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신문이 우리에게 주는 것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항상 같은 시간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는 새로운 소식의 전달자 신문의 내려오는 시간이다. 새벽의 신선함에 활자내음을 맡으며 신문을 넘긴다. 그냥 일상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충 다 훑어보고 나면 텔레비젼을 틀어 오늘의 새소식을 들어본다. 그리고 생활뉴스와 함께.

언론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신문의 영향력을 대단하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의 생각을 키워나가고 대화와 토론의 자료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요즘마냥 북핵문제가 대두되거나 올림픽, 월드컵 등이 열리게 되면 대부분의 지면이 그 내용에 할애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기도 하고 독자의 소리란을 통해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도 내 놓는다.

예전에 비해 신문의 역할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포탈에 보이는 뉴스는 거의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나온 것들이다. 혹시  포탈에서 기자를 두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면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만 아직은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위주로 가서 자주 언론의 대상이 되어 간다.

 신문이 세상일을 다 전달해준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은폐되고 왜곡된 기사 몇 가지를 보면서 진실은 가진자와 누린자들이 덮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상당히 성장한 뒤였다.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무마시키기 위해 미국의회를 대상으로 로비를 성공적으로 해서 그것이 법안통과 저지가 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도 비일비재하다.

가끔 칼럼이라는 것을 읽게 된다. 아주 좋은 내용의 주장도 하고 정책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도 보인다. 그런데 그것도 일부 혼란을 야기시키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신문은 많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거리라는 생각을 떨칠수 없다. 그래서 신문 하나 읽는 것도 선택이 필요하고 내용을 받아들이는데도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대면서 보아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너무 힘든 일이다.

모든 신문사들이 자기가 정론을 펼친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찌보면 하나의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걸어가는 길을 잘 몰라 묻는이에게 항상 옳은 대답을 해 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나에게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이 책에서는 현명한 독자가 되어 신문을 올바르게 이끌어가게 하라는 권유를 하고 있는데 참 어려운 일이다. 단순한 기사도 편집을 거치게 되면서 상당히 변질되고 단순한 내용전달에 그칠 수 있고 중요도도 변질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문의 내용 이면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가혹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신문을 보는 것은 소식을 전달받는 것이라는데 그쳐야 할 것 같다.

모두 읽어내려가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시간을 들여 책을 들여다 보았지만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답을 찾지 못했음이다. 몇 몇 신문이 좋은 취지로 창간을 했지만 그것도 좀 지나니 다른 것들과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했으니 참 답답한 일이다.

그래도 신문을 읽으며 오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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