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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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원작 소설: 마거릿 애트우드

그림 및 각색: 르네 놀트

번역: 진서희

 

 

 

 

 

 

《대재앙 후, 대통령을 사살하고 의회에 기관총을 난사한 군대가 계엄령을 선포했다.

 ......

 신문사는 검열을 받았고 몇몇은 폐간되었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했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통행증이 생겼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모두가 동의했다.

 ......

 모든 여성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은 마치 오래전에 준비했다는 듯

 평범한 일상을 좀먹듯이 잡아먹고

 여성 대다수가 그저 씨받이 노릇을 하는 '시녀'로 전락한다.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며 체제에 맞서면 '비여성'으로 분류되어 노역장으로 끌려가 서서히 목숨을 잃게 되는데...

 ......

 그녀들에게 미래란 없다.》

 

 


 맨부커상을 최초로 두 번이나 거머쥔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 그 작품을 소설이 아닌 그래픽 노블로 만났다. 글을 읽고 상상했던 현실보다 더 비참하고 참혹한 실상. 날 때부터 시녀는 아니었던 그녀들의 이야기. 처참하게 바뀐 현실을 인정하고 삶이 아닌 목숨을 이어가는 그녀들의 심정을 나는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 가슴이 떨리고 명치가 턱 막힌 느낌. 어둡고 탁한 잿빛 하늘이 그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울 것만 같은 나날. 생각하고 이해하고 느끼려고 할수록 자꾸만 파고드는 괴로움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옳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 권력을 거머쥔 인간의 광기는 대체 어디까지 치닫는 걸까? 전체주의를 넘어서 하나의 소모품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중심에 시녀들이 있다.

 

 

 

 

 

 

 

 

 

The handmaid's tale

The Graphic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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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시녀인 주인공의 삶엔 아무것도 없다. 예쁘게 치장하고 연애하며 가정을 꾸릴 권리 등 평범하고 당연한 모든 것을 거부당한 채 시녀를 정의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가임기가 돌아올 때만 기다릴 뿐이다. 센터에서는 시녀가 얼마나 축복받은 직업이며 노역장으로 끌려간 비여성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세뇌한다. 하지만 이들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였고 직장생활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던 여성들이다.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삶을 대체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상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총을 앞세운 무력 앞에 더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작가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모든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일탈을 꿈꾸는 고위층 관료와 생식 수단을 가장한 성 노리개로 전락한 여성의 모습에 분노가 치민다. 정말 여성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을까? 고위 관리의 아내로 살아가는 여인의 삶 또한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의례'라 불리는 짝짓기 행위로 시녀를 범하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녀들의 속을 까맣게 타다 못해 피눈물을 흘릴 테니까.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이런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글로 만난 세상보다 한층 더 실감난 덕분에 절망과 탄식이 가득했던 이 작품. 그간 몇 편의 그래픽 노블을 만났지만 이렇게 가슴을 파고든 책은 처음이다. 자극적이고 끔찍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인정할 수 없는 그 체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시녀들의 절망적인 삶을 고스란히 전하는 놀라운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소설, 영화 등 어느 형태로 만나도 특별한 작품이지만 이 그래픽 노블은 『시녀 이야기』라는 작품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더해준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새롭고, 몰랐다면 절대 잊지 못할 책이 될 거다. '죽기 전에 꼭...'이란 류의 분류와 리스트는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 정말 꼭 읽어봐야 할 작품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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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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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팔년 책육아

지은이: 김선미

펴낸 곳: RHK / 알에이치코리아

 

 

 센 언니가 나타났다. 누가 뭐래도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 이야기하며 욕도 잘하는 언니. 책 제목도 범상치 않다. 『십팔년 책육아』라니... 그래, 그 십팔 년이 예쁜 딸과 투덕거리며 육아한 햇수라는 건 분명 안다. 근데 '18년'이라고 욕하는 듯한 이 음성 지원은 뭐지?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욕을 해도 정겹고 싫지 않은, 정말 나 잘되라고 충고가 아닌 진짜 조언만 해주는 사람. 이 언니가 그런 느낌이다. 육아 강연 스타 강사이자 오렌지라이프 명예이사라는 김선미 작가, 일명 지랄 발랄 하은맘. 사교육 없이 홈스쿨링으로 열여덟 살 딸 하은이를 연세대학교에 보낸 책육아의 산증인이다. 호기심 왕성한 3살 꼬마 아가씨를 키우며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나는 늘 아이의 필요와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책도 많이 읽게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고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 덕분에 속이 후련! 김선미 작가는 어떤 책을 어떤 식으로 아이에게 노출하고, 어떻게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이끌어야 할지 직접 경험하고 검증한 꿀팁만을 속사포처럼 방출한다. 말도 빠르고 기운도 넘치고 욕도 잘하니 제대로 따라가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시끄럽고! 버텨! 견뎌!

