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ada > 눈물 젖은 빵
요즘 안경 페티쉬에 흠뻑 빠져 있다. 오륙년 가까이 써온 안경이니 바꿀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이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만하게 저항하던 보수화의 징후면 어쩌나? 약간 두려워하는 중이다. 앞가르마를 절반쯤만 타서 양 옆으로 깔끔하게 빗고 나머지 뒷머리는 앞에서 뒤로 반듯하게 빗어 아주 조금 부풀린 다음 뒤통수 적당한 위치에 말아올려 붙인다. (쪽진 머리가 뒤통수에 위치해야 할 정확한 지점 찾기는 동정남의 총각 딱지 떼기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다. -_-) 이제 버스 손잡이만 한 링 귀걸이는 내다 버리고 보일 듯 말 듯 야쿠자의 금니처럼 빤짝거리는 티니 타이니한 금 귀걸이를 붙여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검은색 뿔테 안경을 걸어야 하는데, 안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안경을 썼기 때문에 눈화장은 더욱 공들여야 한다. 검은 테 사이로 보이는 교묘한 아이라인과 짙은 마스카라는 너무나 멋지니까. 여기서 끝나면 보수화 어쩌구 저쩌구 호들갑 떨 일도 없겠는데, 이를 어째, 잡화상표 싸구려 진주라도 모파상처럼 두르면 포멀함의 극치겠다 싶으니... 나, 늙었나 보다. -_-
하지만 진정한 두려움은 성향의 재설정이 아니라, 안경은 섹시하지 않다는 관념이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섹시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왠지 내가 나의 여성성을 자살시키는 듯한 알 수 없는 두려움. 영화에서 보면 안경을 끼고 섹스하는 여성은 없다. 양말을 신고 섹스하는 남성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처럼. 하물며 드라마에서는 키스할 때도 안경을 벗기지 않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니까,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 사이에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어,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순 없어... 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왜 욘사마는 구명보트라도 되는 양 죽어도 안경을 포기하지 않는 거지. 남자는 안경을 벗은 여자의 눈이 말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해독하는 것보다 그 창 너머 빵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 틀림없다! 어떡하면 저 창을 깨고 빵을 훔칠까. 어떡하면 저 눈을 구슬려서 넘어오게 만들까.
세상 모든 남자들을 장발장의 후예로 몰아붙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정말 미제라블한 것은 연약한 코제트의 특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여자 자신이다. (물론 당당한 여성성을 창조해나가는 멋진 여자들이 많지만 나는 일정 부분 아직 이런 전근대적인 지점에 머물러 있다.) 안경 안 써도 안 섹시한 애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심히 찔리긴 한데... 뭐 어쨌든 나는 내게 안경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밖에서 안경을 쓰지 않는다. 영화 볼 때도 옆에 앉은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불이 다 꺼지면 슬쩍 안경을 꺼내 쓴다. 이건 정말 틀니를 뺐다 꼈다 하는 할머니 같은 기분이 든다.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물론 이제는 안경 대신 렌즈에다가 라식이란 대안까지 생겼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체외 생리대 대신 탐폰을 쓴다고 해서 생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피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 순간 잊고 있을 뿐이다. (불행히도 나는 렌즈를 끼면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라식은 무서워서 아무런 편법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안경이 섹시하지 않다는 관념은 결국 노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안경을 쓰면 나는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의 기능이 쇠약합니다, 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같은 안경이라도 선글래스는 섹시하고, 박민규표 고글은 개성 너머 개김성이라는 그의 실존까지 표현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기왕지사 안경을 쓰려면 노쇠의 흔적을 삭제해야 한다. 순전히 멋 내려고 쓴 안경이라는 티를 팍팍 낼 일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눈알이 빠지더라도 렌즈를 선택하거나.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런 저런 안경들을 클릭하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비웠다 고민 중이다. 연말 송년회에 짜잔~ 짝퉁 서은영처럼 하고 가고 싶은데, B사감 같아~ 이 말 한 마디 들으면 신년 벽두부터 기분 누래질까 봐 용기가 안 난다. 흠. 패션은 감각이 아니다. 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