재미있는 일화로 소개되고 있다. 그 밖에도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동등한 협력자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그들이 논문을 낼 때마다 매번 이름 순서를 바꾸었다는 것, 마시멜로 실험의 다양한 버전들이 있고, 심지어 동물을 대상으로도 실험했다는 것,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모든 것들을 용기에 담아 일정 시간동안 잠기게 해서 손을 못 대게 하는 키친세이프라는 제품이 있다는 것, 가치주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 옹호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덜 위험하다는 것, 사람이 무엇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이를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마무리에서 행동경제학을 거시경제학과 개발경제학에 접목시키는 게 향후 과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행동경제학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가설적인 모형의 비현실성에 대해 경제학의 대가들에게 경고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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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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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요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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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이벤트에 맞춰 적절한 때에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된 듯 싶다. 인공지능학자이자 30여 년 동안 스타트업 기업들을 운영해왔던 저자는 자신이 졸업한 스탠퍼드 대학의 인공지능 연구소에 다시 돌아와 인공지능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공지능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의 파급효과와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강연하고 저술하고 있다는데, 이 책 역시 기술보다는 그런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로봇이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주어진 일을 더 빨리, 정확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해낸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결국 그에 맞게 경제 체제와 규제 정책을 적절히 조율하지 못하면 장기간 사회적인 대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인공 지능의 발전이 높은 실업률과 소득 불균형의 심화라는 변화를 부채질하고 그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도전적인 문제를 불러올지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일단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우선 컴퓨터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로봇 공학, 지각, 기계학습 분야가 발전해온 상황들을 잠깐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계학습, 신경망, 빅데이터, 인지체계, 유전알고리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을 저자는 인조지능이라 지칭하고 있다. 또한 프로그램 된 기능만 수행할 수 있다는 한계를 정해버린 IBM의 초창기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스탠퍼드 대학원 시절 자신의 친구였다는 데이브 쇼를 소개해주면서 그가 컴퓨터로 주식 초단타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는 것과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디지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로켓퓨얼의 사례, 그리고 제프 베조스가 세운 아마존의 자동 가격조절 시스템 등을 이야기하며 인공지능의 단면들을 차례차례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금융시스템과 소비자 행동에 영향을 끼칠 기회를 놓고 서로 겨룰 때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오로지 단일 목표만을 성취하도록 설계되었기에 생기는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이 온라인 티켓들을 싹쓸이 하듯이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자원을 놓고 인간들과 경쟁할 때 공정성이라는 인간의 직관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도덕적으로 적절한 측면을 감지할 능력이 충분하고 행동에 대한 선택권이 있으므로 인조지능 역시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도덕규범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에 이것을 인조지능에 프로그래밍 해 넣을 때 까지는 멀었다는 것이다. 또한 옛날 노예제도가 있었을 때 그 노예와 로봇의 신분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쪽 다 법적인 재산이면서 스스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조지능을 다룰 때 그 옛날 노예를 다루던 법률이 적용될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오늘날 기업이 하는 일과 인조지능이 워낙 기능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아마 인조지능에게 법인격이 부여되고 계약권과 재산권이 부여되리라 전망한다. 그런데 만일 인조 지능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면 다른 인조 지능을 소유할 수도 있고 한 로봇이 로봇 한 무리를 사들여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한데, 결국 이런 식으로 인조지능이 우리의 경제를 야금야금 먹게 되면 인간이 오히려 기계에 예속될 거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려하고 또 주장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인조지능의 세계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데 있다. 일단 인조 노동자들이 대부분의 숙련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교육받은 사람들의 숙련된 일과 사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많은 신기술들은 맨 처음에 도입될 때는 일반 노동자들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일을 수행해 나가게 되지만 혁신이 거듭되면 신기술이 단순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종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앞으로 인조지능이 대체할 직업으로 운전기사, 농장 근로자, 물류창고 근로자, 성매매업 종사자, 변호사, 의사, 민간항공기 조종사, 교사와 교수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자동화되는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렇게 발전된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고 그렇게 새로 창출되는 부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불공평하게 많이 배분되게 되어 경제적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두 가지 큰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미래의 노동을 담보로 내놓는 새로운 금융제도인 직업 대출이고, 나머지 하나는 정부에서 인증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기업의 소유구조를 평가하는 공익지수라는 아이디어이다. 