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의 사가들이 2006년을 바라보면서 무어라고 할까. 그 이름을 무어라 부르던 남북한이 똑같이 자신의 미래를 건 두 개의 협상을 시작한 점에 주목하지 않을까 싶다. ‘일민족 이협상’이다. 한 편에서 6자회담을, 다른 한 편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들 수가 있다.
6자회담이란 것이 결국은 북핵을 둘러싼 북, 미 협상이 본질이라고 할 때, 미국이라는 한 나라를 상대로 남북한 모두가, 전 민족이 ‘따로 또 같이’ 일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 역사를 통틀어 매우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닐까 싶다.
6자회담의 최종 의제가 북핵 즉 안보문제임에는 의문이 없지만, 대북 금융 제재와 같은 경제 이슈를 놓고 공방이 진행된다는 점에 북, 미 협상은 사실 매우 ‘포괄적인’ 협상이다. 부시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북‘핵’ 문제를 확장시켜 북‘한’ 문제로, 다시 말해 북한의 모든 것을 다 문제로 삼아 김정일 정권을 압박, 와해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한 이상 그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미 FTA 역시 마찬가지이다. FTA야 그 자체가 엄연히 경제통상 이슈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부터 한-미 FTA는 안보적 고려, 즉 한-미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대북고립을 가속화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이 개입된 결과이다. 즉 ‘포괄적’ FTA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민족 이협상’ 국면, 남북한 각각의 협상을 가까이 들여다 보노라면, 한 쪽은 불안하고 다른 한 쪽은 영 미덥지가 않다. 북의 핵실험으로 ‘미제의 간담’보다는, ‘한 민족’인 우리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차치하고, 언제까지 핵의 어두운 그늘에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그저 막연하다.
나로서는 적어도 부시 행정부, 그중에서도 체니 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한 북, 미 협상에서 획기적인 타결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나마 1월 중 북, 미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 하지만, 언제 북이 협상장을 뛰쳐나가고 또 미국은 저 철 지난 ‘북폭’ 시나리오를 흘려댈지 알 길이 없다.
북, 미 협상이 밀리미터 단위로 움직여 왔다면, 한-미 FTA 협상은 거의 미터 단위로 움직여 왔다. 진정 ‘광폭’ 협상이다. 하나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 했던가. FTA 협상에서 빈껍데기뿐인! 우리측 (반덤핑) 무역 구제 5개항을 미국이 들어주면 크게 ‘쏠 것’처럼 나대다 또 뒤통수를 맞는다. 2003년 8월 시작된 6자회담이 3년이 지나도록 한 걸음도 못나가고 있는 반면, 1년도 채 안된 한-미 FTA 협상은 벌써 저 멀리 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온 것이 없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른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즉 고작 김정일 위원장의 ‘지갑’을 놓고 북, 미 협상이 결렬되니 마니 하는데, 쌀, 약, 쇠고기 즉 국민 생존권과 건강권이 걸려도 아랑곳없다. 배짱은 미국에다 부려야지 국민들에게 부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 ‘일민족 이협상’ 국면을 어떻게 타고 넘는가에 향후 남북 모두의 ‘미래체제’의 향방이 정해질 것이다. 통일문제의 해결 방향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설픈 ‘솔루션’보다 차라리 지금이 나을지도 모른다. 올 ‘정해년’, 연말에는 대선이 잡혀 있고, 뒤를 이어 2008년 4월에는 총선이 걸려 있다. 미국 또한 2008년 연말이면 대선이다. 북, 미간 핵협상, 이와 연동된 남북협상 그리고 한-미 FTA 협상 모두 고도의 국내 정치적 쟁점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내정치, 국제정치, 남북정치, 정당정치, 국내선거, 미국선거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앞에 놓고 올 한해 우리 모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고단할 한 해, 그래도 희망은 상상하자. ‘질긴 놈이 승리한다.’
- 이해영 /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과
출처 : 경향신문 날짜 : 2007년 1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