끝까지 버틴 애미가 우승이야! - p62》

 

 

 이 언니 조교 출신인가?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 쓰고 호루라기 불며 지옥까지 쫓아올 것 같은 느낌. 갑자기 소름이 쫙 돋는다. 누구나 평생 떨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있다면서 그 지랄 언제 떠는 게 낫겠냐고 아이가 어릴 때 뭘 하든 몸으로 부딪치며 다 받아주란다. 불만 없이 원하는 대로 다 해볼 수 있게 말이다. 사교육이나 불필요한 소비생활을 줄이고 그 돈은 차곡차곡 모아 해외 봉사 여행 같은 값진 체험에 쓰라는 그녀. 물건이 아닌 경험과 행복을 쌓는 데 돈을 쓰라는 소리다. 초중고, 모두 똑같이 걷는 교육 제도를 거부하고 학교에서 나와 책과 자연에서 터득하고 배운 하은이. 매일 영어 동화책을 읽고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타임지를 읽고 프리토킹이 가능한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똑소리 나는 딸내미. 내 딸도 아닌데 괜스레 뿌듯하고 대견하다. 이 책은 읽고 덮는 책이 아니라 직접 '하는' 책이라며 힘주어 말하는 센 언니, 김선미 작가. 과연 나는 이대로 따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정말 제대로 실천해보고 싶다. 간절히!

 


 

 

 

 

 

 

 

 


 

 

 

 

 

 

 

 책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이렇다. <1장, 사교육 시장에서 삥 뜯기지 마라> - 목에 핏대 세우고 열변을 토하는 작가. 욕 잘하는 언니한테 혼나는 기분이라 씁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팩트만 말하는 것이기에 이 기센 언니를 한번 믿어보고 싶다. 사교육에 돈 쓰지 말고 그 돈으로 책 사줄 것! 아이가 원치 않는 배움은 즉시 중단할 것! <2장, '인풋'에만 신경 써, 시간 금방 가> - 책육아의 꽃이 바로 '초등' 때다. 책 목록과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하여 가장 건질 게 많은 부분. 책은 빌려보지 말고 사서 봐라! 언제든 읽을 수 있게! <3장, 아웃풋은 한꺼번에 터진다> -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성과에 지치면 그대로 끝. 결과는 뒤늦게 한 번에 터져 나오니 믿고 실천할 것! <4장, 엄마가 성장해야 아이도 성장해> - 내 아이의 전문가가 돼라.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뇌에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영양가 넘치는 집밥은 필수! 사교육 안 하고 아낀 돈으로 아이와 행복한 경험을 할 것. 시간, 공간, 사람... 나를 싸그리 바꿔 단 1분이라도 알차게 쓸 것!

 

 


 

 부록으로 함께 딸려온 책육아 실천 노트에는 날짜를 적는 란과 함께 '한글책, 영어책, 집중 듣기, 흘려 듣기, 실컷 놀기' 등의 항목 체크란이 마련되어 있다. 매일 하지 못해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할 것. 김선미 작가는 하은이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집중 듣기 하나만 꼼꼼하게 챙겨 하도록 했다고 한다. 영어 CD를 틀어놓고 집중 듣기를 하다 보면 하은이는 어느새 스르르 잠들어버렸지만 그런 하루 이틀이 모여 지금의 당차고 똑똑한 하은이로 레벨업! 나 역시 사교육을 많이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버릴 수 없다. 아이가 커가며 겪게 될 나의 오춘기와 성장통을 현명하게 헤쳐나가자 다짐하고 또 다짐. 『십팔년 책육아』는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책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릴 때나 어떻게 지도하는 게 옳은지 확인하고 싶을 때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자주 꺼내 읽고 실천해야 할 책이다. 제대로 욕 먹고 혼났지만 후련하고 뿌듯한 이상한 책. 센 언니의 기운을 제대로 전수받은 기분이랄까? 오늘부터 당장 꼬마 아가씨에게 그림책 읽어주기 시작! 실천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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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AM327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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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글과 그림: AM327 (김민지)

펴낸 곳: 흐름출판

 

 