일단 오늘날 실업 문제는 놀랍게도 일자리 부족 때문보다는 일자리가 요구하는 기술의 진보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기술의 발전 속도가 노동자들이 적응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므로 교육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필요한 인재를 직접 양성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직업을 가지게 되면 교육을 받을 때 들어간 비용을 노동자가 갚아 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 이익을 얼마나 많은 수의 주주들이 나누어 갖는지를 기준으로 법인세를 매기면 더 많은 대중들이 자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다면서 그 하나의 기준점으로 공익지수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공익 활동을 신청하면 아직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다량의 주식을 수여 받으며 신청한 활동을 실행해 나가면서 주식의 소유권을 순차적으로 넘겨받는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특히 몇 가지 직관과 통찰을 제시해준다. 일단 말을 하는 방식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말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언어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인자동차라는 단어보다는 개별적인 대중교통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기술이 일반화되면 굳이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필요하면 오늘날 택시를 잡듯이 자동차를 부르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이 한 가지 혁신이 인간의 생활 방식을 급격히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테면 주차장으로 낭비되었던 소중한 땅들이 새로운 목적에 활용될 것이고, 교통체증이 없고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기 때문에 도시 주변의 부동산 가격은 낮아지고 더 먼 지역은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조지능이 우리와 대결하게 된다면 군사적 대결이 아닌 경제적 대결이 될 것이고, 인조지능이 인간을 멸종시키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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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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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달러화와 위안화, 엔화에 유로화도 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환차익을 어떻게 낼 수 있는지 그 오묘한 환율의 세계는 어려운거 같다. 이 책은 그 환율의 기본부터 알려주고 있는데, 향후 기축통화의 변경 여부에 따라 환율의 미래도 예측해주고 있다.












요새 인터넷 전문은행 건으로 금융쪽일을 보면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속내를 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제 금융시장 개혁을 앞두고 무엇이 문제이고 왜 그래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숙제로 감사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과 글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이 넘친다는데, 이 책은 성인용 감사일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과연 내 마음이 감사로 차고 넘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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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1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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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노베이터 -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월터 아이작슨 지음, 정영목.신지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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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쳐 들어 서문을 읽던 중에 저자가 이 책을 10여 년 전부터 준비했었고 2009년 초에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업을 마친 후 다시 작업해 이제서야 내놓았다는 언급을 보고, 이 책에 앞서 먼저 예전에 간간히 읽다 말았던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완독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 책도 디지털 시대에 가장 의미 있는 약진과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같은 저자의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겹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800여 페이지가 넘는 잡스의 전기 내용에 비해 이 책에서는 잡스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좀 더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어쨌든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데다가 IT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낯익었다. 사실 전자공학을 공부하면서 내 영웅으로 생각하던 클로드 섀넌 이야기와 잭 킬비와 고든 무어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이 책을 다보고 예전에 구독하던 IEEE 잡지들을 다시 꺼내보기도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이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 분야의 찬란한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아예 책 앞쪽에 그와 관련된 기나긴 연표가 붙어있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일 처음 언급되는 사람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인 에이다 바이런, 즉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20세기 들어와 현대적인 컴퓨터가 만들어지기 100여 년 전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 당시 수학자인 찰스 베비지와 에이다의 만남을 통해 베비지가 만든 차분기관이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 베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주석을 써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에이다는 컴퓨터 혁명의 수호 성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불리게 된다고 한다. 배비지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주어진 프로그래밍 명령에 기초하여 다양한 연산을 수행하는 범용 컴퓨터였는데, 여기에 더하여 에이다는 그 이후 100년 뒤 컴퓨터가 탄생했을 때 보여주었던 개념들을 고안하고 정리했다는 것이다. 즉, 미리 설정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고 변화 가능한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재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개념, 숫자 이외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저장, 조작, 처리, 활용할 수 있는 개념, 서브루틴이나 재귀루프 같은 알고리즘,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란거리 중에 하나인 해석기관은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라 한다.


