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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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나의 가해자들에게

지은이: 씨리얼

펴낸 곳: RHK / 알에이치코리아

 

 

 

 학창 시절, 소위 말하는 일진은 언제나 존재했다. 집이 좀 잘살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혹은 월등한 신체 조건과 카리스마로 무리를 형성하고 그 위에 군림하며 여왕 혹은 왕 노릇을 하는 족속들. 소위 '짱'이라 불리던 그 아이 옆에는 자신들의 먹잇감이 될 여린 또래를 찾는 하이에나가 즐비했다. 여러 명의 아이가 제한된 공간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학교. 편하고 즐거워야 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가족마저 이해해주지 않는 순간, 괴롭힘당한 아이는 마음에 벽을 치고 홀로 웅크리게 된다.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이 지긋지긋한 '왕따'와 학교 폭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구나. RHK 출판사의 신간 『나의 가해자들』에는 학창 시절 끔찍한 괴롭힘을 당한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냥 친구 1명이면 됐어요'

 

'힘들 텐데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눈물이 났어요'

 

 

 

 많이 괴로울 텐데도 어렵사리 학창 시절 기억을 털어놓는 인터뷰이들.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떨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린 이들도 있다. 어떻게 괴롭힘을 당했고 끝나지 않을 터널처럼 힘겨웠던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대체 가해자들은 무슨 권리로 이들을 이토록 괴롭혔단 말인가. 문득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반에서 따돌림당하던 한 아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 나서는데, 학급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 친구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작고 가녀린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눈물을 터트린 그 친구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잠시 망설였다. '가서 위로해줘야 하나? 눈물 닦으라고 티슈라고 건네줄까?' 고민만 하다가 얼른 가자는 다른 친구의 재촉에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도 기억난다. 두 손에 고개를 파묻은 채 펑펑 울던 그 친구의 모습. 누군가를 괴롭히진 않았지만, 힘든 상황에 처한 친구를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았던 난 방관자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외면한 채 안전한 구역에 속해있던, 어쩌면 너무나 비겁한 방관자. 그때 그 친구의 손을 잡았더라면, 그 아이는 잠시라도 위안을 얻었을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 기억이 잊히지 않는 걸 보면, 그 순간 그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며 손을 잡아주어야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또래 집단에서 위세를 떨며 남을 괴롭히려는 가해자, 약하거나 만만하단 이유로 당하는 피해자, 그리고 그저 문제없이 학교에 다니고 싶은 방관자. 이 아이들이 모여 이룬 학급은 즐겁고 유쾌할 리 없다.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왕따를 당할 만한 아이가 어디 있냐고. 왕따를 당해도 되는 아이가 어디 있냐고. 괴로웠던 그 시절의 기억을 아득하니 묻어두고 혹은 지금 이 순간까지 절대 잊지 못하고 괴롭게 하루를 이어간 그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였지만,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어 허탈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친구 한 명, 따스한 위로 한 번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그들. 나는 왜 그 친구 한 명이 되어주지 못하고 따스한 위로 한 번 건네지 못했을까. 비겁하고 두려워서 피했던 그 시절의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다. 이 책 한 권으로 학교 폭력이 줄어들거나 상황이 개선될 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괴롭힘당한 그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세월이 흘러도 그 상처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은 잘 알 수 있다. 혼자 끙끙 앓지 않고 같은 아픔을 공유한 이들이 모여 서로에게 귀 기울였던 그 소중한 순간이 담겨 있는 이 책. 가해자와 방관자에겐 따끔한 일침을 피해자인 학생에겐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나의 가해자들에게』. 부디 이 책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작지만 따스한 촛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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