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ada > 오마주 to 입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화가나 조각가가 되고 싶다. 언어의 본능만큼이나 형상을 본뜨고픈 욕망은 본능적이어서,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가끔 민망한 장면이 벌어지곤 한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찰흙 소조가 아니라 돌로 조각을 했는데, 나는 외설적일 만큼 풍만한 토르소를 만들어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었다. 지금도 어이가 없는 건 그때 선생님의 질문. 선생님은 나보고 “왜 이걸 만들었니?”라고 하셨다. 왜라뇨? 글쎄요...
내손으로 뭔가 만드는 재미를 모르던 더 어린 시절에는 기성품 인형을 마르고 닳도록 가지고 놀았는데, 가끔 이년이 먹여주고 재워준 은공도 모르고 소가지를 부릴 때가 있다. 기껏 때깔 좋게 입혀 놓으면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옆으로 픽 쓰러진다든지 옆집에 놀러가 옷 자랑 좀 하려는데 유연하게 허리 굽혀 인사할 줄도 모른다. (팔다리가 구루병 환자처럼 척척 구부러지는 인형은 우리집 형편에 꿈도 못 꿨다.) 내 얼굴보다도 인형 얼굴을 더 자주 씻어주었던 그 시절,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왜 인형에는 귀 모양만 있고 귓구멍이 없을까, 왜 코 모양만 있고 콧구멍은 없을까. down there에까지 관심이 미칠 만큼 조숙했던 건 아니라서, 그냥 송곳으로 귓구멍과 콧구멍을 뚫어주는 것에 그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외설적이다.
몇 달 전 “빗나간 성..” 어쩌구로 시작하는 인형체험방 단속 관련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참으로 오바하고 계시네,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밑에 줄줄이 달린 댓글들은 IMF 때 정리해고라도 당한 가장처럼 피 섞인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대개 돈 없고 차 없어서 여자 못 만나는 남자들은 집에서 달달이나 치라는 것이냐는 감정적인 대응이 주를 이뤘다. 인터넷에 무슨 뉴스만 떴다 하면 이런 식이다. 군입대 비리 뉴스가 뜨면 돈 없고 빽 없는 놈만 x뺑이치라는 우라질 세상, 해외원정 출산 뉴스가 뜨면 양풍 걸려 몸살 나는 인간들은 중풍에나 걸리라는 식의 저주스런 탄식. 우리 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어쨌든 민초들의 아랫도리 사정은 나 몰라라 하는 관계당국의 입장은 ‘여자’를 산다는 사실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 여자라서 비위 상한다는 점에 맞춰진 듯 보였다. 이른바 유사 성행위, 변태 성행위라는 쪽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변태 성행위는 그렇다 치고 유사 성행위는 또 뭐야? 사정상 계란알처럼 둥근 변기가 아니라 어느 산골 농가의 닭장에다 볼일을 봤다면 그건 유사 배변행위인가?) 동성애에 대한 혐오 역시 진짜 구멍이 아닌 가짜 구멍을 사용한다는 점에 있지 않나. 어차피 기본 메커니즘은 같으니까. 이러한 진본에 대한 집착을 나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쪽이다. 내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잘 그린 그림이라면 원본보다 열등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전혀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비싸지 않으니까 경제적 효율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 요즘 말로 ‘착한’ 가격은 오리지날리티보다 우선한다. (효율성을 윤리적 차원으로 전이시킨 이 유행어는 어찌나 기발한지.) 처음엔 패러디 음악이라고 해서 무시당하던 얀 코빅. 그를 욕하는 음악평론가 나리들은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나 봤는지 의심스럽다. 그의 라임 맞추는 솜씨와 기묘한 유머 감각은 가히 당대 최고라 할 만하다. 어차피 성관계 같은 건 없다던데, 진짜건 가짜건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어떤 이에겐 다행한 일이다. 성매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가부는 제쳐 놓고, 요 인형체험방 하나만 놓고 보면, “빗나간 성”이라는 표현이 아주 우스워 죽겠다. 빗나간 길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곧게 보일 수 있다. 인형체험방이 ‘올바른 성’이란 얘기가 아니라 거기에 다른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
그래서 뭔 얘길 하고 싶은 거냐.. 음냐. 요는 순기능을 인정하고 좀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실제 체험해 본 사람들은 싱겁다고도 하던데, “빗나간 성” 운운하면서 다빈치코드상영결사반대기독교연합처럼 오바하면 웃긴다는 것. 생각해 보니 역기능도 있겠군. 체험방에 드러누운 인형들은 하나같이 수퍼 스페셜 슬림 3S라인 글래머에 이목구비 뚜렷하고 성질도 안 부리고 잔소리도 안 할 거 아냐?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왜곡될 수 있겠군. 가만, 근데 그건 편안한 안방에 누워 TV만 틀어도 만날 겪는 위기 아닌가?
다산 정약용의 시 「애절양」을 읽다가 쓸데없는 생각까지 갔다..-_- 살살 좀 살려고 했는데 민감한 성 이야기를 꺼내서 거시기하지 뭔가. 다산이 애절양을 쓰게 된 계기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에 등록되고 소를 빼앗기니 그가 칼을 뽑아 자기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고 했다”는 사연을 듣고서였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관가에 가져가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울며 하소연하였으나 문지기가 앞을 막아섰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애달픈 사연인고. 가족계획 차원에서라도 그를 인형의 집으로 보냈어야 하는데.
쓰고 보니 성행위를 일종의 배설에 비유한 것이 좀 그렇긴 한데, 인형체험방 얘기는 일단 남성들에 한정된 이야기니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