이어서 천공카드를 완벽하게 이용하도록 만들었고 나중에 IBM이 되는 회사의 모체를 만든 허먼 홀리러스, 세계 최초 아날로그 전기기계식 컴퓨터를 만든 배니버 부시, 컴퓨터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앨런 튜링, 릴레이 회로를 이용하여 복잡한 연산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클로드 섀넌, 기계적 계산기를 프로토타이핑한 콘라트 추제 등 컴퓨터 하드웨어의 초기 발전사에 개입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최초 범용 컴퓨터 발명의 공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 즉, 서로 공통점이 없는 실천가와 이론가가 한데 모여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며 협업을 통해 이러한 혁신의 역사가 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토론 상대의 역할을 해주거나 이론적으로 또는 공학적으로 까다로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던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아타나소프가 만든 컴퓨터가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가진 팀과 협업할 기회가 있었던 존 모클리와 존 프레스퍼 에커트가 만든 에니악(ENIAC)을 최초의 전자식 범용 컴퓨터로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설명에 이어 그 하드웨어 위에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초기 역사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하드웨어 설계는 모두 남성 몫이었고 소프트웨어는 여성이 담당했기 때문에 이 역사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프로그래밍의 선구자라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는 예일대 출신의 여성 수학 박사였고, 또한 최초의 컴퓨터를 돌아가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6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존 모클리와 결혼하는 여성도 있으며, 그 여성은 나중에 코볼과 포트란 개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역시 창의적인 도약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개념과 기술과 엔지니어링 방식이 동시에 무르익었을 때 발생하는 진화적 절차의 결과라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폰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식 아키텍처는 모클리가 연구하던 것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공을 앗아간 것인데, 이러한 폰 노이만의 강점은 바로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고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집하면서 창의적 협업과정의 감독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쪽 이야기를 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하드웨어에 대한 특허권이 소프트웨어보다 획득하기 쉬웠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세 번째로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쪽 역사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도 역시 양자 현상에 대한 직관력을 보유한 이론가들과 불순물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규소를 구워낼 줄 아는 재료 과학자들, 솜씨 좋은 실험가들과 공업 화학자, 제조 전문가와 천재적인 만물 수리공들이 한데 모여서야 이러한 혁신적인 발명품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대표적인 연구소가 바로 벨 연구소라 지적한다. 거기서 창의적인 천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응용 엔지니어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개념을 구체적인 장치로 구현하게 되면 테크니션과 기업가들로 이루어진 협업 팀들이 이런 발명품을 실용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트랜지스터 발명과 관련해 실제로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의 2인조가 해냈지만 그들을 시기했던 상사 쇼클리에 대한 혹평이 이어진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윌리엄 쇼클리가 비밀스럽고 융통성 없고 권위주의적이며 피해망상적인 면모를 나타내면서 나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해 이른바 8인의 배신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 간 집적회로 발명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 인텔의 탄생 배경과 기업문화는 개인적으로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인텔에 사람만 보고 투자했던 벤처 자본가 아서 록의 이야기, 즉, 아이디어가 아닌 사람을 보라는 투자원칙과 함께 HP에서 유래했다는 금요일 맥주파티, 탄력 근무제, 스톡옵션과 같은 제도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을 비롯해 사장을 비롯해 전 직원이 동일한 칸막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TV등 매체를 방영되었던 내용들이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 둘 다 권위와 과시를 싫어했기에 그 누구도 결단력 있는 관리자가 되려 하지 않아 앤디 그로브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어서 컴퓨터가 사람들이 가지고 놀며 상호작용하는 물건이 되어야 한다면서 등장하게 된 컴퓨터 비디오 게임에 대한 역사가 서술된다. MIT 학생들의 동호회 TRMC의 해커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창의적이면서도 탄탄한 공학적 배경을 가졌으며 사업과 소비자 요구사항에 정통한 기업가 놀런 부쉬넬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혁신에는 적어도 세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위대한 아이디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공학적 재능, 그리고 이를 성공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낼 사업적 기량 및 거래를 성사시킬 배짱이란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터넷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을 창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리클라이더를 거론하면서 탈중심적 네트워크와 인간-기계상호작용 인터페이스에 대한 공헌과 더불어 인터넷의 모태가 되는 ARPANET에 자금을 댄 군 부서 책임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한 팀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음을 언급한다. 