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기억하십니까? 80년대 야학을!!
잊혀진 학교 새마을청소년 학교에 대한 추억
대학 2학년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구시장 2층 건물에 있는 새마을 청소년학교를 찾아갔다.
낡은 건물에 깨진 유리창이 몇 개 보이는 허름한 학교였다. 1980년대 초였기에 야학이라고 하면 누구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 시절.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3개의 교실에는 피곤함을 이기려는 학생들로 가득차있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꽤 많던 시기였다. 그나마 큰 회사에는 회사안에 학교가 있어 일하고 배우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주 작은 규모의 공장들은 그나마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었다.
하여튼 학교의 일을 보던 교무선생님의 면담을 거쳐 학생들의 수학을 담당하게 되었다.
첫수업.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 수업준비를 한 상황이라 여기고 학생들 앞에 섰다.
그런에 웬일인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준비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쉽게 풀 수 있으리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감감할 뿐. 그저 막막함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때 경아라는 학생이 '선생님, 처음에는 다 그러는 거예요. 우리 재미있는 이야기 해요.'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교직 생활에 많은 추억이 되고 좋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도 대학생이었고 전주로 통학을 하는 관계로 수업이 끝나는 대로 바로 학교로 돌아와 수업준비를 하고 교실도 정리해야 했었다.
선배 선생님들의 조언과 그동안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4년여를 보냈다. 그냥 대학생의 젊음을 그곳에 다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
이제 학교이야기를 해야겠다.
말이 학생이지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냥 친구같은 선생님과 학생관계였었다.
지금같으면 드라마의 한 편에서나 볼 수 있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있었고 결혼으로 까지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또 졸업한 후 대학을 마치고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 공부의 뚜렷한 목표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봐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밤에 회사의 배려하에 야근을 하지 않고 공부한 다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학교 졸업장이라는 것이 크나큰 목표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자와 중학교 졸업자와의 임금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시되는 학벌문제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도 된다. 1년에 2번 치뤄지는 검정고시는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학년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는 음악, 미술 같은 선택과목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2학년 때에는 암기과목 중심으로 그리고 3학년 때에는 어렵다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의 교과에 도전하는 과정이 아주 힘이 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시험이 다가오면 회사를 쉴 수 없기에 밤을 새워가면 공부하던 모습들.
그 옆에서 함께 밤을 지새며 라면을 끓여주고 함께 교실에서 수업 보충을 해주고 하던 시절들...
지금은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 모습을 보면 가끔씩 그 당시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어렵게 준비한 검정고시에서 한 번 치뤄질 때마다 2명에서 3명씩 전과목 합격자가 나오고 나머지는 몇 과목씩 합격을 하여 함께 웃고 울던 모습들.
지금은 다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면 살고 있는지.
선생님들은 가끔 모임을 갖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군 시절 무용담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그것이 추억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