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새마을청소년 학교에 대한 추억-지리산
1983년 8월 14일
이리역 광장 시계탑 밑에 배낭을 맨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학생이라고 보기에는 청준남녀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도 그 속에 함께 있으니 같은 무리가 되어버렸다.
그 중 나보다 두 살 위인 화숙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지 말라고 한다며 우리를 배웅하러 나왔단다. 그러더니 집에 그냥 다녀올래요 하는 전화를 하더니 우리와 동행해 버렸다.
절친한 친구 양규도 같은 교사가 되어 여행을 함께 떠났다.
기차는 전주 임실을 거쳐 우리를 남원에 내려놓고는 그냥 가버렸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여원재를 지나 운봉, 인월을 거쳐 백무동에 이르렀다.
덜컹이는 버스 속에서 보이는 계곡의 바위들과 물들이 녹음과 어우러진 모습은 한폭의 산수화였다. 버스의 엔진이 시원찮은지 길이 험하고 그래서인지 버스는 백무동을 오르는 동안 수차례 멈춰섰다. 옆은 계곡인데 하면서도 뭔가 모를 스릴을 만끽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무사히 우리는 백무동에 다다를 수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후 한신계곡으로 향하였다.
집떠난 기분에 모두는 신이 나 있었다.
폭포수에 발을 담그고 일부는 물로 뛰어들어 물장난 치고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저물어가는 여름을 관조하며 숙소로 내려왔다.
저녁을 마친 후 널찍한 장소를 골라 모닥불을 피우고 빙 둘러 앉았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캠프파이어의 불은 더 이글거렸고 카세트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모두를 신이나게 해 젊음을 발산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4시
주위에서는 지리산 일출을 보려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우리는 단체란 취약점 때문에 이른 아침을 들었지만 시계는 7시를 넘고 있었다.
학생들은 주로 회사에서 종이토록 앉아 일을 하는 이유때문에 지리산을 오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쳐지는 학생들을 부축하며 4시간여를 오른 끝에 장터목에 다다랐다.
그 사이 지나는 고사목 지대는 안개가 자욱이 끼어있어 신비감을 주고 있었고 펼쳐지는 산아래의 풍경은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장터목에서 피로가 지나친 학생 몇과 친구 양규를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드디어 올랐다.
'야호'라는 함성과 함께 남한 최고봉에 올랐다는 기쁨을 누렸다.
하늘 아래 내가 최고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은 모두가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올랐다는 성취감이 모두를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