 진중하고 따스한 도서로 독자의 마음을 촉촉하게 어루만지는 흐름출판의 신간 『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를 만났다. 제목 설문 조사 때 선택했던 제목이 똭! 그래서인지 더 정이 가고 마음이 가는 이 책, 느낌이 참 좋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 4년 차 김민지 작가의 마음을 다스리는 요가와 소박한 일상이 담긴 이야기. 작가의 요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잘 모르는 내가 볼 땐 전문가 같다. 어느 부위를 자극하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누가 이 동작을 하면 좋은지 귀여운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폼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한참 방황하다 가게 된 요가원에서 매일 아침 하루를 열며 땀과 눈물로 채워간 나날. 그 소중한 하루하루가 쌓여 마음의 중심도 조금씩 단단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전하는 글과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긍정에너지에 나까지 덩달아 들썩들썩.

 

 

 

 

 

 

 

 

 

《급하다고 페트병째로 물 마시지 않기.

예쁜 잠옷 입고 자기.

집에서도 선크림은 꼭 바르기.

주말에 시간 정해서 핸드폰 꺼두기.

음식은 뭐든지 간에 그릇에 담아 먹기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 p42, 대접》



 든든한 내 편이자 조언자인 엄마와의 따스한 추억, 한 달 치 월세를 내줄 수 있다고 약속한 든든한 용기 메이트들, 작가와 늘 함께인 일곱 살 민구(댕댕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 냄새, 힘을 빼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그림과 요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뽀얗게 피어오르는 행복 조각을 하나씩 머금다 보면 어느새 든든해진 마음으로 기운을 차리게 된다. 누워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일어나 요가 동작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그간 연락 못 했던 친구들도 보고 싶고, 혼자 어디론가 잠시 떠나 거닐고 싶기도 하고, 하루를 온전히 하고 싶은 일로 채워보고픈 소소한 소망이 피어올라 배시시 웃어버렸다. 그래,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물 흐르듯 잔잔하게 마음에 닿아 살포시 어루만져주고 따스한 햇볕 아래 누워 있는 듯 노곤하고 편안한 느낌. 오늘의 근심 걱정은 잊고 온전한 나를 찾게 해주는 에세이. 역시 첫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내일은 집에서 잠시라도 요가를 해볼까? 힘들어서 툴툴대다가 이 책 『마음에도 근육이 붙나봐요』를 다시 펴들고 작가의 요가 이야기를 정독할 나를 생각하니 또 슬그머니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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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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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지은이: 이진송

 펴낸 곳: 다산책방



 

 살아가며 보고 느낀 경험을 글로 담아내는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과 감성으로 빚어진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여 시시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인생담에 푹 빠지게 되는 게 에세이의 매력 아닐까? 작가의 관심사가 진하게 드러나는 장르이기에 주제도 상당히 다양하다. 그런데, 운동? 허허, 이거 참. 운동을 주제로 쓴 글이라니! 오잉?'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신선. 에세이라는 장르의 무궁무진함을 실감하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와의 만남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웃는 얼굴로 아쿠아로빅 하는 모습이 담긴 표지가 귀엽고 정감 있다. 물을 싫어해서 수영장에 갈 일은 없을 듯하지만 어쩐지 재밌어 보이는... 아니다. 갔다가는 기부 천사가 될 게 분명하다. 이진송 작가 역시 헬스며 수영이며 복싱이며 다양한 운동을 해봤지만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기부 천사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그래, 우리나라 헬스장과 운동 센터는 우리 같은 기부 천사들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는 게 확실하다! 헬스, 복싱, 수영, 댄스, 요가, PT, 커브스, 승마 등등 다양한 운동을 하며 도미노처럼 줄줄이 다이어트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살을 빼기 위함보다는 건강한 나로 살기 위한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살을 빼면 건강해지겠지만, 다이어트란 목표 이상으로 '건강'을 되찾고 유지하자는 게 요지. 평생을 함께 살아갈 나의 동반자, 내 몸을 어르고 달래며 끌고 가려면 운동은 필수란다. 모두 맞는 말이라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참 많은 운동을 했다. 검도, 스피닝, 요가, 째즈댄스, 태보, 헬스, 스쿼시, 등산, 아줌마표 파워워킹 등등...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듯이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으려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작가가 인생 운동으로 맞이한 필라테스처럼 한두 번의 고비를 넘기면 그 운동이 나의 평생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 내 경우엔 스피닝이 인생 운동이 아니었나 싶다. 친한 동생과 함께 등록하여 재밌기도 했지만, 재밌는 강사님과의 찰떡궁합 그리고 무엇보다 한눈에 보일 만큼 에너지와 생기가 넘치던 내 몸이 인생에 큰 즐거움이었던 시절. 매일 2시간씩 격하게 사이클을 타고 나면 상체보다 다리가 앞서 걷고 뛰는 기이한 현상에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으며 스피닝을 다시 시작하자고 몇 번이나 다짐 또 다짐.