폴 베어런, 도널드 데이비스, 레너드 클라인록 사이에서 패킷화 아이디어를 누가 처음 제시했는지에 대한 논쟁과 함께 눈길을 끄는 여러 언급들이 있었는데, 이를 테면 인터넷이 원래 핵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산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이야기들과 비공식적 성격을 강조하려다 보니 인터넷 시대 협업을 권장하는 완벽한 표현이 되어버린 RFC, TCP/IP 프로토콜의 창안자 중 한 사람인 빈트 서프가 미숙아로 태어나 청각에 손상을 입어 10대 때부터 보청기 착용했다는 것, ARPANET에서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 컴퓨터끼리 L과 O 문자를 교환했던 역사적 장면, 스튜어트 브랜드의 호울 어스 카탈로그 표지 사진에 나온 지구 모습이 그 당시 그가 NASA를 설득해서 얻어낸 자료라는 이야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1968년까지 마우스, 화면상의 그래픽, 한 화면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창, 디지털 출판, 블로그를 닮은 저널, 위키를 닮은 협업, 문서 공유, 이메일, 인스턴트 메세징, 하이퍼텍스트 링크, 스카이프를 닮은 화상 회의, 문서 서식 기능 등을 고안해 "모든 데모의 어머니"로 시연해 보인 엥겔바트, 오늘날 노트북 컴퓨터의 원형을 그려내었던 앨런 케이, 홈브루 컴퓨터 클럽과 호비스트 문화, 히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오는 펠젠스타인, 그리고 400달러 이하의 아주 싼 가격으로 모든 호비스트가 살 수 있도록 초보적 컴퓨터의 DIY키트 알테어 8800을 만들었던 MITS의 에드 로버츠와 이에 영감을 받고 직접 여기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던 빌 게이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게이츠에 대한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딱 하나 고교시절 게이츠와 가장 친한 친구가 폴 알렌이 아니라 켄트 에반스였고, 그가 고교 시절 산악등반 여행 중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의 장례 예배를 보았던 로버트 풀검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열정과 함께 잡스와 워즈니악의 2인조의 협업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어서 비지캘크를 개발한 댄 브리클린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리처드 스톨먼, 리누스 토발즈 등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쪽으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이메일, 메일링리스트, 유즈넷, 뉴스그룹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헤이스 모뎀, 그리고 AOL의 탄생 이야기, 월드 와이드 웹의 아버지라 불리는 팀 버니스리와 이를 실현시켜주었던 파트너로 나오는 로베르 카이오, 모자이크를 개발한 마크 안드레센, 블로그의 원조인 weblog를 만든 저스틴 홀, 누가 위키피디아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가 논쟁의 대상이 된 웨일즈와 생어, 그리고 제리 양의 야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구글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 버너스리가 W3C를 통해 웹을 위한 소액 지급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이다. 소액결제를 처리하기 위한 정보를 웹 페이지에 내장할 방식을 고민하다가 2013년에 다시 그 활동을 재개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양질의 기사를 읽거나 노래를 듣고 웹 상에서 손쉽게 돈을 지불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의 실현이 기대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IBM 딥블루와 왓슨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나리오는 요원한 것이며, 인간과 기계가 파트너가 될 경우 가장 좋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인간과 컴퓨터가 공생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컴퓨터보다 잘 할 수 있는 창조성의 발현에는 가치, 의도, 미적 판단, 감정, 개인적 의식, 도덕적 감각이 포함된다고 언급한다. 이것이 예술과 인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그 영역들이 과학, 테크놀로지, 공학, 수학만큼 교육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과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도 감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예술과 인문학에 찬사를 보내고 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학이나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질타한다. 이들은 라틴어 학습의 장점을 격찬하지만, 알고리즘을 작성하는 방법이나 BASIC과 C++를 구분하고 파이선과 파스칼을 구분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과 인문학 두 문화 양쪽을 모두 존중해야 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둘이 교차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디지털 혁명의 다음 단계에는 테크놀로지를 미디어, 패션, 음악, 연예, 교육, 문학, 예술 같은 창조적 산업과 결합하는 훨씬 더 새로운 방식이 나올 것이라 예측한다. 혁신의 첫 단계는 많은 부분 오래된 영역, 즉, 책, 신문, 오피니언, 잡지, 노래, 텔레비전 쇼, 영화를 새 디지털 형식에 담는 것이라 언급하면서, 테크놀로지와 예술 사이의 상호작용은 결국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 방식과 매체 형식을 낳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런 혁신은 아름다움과 공학, 인문학과 테크놀로지, 시와 프로세서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올 것이라 언급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는 혁명적으로 보일지라도 이전 세대들로부터 전해져 온 생각들을 확장하는 작업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창의성이 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발현되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컴퓨터 산업의 태두가 되었던 HP나 현재 거두가 된 오라클, 시스코를 비롯해 제임스 고슬링이나 빌 조이 같은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야기가 빠진 것이 꽤 아쉽게 느껴졌다. 또한 이 책의 뒷부분이 그다지 매끄럽게 번역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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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9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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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불균형 - 패권을 향한 미국과 중국의 미래 경제 전략
