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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 부모님과 즐겨보았던 '만강'이라는 일일연속극이 있었다. 어린시절 노비였던 소년이 그 신분을 뛰어넘어 양반이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거기에 나오는 대사중에 한 마디가 아직까지 내 귀를 맴돌고 있다. "책에는 여자, 돈, 명예등등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말을 부모님은 공부에 지쳐있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격려 및 동기 부여 차원에서 자주 이용하셨다. 그러기에 일류대라는 거대한 목표아래 남들보다 더 공부하고, 덜 자는 것만이 약육강식의 거친 세상속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길임을 난 그때부터 알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서서히 자라오면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내 능력의 한계는 점점 바닥을 들어내면서 나는 이 세상에 패배자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 발악을 하면서 살아왔고, 지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체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살았는지 모른다. 이런 나에게 큰 충격과 함께 나 자신에 대해 되묻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패배자의 심리를 유일무이한 야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느끼게 된다. 처음에 인천시민과 자신들에게 승리라는 희망을 줄 것으로 믿었던 이 팀은 유례없는 최악의 성적과 모습으로 프로야구계에서 잊혀져버린 기억속 가십거리에 불과했던 팀이지만, 자신의 영웅을 찾아 헤매는 그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커가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아쉬움과 원망의 대상으로 남아 그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특히, 정말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 '치기 힘든 공은 절대로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절대 잡지 않는' 자유스러운 스타일의 야구을 그 당시 누구도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속에서 발을 내놓은 순간부터 우리를 알게 된다. 그들이 하고자 했던 그 행동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프로'라는 미명아래 우리를 조이고 있는 족쇄에 얽매여 스스로의 인생을 저버리고, 자신의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회사라는 괴물에 몸을 맡긴 채 가정과 친구들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낄 것이다. 주인공처럼 열심히 일해도 학연과 아첨등이 난무한 회사 조직에서 개처럼 일하다가 그 용도가 다하면 처참히 잘리고, 끝내는 아내에게까지 버림받는 신세로 전락되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여유를 주었던 것은 바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잔재가 아닐런지? 처음에는 바보같고 말도 안되는 그들의 행동과 철학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 구현된 모습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인생 자체를 숨막히는 경쟁과 투쟁속에 얽매힌 굴레가 아닌 내 의지대로 살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판으로 생각하는 자유스러움과 즐김의 철학이 아니었을가 판단이 된다.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살 수 있기에 어떠한 속박도, 스트레스도 없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않았을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친구 조성훈과 그의 친구 사에키씨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바보같은 존재라고 비판할 수 있으나 결국 그 비판은 생의 진실한 면을 외면한 채 자기 자존심과 허영속에 스스로를 병든 시체로 몰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비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작가의 번득이면서 재치있는 언어와 상황 묘사는 처음에는 웃스운 개그나 꽁트 정도로 인식됬지만, 점점 주인공의 성장과정속에서 느껴지는 삶과 주위 것들에 대한 이야기속에 빠져들면서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씁쓸함에 이내 마음 한 구석 상처를 다친 것처럼 무척 아팠고 슬펐다. 그러나, 세상속에 버려졌다는 외로움과 고독감이 밀려왔을때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처럼 내 앞에 다가와 나를 기쁘게 안아주는 친구의 말과 표정속에 이내 행복해지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은 이 책이 내게 주는 행복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