《다정도 체력이다.

체력이 인생을 만든다.

체력을 먼저 길러라!》



 곧 서른을 앞둔 어느 날, 나보다 9살 위인 젊은 삼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30대가 되면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돈 벌고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뭐든 체력이 바탕이 돼야 이룰 수 있으니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서 꾸준히 해라.' 당시 4, 5시간만 자도 끄떡없던 나는 삼촌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지, 나한텐 해당 안 되는 얘기라면서... 몇 년이 흐른 후 지금 현실은? 날로 사라지는 근육과 후덕해진 허리둘레. 매일 기절을 반복하는 저질 체력. 이런,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진송 작가도 같은 말을 전한다. 함께 운동하는 아주머니들은 40대에 들어서며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운동을 시작하셨다는데, 30대에도 이렇게 힘들건만 40대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말이다. 의사에게 들으면 겁나고, 엄마에게 들으면 잔소리 같아 울컥하는 운동하란 그 소리. 이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자신도 힘들고 여러 번 실패했지만 인생 운동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한 작가의 전우애 넘치는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미 넘치고 기부 천사 동지이기에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되는 재밌는 에세이. 책을 덮으며 갑자기 마음이 동한다. 오늘은 잠깐이라도 가볍게 달려볼까? 운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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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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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만 아는 농담

지은이: 김태연

펴낸 곳: 놀 / 다산북스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이런, 여행 무식자를 보았나. 보라보라섬이라는 글자를 읽는 순간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떠올렸다. 만화에나 등장할 듯한 장난스러운 이름을 지닌 그 섬이 실제로 있다니. 휴양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 유명하다는 보라보라섬을 이제야 알았다. 아름답게 일렁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 따스한 햇볕 아래 몸을 누이고 홀짝홀짝 마시는 칵테일. 지상 낙원일 것만 같은 그곳 보라보라섬. 섬에서의 삶을 담은 에세이라고 하기에 나 역시 누구나 떠올릴 이런 상상들을 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섬에서의 생활이 어째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만 아는 농담』에는 보라보라섬에서 살아가는 김태연 작가의 소중한 나날이 담겨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활자 안에서 생명을 얻은 순간의 추억이 언제든 재생할 수 있을 것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글.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야외 식당, 물소리가 찰방찰방 멀어지다 고요해져 숨소리만 색색 울리는 순간, 그 고요한 정적, 영화 속에나 볼 법한 로맨틱한 프러포즈.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특별한 행복을 마음껏 부러워하다가 어느새 보라보라섬에 간듯한 착각이 든다. 그저 아름다움에 취하고 한없이 여유롭게 거닐고 싶은 마음. 그래, 게으름도 피우고 멍도 때리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살아가는 고충은 있는 법. 섬에서 사는 게 불편한 순간도 많다. 모기의 습격, 비싼 각종 요금과 세금, 1년 내내 더운 곳임에도 찾기 힘든 아이스커피, 잦은 정전, 마트에서조차 종종 동나는 생필품. 문만 열고 나가면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작가는 넷플릭스와 영상통화에 의지하는 시간도 적잖이 많았다고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아름다운 자연만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끄덕.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 p81》


《통장 잔고가 빠르게 줄어드는 대신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이 생겼다.

 노는 것도 해야 할 일을 미뤄가며 노는 것이 재밌는 법이었다.

 삶이 그냥 놀기만 하라고 판을 깔아주니 되레 불안해졌다.

 불안함은 무기력함이 좋아하는 꼬리다. 잡히면 우울증이 된다 - p152》

 


 

 섬 생활을 엿보는 재미에 푹 빠져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김태연 작가의 글이 지닌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굳이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문장에서 묻어나는 담담하고 소탈한 느낌이 정겹고, 어떤 가식이나 잘난 척 없이 진솔하고 재미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가. 보라보라섬만큼이나 마음이 끌리는 작가의 행복 조각이 멀고 먼 곳에 있는 나에게로 날아와 감성을 톡톡 두드리는 느낌. 푸르른 바다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조금은 게으름도 피우면서. 먹고사는 데 열중한 나머지 스트레스로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어느 날,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해준 『우리만 아는 농담』. 그 따스함이 전하는 심심한 위로에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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