스티븐 로치 지음, 이은주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스티브 로치 예일대 교수가 최근에 낸 책인데,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으로 있으면서 중국을 면밀히 관찰한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간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지 매우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정치적 현실을 고려하면 실천하기 쉽지 않은 해결책이라 말한다. 우선 해결책에 앞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당연하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 성장을 당연시 했기에 그 성장의 열매를 자국 경제 발전 전략의 토대로 삼았고, 미국은 중국에서 밀려 들어오는 싼 공산품들을 바탕으로 거품 소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과잉 소비가 중국의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유지시키는 동력이 되었고 반대로 중국의 성장이 미국의 과잉 소비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게 미국에서 가짜 호황이었던 이유는 소득이 감소하는데 소비는 증가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중국은 이제서야 뒤늦게 제조업 주도 수출 모형에서 벗어나 내수 진작과 서비스업 주도의 성장 모형 전략을 채택했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중국의 내수 경기가 되살아나면 저축률은 감소할 것이고 국제수지 흑자가 줄어들면서 미국 재무부 채권 같은 달러화 기반 자산에 대한 수요도 감소할 것이라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저축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의 자리에서 물러나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전락할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미국이 저축을 늘리고 자본적 지출과 수출기반의 경제구조로 변화함으로써 경제 불균형을 해소한다면 지속 가능한 경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중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미국에 부담만 되던 미중 무역 관계가 미국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귀한 자산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 왜 이러한 미중 간의 불균형이 초래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은 각 나라에서 1990년대를 풍미한 경제 영웅으로 여겨지는 앨런 그린스펀과 주룽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주룽지의 접근법은 수출에 의존하는 불균형 경제성장을 낳았고 그린스펀의 접근법은 부채에 의존한 거품성장을 낳았다는 게 그 결론이다. 또한 뒤를 이은 원자바오는 새로운 성장 모형을 채택한 반면 버냉키는 예전 모형을 고수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과 미국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중국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라는 경제 관리 운영기구가 존재하고 여기서 전체 전략을 수립하지만, 미국은 경제계획이나 전략전담기구가 부재하고 국가경제위원회(NEC), 예산관리국(OMB)이 각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12년 현재 미국은 102개국과 무역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면서 중국만이 아닌 다자간 무역불균형에 빠져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저축은 부족한데 성장은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잉여 저축금을 들여와야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외국 자본을 끌어오다 보니 경상수지와 다자간 무역 수지 적자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이른바 차이나 그라이프, 즉, 중국에 대한 여러 불만 사항을 토대로 중국을 죄인 취급하는 중국 몰아세우기를 비판하며 중국을 두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 미성숙한 금융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중국이 자국통화를 관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도시화 속도를 고려하면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도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의 은행계는 의외로 탄력적이고, 중국 부패문제가 미중 의존관계에 해를 입힐 수준은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양국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중국은 생산자 중심 모형에서 소비자 중심 모형으로 바뀌어야 하며, 미국은 과잉소비 구조에서 벗어나 자본적 지출, 인적 자본, 수출 주도형 성장 등에 초점을 맞춘 성장 모형으로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재균형화와 구조 변화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경제위기가 오면 사후약방문식 대처만 해오고 중국을 견제만 했기 때문에 고통과 희생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중국과 불필요한 기 싸움만 하지 말고 미국이 기존의 소비 중심 경제 기조를 생산 및 수출 중심 경제 기조로 전환하고 중국의 니즈를 파악하여 대중 수출 품목에 변화를 줌으로써 수출 잠재력을 발휘하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중국도 소비자 수요를 늘리려면 일자리, 임금, 사회 안전망 등의 수준을 올려야 하고 소비 중심 사회의 소비 습관도 가르쳐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의 본보기가 바로 미국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향후 10여 년 동안 1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중국의 서비스 산업 부문을 외국에 개방하게 되면 미국이 그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 예상하길 인터넷 기반 연결성이 소비자 중심 사회의 핵심 동력인데 균형성과 연결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개인의 자유와 정치개혁,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까다로운 쟁점과 맞닥뜨릴 것이라 전망한다. 사람들은 온라인 활동을 통해 각자 기호나 생활습관 등을 공유하고 서로 동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인터넷이 정치 개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 논쟁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소비자 사회로 전환한다고 해서 정치 체제까지 자유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의 필수조건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즉, 정치 개혁과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는 어느 국가든 매우 빈곤했던 시절, 그리고 비민주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중국이 서둘러 정치 개혁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미국과 중국이 현재 어느 쪽도 상대의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서 양국 정치 갈등 해결의 열쇠로 신뢰 회복을 꼽으며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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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8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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